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힘은 강하다.
이질적 복잡계
지난번 글에 이어 육각관계 드라마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보자. 이처럼 여러 명의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다양하고 다층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드라마복잡계. 이런 구조는 마치 비바람에 출렁이는 거미줄비슷하다, 웬만한 충격과 부분적 손상에 곧바로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다.
거미줄과 달리, 육각관계 네트워크에는 주인공이 있다. 즉, 육각관계라는 복잡계에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주인공 허브 (hubs)가 있다. 그 주변엔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 과거의 악연, 순애보 등등의 다양한 성격을 가진 조연 노드 (nodes)들이 있다. 그러니까, 육각관계라는 복잡계는 큰 허브와 훨씬 중요도가 떨어지는 작은 노드들로 이루어진 이질적 (heterogeneous) 네트워크이다. 이런 구조는 허브가 상하기 전까지는 작은 노드들의 손상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 탄탄함을 자랑한다. 즉, 주변인물이 스리슬쩍 사라져도 큰 줄거리는 별 손상 없이 계속된다. 하지만 중심 중심인물들이 흔들리면, 그동안 잘 버티던 구조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럼 인간사회라는 복잡계는 거미줄처럼 같은 사회일까? 아니면 육각관계 드라마같은 사회일까? 인간도 원시 사회는 규모도 작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역할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서로 도우며 사는 거미줄에 가까운 단순한 사회였을 것 같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다르다. 원시시대와 비교할 수 없이 커진 사회가 효율적으로 굴러가려면 이질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초 대기업, 초거대 스타가 수천만, 수억 명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두메산골, 외딴섬에서도 클릭 몇 번이면 두바이의 스타 천만장자가 어제 무슨 새 차를 샀는 지를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나? 이런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진짜 인간관계를 맺는 데 실패한다.
멱함수
피터 틸이나 샘 알트만 같은 사람들에 의하면 실리콘 밸리는 성공한 극소수가 성공의 열매를 거의 모두 가져가는 ‘멱함수’ 세상이라고 한다. 일상생활하고는 거리가 먼 수학용어지만, 요즘은 실리콘 밸리 거물들의 언급 덕분에 꽤 유행어가 된 듯한다. 멱함수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살벌하다. 0.1%의 승자가 보통 사람의 천배, 만배 가져가는 일이 흔하다. 이건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 정보, 영향력, 심지어 감정의 네트워크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인간 사회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더 이질적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뒤처지지 않으려 탑 1%, 0.1%가 되려고 기를 쓴다.
문제는 이런 이질적 네트워크는 큰 허브가 붕괴될 때 한순간에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서로 종속되어 있는 허브들까지 함께 무너져내리는 특징이 있다. 나는 평생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친구들이 몇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 역시 불안에 휩싸여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와르르 무너질지 모르는 세상이기 때문일까? 불안하다.
불안을 줄일 방법
부서지기 쉬운 극단적 이질 네트워크에 마이크로 허브, 중간 허브들이 생기면 구조는 강화되며 단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인간관계마저 빈익빈 부익부가 된 멱함수 세상. 나는 역설적이게도 여기에 우리가 다시 인간세상이라는 복잡계를 살려낼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인간과 감정적으로 맺는 관계들을 자본이나 인공지능 같은 존재들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영역, 인간만의 영역이다.
보통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작은 허브가 되어 건강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작은 거미줄 그물눈이 되는 것. 과거에 있었던 서로에 대한 의지와 믿음을 되살리는 것. 이건 “우리 서로 사랑해요!” 같은 감정호소가 아니다. 오히려, 이제 살길은 보통 사람들끼리 서로 연대하는 방법말고는 오래 버틸 수 있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다행히 인간이 인간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은 사실 극도로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다. 멱함수 세상의 탑 1%에 속하려 아등바등하는 힘의 백분의 일만 써도 성취할 수 있는 목표 같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연대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