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은 우리를 멈춰 세운다

균형의 허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by 연시홍

"어머님, 윤이가 계속 배가 아프다고 해요."


어린이집에서 걸려온 전화에 식은땀이 났다. 오후 회의 스케줄과 남은 업무를 헤아려보며, 그렇다고 아픈 아이를 방치하는 엄마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지금 바로 가야 하는 상황일까요?"


‘죄송합니다. 지금은 도저히 갈 수가 없어요.’와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사이의 그 어딘가. 워킹맘, 워킹대디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는 건, 그 살얼음판이 무너지지 않는 지점을 찾았다는 뜻이다. 나의 경우 ‘찾았다’는 능동태라기보다, 두 방향을 모두 바라보며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 그냥 서 있는 수동태에 가깝다.


어린이집이 회사와 가까워서 하원 및 긴급 대응 담당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일에 쓰는 에너지와 시간이 줄면서 워라밸이 맞춰졌다. 예전에 일에 투입하던 에너지가 100이라면, 지금은 한 70 정도 쓰는 것 같다. 주어진 일은 꾸역꾸역 삼키되, 집에 가서 아이랑 최소 1시간은 놀아줄 분량의 에너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절대 나서서 뭘 더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전투력을 장착한 채 하루를 보낸다. 회사도 나에게 큰 기대가 없는 눈치다.


어쩌면 나의 균형은 최선을 다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내려놓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백하건대, 나는 사실 워킹맘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시에 땡 하면 얄짤없이 일어나고, 회식도 일 년에 한두 번 참석할까 말까. 한창 열심히 달리는 동료들 사이에서 열외로 빠져있는 것 같았다. 입으로는 ’ 아유, 아이가 아프면 어서 들어가 보셔야죠.‘라고 말했지만,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들’은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듯 허공을 응시했고,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마음이 늘 급했다. 막상 내가 ’ 그들‘이 되어보니 알겠다. 내 눈이 정확했다는 걸! 내 몸은 회사에 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언제나 아이에게로 향하는 걸 막을 수 없다.


그러면서 또, 사회인으로서 나의 미래에 대해 자꾸 생각한다. 내가 이대로 가다간 몇 년 안에 도태되지는 않을까? 나이가 더 들어서 나를 받아주는 회사나 팀이 없어지면 어쩌지? 지금 빨리 이직해서 자리를 잡아야 하나?


일에 쓰는 절대적인 에너지가 줄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돈도 잘 벌고 경쟁력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이거 완전 도둑놈 심보 아닌가. 욕심인 것은 알지만 나의 정체성 일부가 자의가 아닌 타의로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채용 공고를 검색하게 된다.


어느 한쪽도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양팔을 잡아당긴다. 어찌어찌 외발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오히려 나를 꼼짝 못 하게 한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할까?”하며 이력서를 쓰다가, 네이버 길 찾기로 출퇴근 시뮬레이션을 해보고는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기왕 하루의 8시간을 보내는 회사인데 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퇴근 후에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 중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아직 딱 부러지게 고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균형이라는 명목으로 언제까지나 멈춰있을 수는 없다. 나에게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수평이 아닌, 내가 직접 주체가 되어 어디에 더 무게를 둘 지를 정할 시점이다. 기울어져야 흐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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