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지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다섯 살 윤이에게는 마음이 닮은 단짝 친구가 있다.
그냥 친구는 많지만, 눈만 마주쳐도 웃게 되는 친구는 귀하다. 둘은 공원에만 데려다 놓아도 한 시간은 놀 수 있다. 평일엔 어린이집, 주말에는 가족끼리. 말 그대로 일주일 내내 만난 적도 많다. 매일 봐도 헤어질 때 아쉬운 그 친구가, 갑자기 어린이집을 그만두게 됐다.
나는 아직 그 사실을 윤이에게 말하지 못했다.
윤이가 다니는 직장 어린이집은 연중 예기치 못한 이별이 생긴다. 엄마의 이직이나 퇴사가 결정되는 순간,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남짓이다.
“왜 그 친구는 더 이상 어린이집을 다닐 수 없어?”
양육과 회사생활이 엉겨 붙은 이 구조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이별의 의미를 알까 싶어 가볍게 툭 말해줄까 했지만, 너무 일찍부터 오래 슬퍼할까 봐 망설여졌다. 당장 아이들의 즐거운 시간을 지켜주고 싶어서 갈팡질팡 하다 보니, 어른들만 아는 비밀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이별까지 D-14.
어른들은 아쉬운 마음에 송별회 명분으로 자꾸 만나는데, 정작 아이들은 헤어짐의 준비보다는 더 친해지고만 있다. 윤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수많은 이별 중, 아마 이게 첫 번째일 것이다.
주사는 알고 맞아도 아프고, 이별도 알고 해도 슬프다. 윤이 몫의 슬픔은 나도, 남편도,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자라면서 우리는 셀 수 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한다. 반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고, 단짝이던 친구와 멀어지고, 또 새로운 친구와 가까워지고… 내향인에게는 마음을 주는 것도, 마음에 힘을 빼는 것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이별이 잦았던 건 캐나다 어학연수 때였다.
학교는 학기라는 게 있어 만남과 헤어짐의 시간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어학연수 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캐나다에서의 남은 시간이 제각각이다. 그러니 친구를 사귈 때, “여기 얼마나 계시나요?”는 필수적인 호구조사다. 너의 남은 길이와 나의 남은 길이를 맞대어보고, 엇비슷해야 시간을 투자해볼만 하다. 6개월 차까지 매일같이 붙어 다니던 친구 히로시가 일본으로 떠나던 날, 나는 눈알이 씻겨 내려갈 정도로 이틀 내리 울었다. 그 뒤로도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캐나다를 떠나갔지만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기간 동안 나는 나보다 체류기간이 짧은 친구는 새롭게 사귀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야 이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정작 헤어지고 싶은 사람과는 좀처럼 헤어지지 못하고, 오래 함께 하고 싶은 동료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짧다는 게 회사에서의 헤어짐이랄까.
이별은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앞에 서로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떠나는 사람의 이별이 낯설고, 그립고, 그렇지만 그걸 이겨내면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이라면, 남겨진 자의 이별은 마음이 무뎌지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한 회사, 한 부서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나는 쭉 남겨지는 쪽이었다. 명함의 직책이 두어 번 바뀔 때쯤, 동료들과의 이별이 서서히 무뎌지고 ‘그럼 저 일은 누가 인수인계받지?’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같이 웃은 시간이 많을수록, 이별 뒤의 침묵은 더 오래 남는다. 윤이 앞에 놓인 헤어짐의 순간은 피할 수가 없다. 부모인 우리는 아이가 덜 아프게 도와주고 싶지만, 아이는 결국 스스로 무뎌지고 강해지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별이 슬프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한 시간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윤이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끝을 아는 마음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