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된 미래를 대비할 수 없는 나

별다른 방법이 없는 내가 선택한 생존법

by 프린스턴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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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바꿀 미래는 어떨까?

금을 모아라, 기계가 흉내 못 낼 기술을 배워라, 인공지능과 인간 모두를 통괄하는 탑 매니저가 돼라. 충고는 쏟아진다. 하지만 금 살 돈 없고, 탑 매니저 자리에 올라갈 가능성 없고, 기계가 흉내 내지 못할 새 커리어를 가질 시간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대체 무엇을 해야 될까?


내가 챗 지피티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쏟아냈지만 사실 인공지능 덕분에 우리가 할 수 있게 된 것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가져온다는 미래는 여전히 걱정된다. 인공지능 덕에 이토록 작업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데, 아무도 해고당하지 않고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어요” 같은 미래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이미 시작된 인공지능 개발 경쟁은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미래의 장악력을 높이려는 거대 빅테크 기업들과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수많은 사업장, 학계 생존을 위한 성과가 필요한 연구자, 그리고 국제적으로 경제적, 군사적 장악력을 높이려는 국가라는 3개의 크고 단단한 축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동안 고심 결과, 나에겐 그들에 맞서거나 미래를 대비할 능력이 거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기예보는 들었지만 그냥 다가오는 태풍을 그대로 맞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공지능 에이전트의 통제와 자동화의 회오리바람을 맞으며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몸을 피할 작은 집이라도 지키기 위해선 창문에 나무판을 덧대는 것 정도의 소소한 준비 외에 내가 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진심으로 안 보인다.


그래서 나는 집중하기로 했다. 나의 물리적 신체와 정신, 감정에. 이것 만큼은, 지나치게 자동화된 미래에서도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는 수백만 년의 진화의 결과 만들어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지능, 진짜 몸이다.


나라는 인간의 진짜 지능, 진짜 몸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는 무엇일까? 기억력이 쇠퇴해 가고 신체의 강인함과 민첩함을 잃어가는 늦은 중년의 나이에 피아노를 연습하기로 한다. 그냥 취미로 좋아하는 곡을 가끔 치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뇌와 신체가 얼마큼 강인한지. 실험해 보기로 한다.

피아노 연주는 음악을 이해하는 대뇌의 전두엽

손가락의 움직임을 조절하고, 기억하고, 음악적 리듬과 맥락을 만드는 기저핵

손가락의 속도와 힘을 수천 분의 일초, 수 뉴튼 단위로 초 미세 조절하는 소뇌

이들의 실시간, 정확하게 통합하는 능력은 현재의 인공지능이 흉내 내고 싶어 하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진정한 에이전트라 감히 말하고 싶다.


실험 계획을 짜자. 이 모든 것을 최대한 이용하여 중년의 아마추어인 내가 연마해서 다다를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는 어디인지를 음계 속도 변화를 통해 측정해보려고 한다. 들으니, 인간의 기저핵과 소뇌는 생각보다 많이 늙지 않는다고 한다. 손가락 근육의 노화도 생각보다 느리다고 한다. 이 것이 사실이면 체계적인 연습으로 중년의 나도 음계 연주 속도를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난 30년간 메트로놈 120 BPM이 넘는 속도로 음계를 쳐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목표치를 감히 144 BPM으로 잡아본다. 이건 중년 아마추어들이 새해 결심으로 삼는 속도가 아니다. 어렵겠지만, 도전해보고 싶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 과정을 담은 글들을 써보려고 한다.


만일 성공한다면 이건 내겐 큰 희망이 될 것이다.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는 내가 현재 인공지능의 연산능력과 로보틱스로 흉내조차 내기 힘든 수준의 뇌와 신체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던질 임팩트는 없는 나만의 실험이지만, 미래의 자동화된 세상에서도 내가 사실은 인간의 위대성을 지녔다는 믿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것 같다. 그런 기억은 마치 작은 창문에 댄 나무판처럼 무서운 인공지능의 회오리바람에서 나를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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