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은 자라지 않는다

편안함의 대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by 연시홍

"엄마, 우리 호텔 가자!"


윤이에겐 수영장에 가고 싶다는 의미다. 윤이가 태어난 이후로, 여름휴가는 거의 호캉스로 보냈더니 윤이에게 호텔은 곧 수영장이 있는 곳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호텔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까웠는데, 지금은 호텔만큼 편한 휴가가 또 없다. 시원한 곳에서 밥 먹고, 커피 먹고, 수영도 하고, 무엇보다 어딘가 가야 한다는 압박 없이 여행 온 기분까지 낼 수가 있다니! 그 맛을 한번 본 뒤로 호텔은 나에게 끊을 수 없는 휴양지가 되었다.


하지만 윤이의 호텔 타령을 듣고 있노라면, 윤이에게 너무 처음부터 호텔의 편안함만 알려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우만 먹던 입이 호주산 소고기를 거부하듯, 상향된 경험은 하향의 가능성을 쉽게 잠식한다. 불편함에서 편안함으로의 전이는 감탄을 낳지만, 그 반대는 짜증을 만든다.

불편한 것을 견디는 힘 없이 편안함에만 익숙해지면, 결국 감수할 수 있는 역치가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다. 내 몸 편하자고 아이의 경험을 좁히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물음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 새롭게 시작한 것이 바로 캠핑, 그리고 주말농장이었다. 윤이가 곤충, 자연에 대한 관심이 엄청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했고, 또 조금 불편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집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인류는 불은 이렇게 피워서 요리를 해 먹었고,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채소들을 키우려면 이런 수고로움이 필요하다고. 다소 이상적이고 장엄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지만, 곧 현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불편함 마저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나는 여전히 조금이라도 가깝고 후기 좋은 캠핑장을 예약하기 위해 예약 오픈 시간에 들어가 클릭 전쟁을 하고 있었고, 잘 정돈된 불편함만 사고 싶었다. 주말농장도 비슷한 결이었다. 쿠팡에서 주문한 거름흙을 붓고, 화원에 가서 이미 어느 정도 자란 모종을 옮겨 심는다. 나조차 온전히 내 한 몸으로 쌓아 올리는 생존의 경험이 없다 보니, 내가 윤이에게 주는 경험은 모두 잘 다듬어진 도전이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편안함에 익숙해진 걸까? 기차를 타고 여행하다가 찜질방에서 자기도 하고, 도보 여행을 하며 폐교에서 침낭 깔고 자던 시절도 있었는데, 편안함에 익숙해지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다. 월급노동자가 된 이래로, 작고 소중하게 주어지는 휴가에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게 됐다. 비엔나 어느 구석 8인실 호스텔에서 밤새 들락거리는 사람들로 잠을 설친 이후, 나는 여행에서 더 이상의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러라고 돈 버는 거지.


그런데 문제는, 나의 편안함이 아이의 경험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편안함은 비례하는 감각이다. 돈을 쓰면 그만큼 나에게 편안함이 제공된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바깥 온도 35도에 동네 놀이터에 가서 놀면 공짜지만,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편안함을 사려면 키즈 카페를 가서 3만 원을 태우면 된다. 경험이 돈으로 치환되는 경험을 아무 자각 없이 하다가, 문득 과연 이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만하면 살만한데?'하는 경험치가 얕다 보면,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의 폭이 좁아지지 않을까. 어쩌면 이 틀을 벗어나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도전 앞에서 더 많이 머뭇거리지 않을까.

경험의 제한은 사고의 폭을 점점 압축해서 작은 네모 상자 안에서만 움직이게 한다.


내가 더 많은 불편함을 감수할수록, 윤이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거친 바닥을 맨발로 걸으면 처음엔 아프겠지만 언젠가 발바닥엔 단단한 굳은살이 배기겠지. '이 정도쯤은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을 윤이가 몸으로 배웠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엔 항상 타던 차를 두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시내를 나가봐야겠다. 포장된 체험이 아니라, 생으로 마주하는 불편함. 언젠가 윤이가 새로운 도전을 앞에 두고, 이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에이, 이 정도는 괜찮아. 엄마랑도 해봤는데.'

이전 15화1등을 원하지 않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