나는 이생망?

우리는 우리로 살면 된다.

by 프린스턴 표류기

KAIST 실패연구소2024년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한 번의 실패로도 낙오자로 인식된다는 응답이 58.2%,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63.3%였다.

여기서 말하는 실패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뜻한 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왜 뜻을 ‘한번만’ 이루지 못해도 곧 낙오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그 ‘뜻한 바’는 과연 무엇이기에 이토록 스스로에게 무거운 짐을 지울까?


입신양명의 신화

유교적 전통사회에서 입신양명은 곧 성공의 기준이었다. 그 사상은 현대화된 지금도 여전히 사회 깊숙이 남아 있다. 오히려 1970~90년대의 “하면 된다”는 산업화 신화와 결합하면서, 빨리빨리 무언가를 가시적으로 성취해야한다는 정신자세야말로 인생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신앙처럼 더욱더 굳건히 굳어졌다. 여기에 21세기 능력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더해지며, 평범함은 못남으로, 출세하지 못함은 게으름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노력하라, 더 노력하라. 될 때까지 노력하라!


실패를 했다해도 망연자실 할 시간 조차 없다. 지체없이 일어나 그 실패로부터 교훈을 배로 배워야한다. 이를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을 넘어, 새로운 성장과 혁신을 보여야한다. 당장!


가혹하다. 그런데 이것이 낙오자와 아닌자를 가르는 기준이 돼 가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잠시라도 삐끗하는 순간 그 사람은 멍청한자, 게으른자, 더 나아가 사회의 짐으로 취급된다. 과거에는 뒤에서만 수근거렸으나 지금은 인터넷의 익명성 속에서 서로를 민폐요 낙오자라고 부른다. 이런 분위기이다보니 청년세대의 삼분의 이가 실패를 경험할 때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으로 나의 비범함을 타인에게 증명해야하는 가?


문제는 먹고살기


엠브레인 트렌드 모니터의 창업관련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은 전체 65%가 '생계 목적'으로 창업을 시작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자아실현을 위해라는 대답은 그 절반에 (32%) 그쳤다. 한국청년재단이 2023년 청년정책·이슈 톺아보기’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자리(69.5 %), 주거(66.7 %), 복지(47.8 %) 순으로 나왔다. 두 조사 모두 한국인에게는 생계꾸리기 즉, 곧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삶의 중심가치임을 알려준다.


먹고 사는 것, 별로 거창한 목표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매일매일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힘들고 벅차다. 먹고 살길 힘들게 여기는 나는 못난 걸까?


세렝게티 공원에 사는 사자의 사냥 성공률은 25-30 % 정도라고 한다. 덩치가 커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데다 모두가 사자를 두려워하고 조심하기 때문에 사냥에 매우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덩치가 사자보다도 더 큰호랑이는 야밤에, 혼자서 사냥하기 때문에 겨우 5-10 %만 성공한다고 한다. 독수리의 급강하 공격 성공률도 겨우 10-20 % 언저리이다. 이번에는 하강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기류나 바람에 삐끗하기 쉽기 때문이란다. 잡아도 잡아도 나타나는 집쥐는 어떨까? 먹을 것이 도처에 널려 있는 아파트에 사는 쥐들의 먹이 찾기 성공률은? 이 역시, 인간과 고양이의 존재때문에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평범함은 망함의 증거?


자연계에서 평범하다는 건 무엇일까? 생물학에서는 특정 환경에서 가장 흔히 관찰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야생형(wild type)’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들은 왜 흔할까? 흔하다고 해서 보통 밖에 안되는, 특별히 성공하지 못한 자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그것이 지금의 환경에서 계속 성공적으로 먹고 살아 온 모습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남은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승자라고 생각하는, 불세출의 천재들은 드물다. 드물기 때문에 이름이 붙고, 이야기로 남는다. 하지만 드물다는 것은 곧 모두가 그렇게 될 필요가 없다는 말, 현재의 자연계가 선택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신이 뻔한 인간, 누가 봐도 곧 잊혀질 인간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실패했다는 신호는 아니다.사람들 속에 섞여, 모난 데 없이, 튀어나오는 데 없이 오늘을 넘기고 내일로 이어지는 삶의 방식 역시 지금의 환경에서는 가장 널리 선호되고 있는 모습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다수의 모습이 괜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법. 상위 1%만한다는 행동. 이런 거 가르쳐준다는 소셜미디어들. 따라하라는 책들. 그런 것도 다 필요 없다. 물론 환경은 늘 변한다. 오늘 통하던 방식이 내일도 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건 그때 생각하자. 우리는 우리로 오늘 열심히 살면 된다. 보통이야말로 위대하다.


henry-be-IicyiaPYGGI-unsplash.jpg photo by Henry Be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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