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아쉬울 것 없이

by rainy

잠이 안 와

문득 외할머니의 인생에 대해 떠올려본다.


떠올려보니 너무 기구하여 마음이 아리다.


이래서 외할머니만 보면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지 싶다.

외할머니 살아계신 생전에도 외할머니만 보면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동네에서 예쁘기로 유명했다던 할머니는

그 나이분들의 결혼이 그렇듯 어른들끼리 이야기해

같은 동네였던 할아버지랑 하루아침에 결혼을 했는데,

할아버지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재능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걸 펼쳐서 돈을 벌 정도까지는 아니었기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삼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던 것 같다.


하여 우리 할머니는 결혼을 해서도

남편의 그늘 속에서 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뭐 그 시대분들 중에 그렇게 팔자 좋은 여자가 얼마나 있었겠냐마는

그래도 논리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가부장적인 질서 속에서 살아오신 삶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남편의 경제적 책임 아닌가.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늘 성실하게 돈을 벌고 계셨지만,

엄마한테 들었던 할아버지가 젊었던 시절에는

집에 생활비를 안 줬기에

어쩌면 그런 개념조차 없었던 건지

아무튼 할머니는 생활 전선에까지 뛰어들어야 했다.


젊은 할머니는

가끔 유튜브에서나 볼 법한 전통시장에서 건어물을 팔기도 했고

자판기에 물건을 대며 돈을 벌기도 했다.

어렴풋이 할머니 손을 잡고

할머니의 삶의 터전이었던 시장에 갔던 조각 기억들이 있다.


그렇게 한 가정의 경제적 책임까지 오롯이 혼자 감당하며

우리 할머니는 세 아이를 낳았다.

당시의 여자가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면

적게 낳은 편에 속하겠지만,

아마도 여러 가지로 할머니에겐 체력이 부쳤을 것이다.

할머니는 내 눈에도 항상 곱고 약해보이고 야리야리했으니까.

그런데 단지 그것보다도

그 세 명이 하나같이 모두 딸이었다는 사실이

할머니의 삶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첫째는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둘째인 이모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를 절 뻔했지만 다행히 완치되었고

셋째였던 우리 엄마는 심장 기형으로 태어나

태어나자마자 생사의 갈림길인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할머니가 그때 올렸던 간절한 기도에 대해 들려준 적이 있다.

얼마나 간절했을까.

열 달을 품어 아기를 낳았는데

첫 아기부터 잃고 둘째 셋째가 연달아 아프다니

모성애가 엄청 강한 사람이었던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는

아들을 갖고 싶어했고,

그 이유를 핑계 삼아 할머니를 한 번씩 때리기 시작했다.

엄마 말로는 약간의 의처증도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예쁜 아내가 돈을 버느라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내심 신경 쓰이고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의심하고

그러다 결국 손찌검으로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못났다.

할머니는 설령 세상 사람이 거의 다 부정을 한대도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닌데.


의심이 돼서, 아들을 못 낳아서의 이유로

할머니는 남편한테 맞았다.

맞으면서 살았다. 살면서 맞았다.

나는 이 두 가지 사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인지 부조화가 올 정도로 모순으로 느껴지는데.

우리 할머니는 맞고 그 다음날에도 밥을 차리고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며 길러내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림을 너무 잘했고

아이들을 잘 키워냈고

치매였던 시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10년을 모시고 살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삼촌을 입양했다.

원래는 다른 사람을 입양하려고 했었는데

아기의 몸 군데군데 있는 담뱃불로 지진 화상 흉터에

마음이 쓰였던 할머니는 삼촌을 입양했다고 한다.

삼촌은

키우다 나중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지 발달이 초등학생 수준에 머무르는

지적 장애가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학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보았다.

나는 착한 할머니의 선택이,

그로 인한 삶이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 할머니는

경제적 책임까지 오롯이 지면서

살림도 혼자 전부 다 하시고

치매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친정에 어쩌다 한번 드나드는 것은 싫어하는 남편을 또 감당하고

남편의 일상적 손찌검도 견디며

그런 남편을 또 살뜰히 보살피기까지 하고

아이들 셋을 최선을 다해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길러내는 인생을 살았다.

