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잊지 못할 그 날의 기록

다시 없을 새롭고 특별한 경험

by rainy

출산은 제왕 절개를 통해 하기로 결정했다. 38주 거의 직전까지 전치 태반 소견이 있었기도 했지만, 설령 아무런 문제가 없었더라도 나는 제왕 절개를 선택했을 것이었다. 남편은 출산 방식을 선택함에 있어서 한 마디도 보태지 않고 온전하게 나의 판단으로 맡겨주었다.


출산 전날 입원을 해야 했기에 마치 호캉스를 가는 기분으로 출산 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많이 상상했던 순간이었다. 긴장과 설렘이 가득했다. 입원 수속을 마친 뒤에는 남편과 쌀국수도 시켜 먹고 평소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8시 수술이었는데, 새벽에는 잠이 한숨도 오지 않았다. 덕분에 인생이 바뀌기 전날만 느낄 수 있는 그 고요함을 만끽하던 시간이었다. 수술이 잘 될 거라고 믿었지만, 그래도 출산인데 수술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리스크로 죽을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도 안 할 수는 없었던 터라 보호자 배드에서 잠든 남편을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래도 남편 덕분에 사랑다운 사랑을 해보았다 싶어 다행스러웠고, 내가 만약 출산을 하다가 죽더라도 아이에게 좋은 아빠로, 보호자로 역할할 사람이라는 믿음이 마음 한 구석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와중에 코 골고 잘만 자는 남편이 웃기고 귀여웠다. 자기 몸으로 하는 수술이라도 저렇게 잠이 잘 올까? 궁금했지만, 내가 아는 남편은 그래도 아마 똑같이 코 골고 잘 잤을 사람이었다. 그것 또한 내가 좋아하는 그의 한 부분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침이 왔고, 수술 전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인생에서 처음 하는 수술이라 그런지 긴장보다는 설렘이 더 크게 존재했는데, 다른 이유가 아니라 아이를 만나는 일이어서 그 설렘이 더욱 배가되었으리라. 드라마에서나 보던 수술실의 커다란 조명과 의료진들의 분주한 움직임조차 신기해, 하나하나 눈에 담아야지 생각했다.


수술 전 대기실에서 배드에 누운 채로 마취과 의사 선생님을 먼저 만나 여러 가지 설명을 듣게 되었는데, 하반신 마취를 할 예정이고 동시에 정신은 수면 마취로 재우겠지만 중간에 아이가 나올 때만 잠시 흔들어 깨울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이전에 공황으로 기절 직전까지 갔었던 경험이 몇 차례 있어서 수술 중 또 공황이 올까 무섭다고, 아이는 수술이 다 끝나고 만나도 되니 깨우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께서는 배를 가르면 5분 이내에 아이를 꺼낼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왜인지 힘이 되었다. 겨우, 5분이면 된다. 그럼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수면 마취가 그렇듯 몇 초만에 잠에 빠져들었다.

누가 흔들어 나를 깨우는 게 느껴졌다. 깨우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었는데 기어코 나를 깨우신 것이었다. 순간, 덜컹 덜컹하며 배에서 아이를 힘주어 꺼내고 계시는 감각이 느껴지고 익숙한 담당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왜 이렇게 안 빠져?” 그런 소리였다. 다행히 공황 증상은 없었기에, 다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생각했다. 아이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다시 없을 순간. 평생 기억하고 싶을 순간.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들으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초음파로 매번 확인을 해도 정말 실제로 존재하는 게 맞나 믿기지 않았었던 대상을 눈으로 보고 그 울음 소리를 들으니, 설명할 수 없는 벅참이 밀려왔다.


너였구나… 너였어? 그런 생각을 하며 수술 후 처치를 하는 동안 다시 또 잠들었다.

내 어리석었던 판단을 무시하고 그래도 감동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본인의 판단으로 나를 깨워주신 마취과 선생님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벅찬 순간을 가져보았다.


나는 평생 ‘창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내가 해낸 몇 안 될 창조적인 일들 중에 비교도 안 되게 가장 창조적인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려 사람을 만들어내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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