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

우리가 있어 세상은 안 망한다. 위로가 아니고 정말로.

by 프린스턴 표류기
Photo by Kevin Grieve on Unsplash


몇 년 전 일이다. 내차의 사이드미러에 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을 쳤다. 나는 곧 여름 여행을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거미를 옮겨주려고 했지만, 요놈은 요지부동, 거울 뒤 공간으로 숨어버리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놈과 함께 여행할 수밖에 없었다. 고속도로를 달렸고, 뉴욕시내를 누볐다. 비도 왔다. 걱정과 달리, 놈은 거울 뒤 공간과 바깥 거미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무사히 여름 여행을 함께 마쳤다. 하도 정이 들어 인도의 달콤한 디저트 이름을 따, 굴랍자문이라는 이름도 붙여 주었다.


놈이야, 살아있는 놈이니 바람 불면 거울 뒤에 숨는다 치자. 거미줄은 어떻게, 편도 340 Km가 넘는 여행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Picture1.png 지도 출처: Google Maps


에이, 고쳐지었겠지…라고?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나는 내 눈으로 봤다. 고속도로 바람에 휘날릴 때 꿋꿋이 버티는 거미줄을.


거미줄 그물은 어쩌면 그토록 튼튼할까?


거미줄은 설계도가 없이 거미가 내 사이드미러 같은 특이한 주변환경에 따라 즉흥적으로 구조를 바꿔 짓는다. 게다가 우리 굴랍자문 집처럼 찢어진 거미줄은 거미가 매일매일 요리조리 요령껏 고쳐 놓는다. 기계로 찍어낸 것과 다르다. 거미줄은 씨줄과 날줄이 교차되며 그물모양을 만든다. 바람이 불면 한 가닥이 버티는 대신, 여러 가닥이 함께 흔들린다. 힘이 한 점에 모이지 않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이다. 게다가 씨줄과 날줄은 늘어나거나 충격을 버티는 물리적 성질이 서로 다르다. 그로 인해 어떤 실은 늘어나고 어떤 실은 버틴다.


흠, 복잡하다. 그러니까 이런 구조를 복잡계라 부르자. 사실, 복잡계 (complex system)라는 말은 내가 대충 지은 게 아니다.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거미줄처럼 서로 복잡하게 얽힌 구조는 사실 세상에 정말 많다. 생태계·두뇌신경회로·우리 인간 사회·인터넷 망처럼, 수많은 구성원, 구성요소, 즉 노드 (node)들이 서로 연결된 구조들이다. 이런 구조들에서는, 한 부분이 흔들릴 때 그 영향이 이웃한 부분들로 자연스럽게 나뉘어 전해지는 성질이 있다. 그러다 보니, 큰 충격을 받고도 잘 버티기도 한다. 아침 드라마의 사각, 오각, 육각 관계를 생각해 보라. 주인공들 중 한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줄거리상 고립되더라도 출생의 비밀, 애증의 과거, 하다못해 단순 우연이라는 연결관계를 통해 재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축축 늘어지는 이야기를 한없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들의 관계가 서로 실타래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복잡계는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한 부분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되어도, 다른 연결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는 장면이 종종 나타난다. 서로서로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히 연결 고리의 수뿐만 아니라 각 노드들의 역할과 관계가 어떻게 정해져 있는가 와도 관련이 깊다.


인간사회라는 복잡한 구조 속에서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아마 보통의 숫자의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다. 보통 성인은 그만그만한 회사에서 중간 규모 부서에서 보통 정도의 팀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보통학생은 보통 수준의 학교에서 몇 명의 보통 친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비슷한 크기의 연결들이 여러 방향으로 퍼져 있는 사회에서는, 누군가 빠져도 곧바로 모든 것이 멈추지는 않는다. 그 속의 몇몇 사람은 마치 한 가정의 가장처럼 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작은 중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러 연결들이 서로를 떠받치며 움직인다. 이런 사회는 굴랍자문의 거미줄처럼, 흔들리면서도 형태를 유지하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연결이 극도로 집중된 소수의 사람이 많은 세상을 생각해 보자. 초대기업 회장님, 수백, 수천만의 팔로워를 가진 스타 인플루언서들.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일과 관심을 떠안게 된다. 인간사 수많은 흐름이 몇 사람을 거쳐서만 움직이는 구조다. 이런 사회는 빠르고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는 그 몇 사람이 흔들리면, 그 여파가 멀리까지 순식간에 번진다. 운이 없으면 단 한 번의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다, 한 번 깨지면, 아무리 대기업 회장님도 스타도 버틸 수 없다. 결과는 공멸이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 데, 이런 불안한 세상에선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거나 이 세상의 돈의 절반을 가진다고 해도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 불안하고 내일이 어찌 될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상 최대의 스타라 해도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무너질지 모를 화려한 외면 속, 내면은 불안할 것 같다.


세상을 지탱하는 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크기는 작지만, 촘촘학 다양한 연결들을 여기저기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반에서 중간밖에 못해서, 사장님이 되지 못해서, 게임에 빠져서 몇 시간 낭비했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보통으로 살면서, 동네 사람들하고도 눈인사하고 지내고, 별것 아닌 동호회에서 보통 멤버로 활동하며, 오랜 친구와 술잔도 기울이며 보통으로 살면서 여러 가지 재밌는 일을 하며 작은 연결고리를 꾸준히 만들어가는 게 훨씬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아론 코플란드의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 BBC Proms 2012 공연 보기


Screenshot 2025-10-30 at 10.32.20 PM.png 유튜브 이미지캡처 https://youtu.be/ZdqjcMmjeaA?si=4aYGgnTURgUafC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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