할머니는 항상 좋은 음식은 할머니 자신이 아닌

할아버지를 드시게 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또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질서 안에서

여자로서 희생할 것을 다 희생하며 살아오신 거라면

남편의 그늘이나

장성한 아들의 보필

그런 것으로라도 보상 받으셨으면 좋았을텐데 싶은데

그렇다면 그 시대의 보편적인 여성의 삶을 사셨구나

하고 조금은 가뿐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텐데,

그 보상이 할머니에겐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편의 그늘 같은 달콤한 것도 없었고,

친자식보다 더 마음 쓰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가장 걱정하신 부분이었던

삼촌은 당연히 할머니에게 무언가를 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나마 조금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자신과 같은 여성인 딸들에게

할머니는 어떤 바람조차 딱히 가질 수 없었을 테고.


그리고 할머니는 손녀딸인 나를

아기 때 키워주셨다.

할머니의 사랑이 일정 부분 나를 이루었다.

어렸을 때의 꿈에서는 대부분 할머니가 나왔고

장소는 보통 할머니네 집이었다.

엄마아빠랑 산 기억이 당연히 훨씬 길 터인데도

할머니의 따뜻했던 사랑이

당시 어렸던 나한테는 처음 경험한 사랑이었고 그만큼 강렬했었나보다.

사랑받은 기억은 지어낼 수가 없으니

분명히 그만큼 사랑받았을 것이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노년에는

할머니에게 많이 고마워하시고

투병하는 할머니를 오래간 옆에서 살뜰히 보살펴드려서

할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할아버지에게

고마워 라고 입 모양으로 말씀하셨다고 하니까

그나마 그게 작은 위안이 되곤 한다.


할머니가 평생을 그렇게 성당을 열심히 다니시며

기도한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아마도 삶의 구석구석, 간절하게 기댈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남편의 외할머니를 뵈었을 때,

자세한 사정은 하나도 모르지만

그냥 단지 현재의 할머니 모습 자체가 참 부러웠다.


든든하게 옆에 있어주는 남편과 자신의 건강한 몸,

그리고 7남매나 되는 자식들,

특히 그 나이대 할머니들에게는 더 중요한

아들의 유무와 그 아들들의 자리 잡음.

그냥 우리 할머니도 누렸다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요소들이 한눈에 다 보여서

참 부러웠다.


할머니가

만약 그 시대에서 강요 받았고 스스로도 사로잡혀있었던

의무와 역할, 말도 안 되는 희생을 다 던지고

그냥 사회와 무관한 개인으로 사셨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랬다면 어쩌면 우리 엄마도, 그리고 나도 없었을 수 있겠지만

할머니 자신의 삶만 생각한다면

조금 더 홀가분하고 행복하고 편안한 인생을 사시지 않았을까?

그건 할머니 기준에서는 어차피 행복이 아니었으려나?


물론, 결국 개인의 삶으로서는 비극이어도

역사에 순응하는 개인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이 있는 거겠지만,

그 팩트를 감사히만 생각하기에는

나는 개인주의적이고

역사와 사회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택하고 싶다는 점에서 보자면 이기적인 인간인 것 같다.


다 그렇다 쳐도

어쨌든 딱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그 이유를 이길 어떠한 명분도 나로서는 찾지 못하겠다.

그래서 할머니의 삶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나보다.


그래도 엄마랑 이모는

할머니보다는 몇 배는 진보된 여성의 삶을 사셨고,

엄마랑 이모의 딸인 나랑 친척언니는

아쉬울 것 없는 개인의 삶을 살고 있다.

‘여성’이라는 조건이

구속이나 희생의 다른 말이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할머니가 사셨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을

내가 살고 있다.

그래서 더 할머니에게 크게 빚진 기분이 든다.


내 딸은

나보다도 한층 나아진, 자유로운 개인으로 훨훨 살 수 있도록

내가 만들어줄 것이다.


또 하나 말도 안 되지만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할머니 임종 때 내가 귀에 대고 한 말처럼

다음 생의 할머니는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

공부도 하고 싶은 만큼 다 해보고

좋은 남편 만나

지금 내가 남편으로부터 느끼는 행복감도 경험해보고

마냥 행복하고 철없이 살아보셨으면 좋겠다.

아님 차라리 자유로운 싱글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회 속에서 나의 위치를 알되,

좋은 건 받아들이고 악습인 건 무시하기도 하며

조금은 그것에서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자.

개인으로서의 내 삶이 먼저다.

내 딸이 살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삶과 태도를

내가 먼저 살아내자.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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