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이른 아침, 윤이 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윤이는 분리 수면 중이라, 혹시나 새벽에 윤이 소리를 놓칠까 봐 늘 방문을 열어 놓고 잠든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워킹맘의 자녀답게, 아침마다 윤이를 허겁지겁 깨워서 양치만 간신히 시켜서 등원시키는 것이 일상이다. 깨워야 간신히 일어나다 보니 아침에 윤이 방에서 소리가 날 일이 없는데, 의아해하며 윤이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고, 깜짝이야!”
방에는 혼자 등원 복장으로 싹 갈아입고 문 뒤에 숨어 있는 윤이가 있었다. 윤이의 까만 조약돌 같은 눈이 장난기와 뿌듯함으로 반질거렸다.
“왜 엄마아빠 안 부르고 혼자 옷을 갈아입었어?”
“내가 빨리 준비해야 엄마가 빨리 회사에 가지!”
네 돌이 지난 윤이는 부쩍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발 받침대를 가져와서 높이 올려진 컵을 꺼내 혼자 정수기의 물을 따를 수 있게 되었으며, 엄마 얼굴에 로션을 발라줄 수도 있다. 샤워하면서 꼬물꼬물 혼자 머리도 감아보고, 문 앞에 놓인 택배까지 같이 옮겨준다. 이쯤 되면 거의 좀 귀여운 친구를 데리고 다니는 느낌이다.
그만큼 손이 덜 가게 되면 마냥 기쁠 줄 알았다. 그러나 아기의 얼굴이 사라지고, 점점 어린이가 되는 윤이를 보면 이상하게도 아쉬운 마음이 커진다.
부모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모래시계 하나씩 품고 있을 것이다. 한쪽에는 ‘빨리 컸으면’ 하는 마음, 반대쪽에는 ‘조금만 천천히 컸으면’하는 아쉬운 마음이 딱 절반 씩. 그날그날 두 마음이 모래시계 속 모래처럼 서로 오간다. 오늘은 너무 빨리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다는 마음 쪽으로 모래시계가 기운다.
아이와 어른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수학적으로만 따져봐도 그렇다. 1년은 태어난 지 36년 된 나의 인생의 약 2.7% 정도인 기간이지만, 태어난 지 4년 된 윤이에게는 전체 인생의 25%나 되는 긴 기간이다.
분기 마감 4번 하고 나면 어떻게 지나가는지 기억도 안 나는 1년이, 윤이에겐 인생의 4분의 1이라는 무게로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전체 인생에 비례해 1년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기에, 1년의 속도감이 더 빠르게 느껴지나 싶기도 하다. 아이에게 하루하루가 쌓이는 모습이 눈으로 보인다.
그만큼 아이에게 하루가 갖는 의미가 크기 때문일까? 아이의 하루는 어른의 하루보다 훨씬 해상도가 높다. 윤이의 기가 막힌 기억력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하원길에 사무실에 잠시 두고 온 것이 있어서 윤이와 잠깐 회사에 들렀던 적이 있다. 지난번 회사에 데려왔던 것이 1년은 더 되었던 것 같아서 혹시 엄마 회사를 기억하나 윤이에게 물었다.
”윤아, 여기 왔던 거 기억나? “
”그럼! 지난번에 아빠 차가 고장 나서 왔었잖아! “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지난번 회사에 잠시 들렀던 이유가 차 배터리가 방전되어 급히 자동차 보험을 불렀을 때라는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날 저녁의 일은 나에게는 스쳐가는 가벼운 순간이었지만, 윤이에게는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던 것이다. 그 기억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기에 더 또렷한 게 아닐까.
”엄마는 깜빡 잊고 있었는데, 윤이는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해? 대단하다!”
윤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 나는 그냥 나무랑 새랑 꽃들이 다 말해주는데?”
오늘도 윤이 인생의 귀한 하루가 지나간다. 그 하루를 지켜보면서, 잊고 있던 나의 시간의 무게도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