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회복의 반복

나무 같은 남편

by rainy

꼭 우울증에 걸린 것 같은 목요일이었다. 지금 너무 힘든데 이 힘든 육아가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희망이 없어보였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하지? 비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항상 해야할 것들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는 착각이 들고, 지금도 그런데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어깨가 무거웠다. 혼자만의 형벌을 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게 우울증인가?


더없이 순딩하던 내 아기가 돌을 지나면서부터 점점 자아가 생겨나는지 온갖 떼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집 안에서 소소한 사고들을 치고 다니는데, 사고는 또 다른 사고를 유발하는 데다가 하루종일 종종대며 이 사고들을 수습하는 것에만 몸과 마음이 지쳐서 나는 아이의 행동을 자꾸만 저지하게 되고 그러면 아이는 악을 쓰며 울고 다시 나는 우는 아기를 달래고 혹은 사고 친 것을 수습하고의 반복인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은 밀착 육아를 하는 중이다보니 나에 대한 애착이 심한 편인데, 내 목을 자신의 팔로 감은 상태에서 자꾸 발로 내 다리를 밟고 올라서는 것도 요새 들어 생긴 버릇이었다. 생각보다 무겁고 아프다. 아기는 11.6kg로 동개월수 아기들 중 상위 5%에 달한다. 키도 크고 그만큼 무거운 내 아기. 내 몸의 1/4이 넘는 무게다. 나는 다른 것보다도 아기가 무거워서 힘들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너무 힘들다는 카톡을 보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서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내가 필요를 말할 때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다. 응, 그러자. 알아보자.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웃어주지 못했다. 밝은 척도 못했다. 반쯤 넋이 나가있는 상태로 눈물만 꾹 참고 있었다. 남편은 오자마자 베이비룸의 배치를 조금 더 거실 중앙으로 바꾸고, 아이가 손에 닿아 사고 칠 수 있는 것들을 옮기고 치우며 집 안의 여러 가지를 손본다. 아이가 어질러 놓은 집도 하나하나 치운다. 무엇보다 아이와 나를 분리시켜 주어 잠시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쉬고 나니 다시 마음에 평안과 여유가 찾아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문득 그날따라 새삼, 남편이 참 신기하게 보이는 것이다. 나는 결혼 후에 이런 일 저런 일로 흔들리고 마음이 무너질 때가 많았는데, 남편은 한 번도 흔들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 받을 법도 한데 집 안의 고민으로 들인 적이 없고, 시댁 일로 내가 무너지며 힘들어할 때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하지만 완전하게 내 편에 서주었고, 육아로 힘들어서 오늘처럼 내가 눈물 콧물을 찍는 날들에도 같이 예민하게 굴면 충분히 싸움이 날 법한데 남편은 항상 차분하고 평온하기만 하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내가 아무리 안달복달을 한다 해도 남편이 묵직한 나무처럼 있어주니 나는 남편만 오면 그 너른 그늘 안에서 쉬며 지친 마음을 금세 회복하곤 하는 것이다.

새삼스레 결혼을 앞두었던 때의 내 초심이 생각났다. 실은 내가 남편을 평생 지켜줄 마음으로 결혼한 것이었는데, 누가 누굴 지켜주고 있는지 참.

내가 주양육을 맡으며 육아의 힘든 점들을 혼자 대부분 감당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 멘탈을 잡아주고 내 뒤에서 든든하게 항상 같은 태도로 있어주는 남편이 있어 내가 마음껏 힘들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사실 별거 해준 것이 없는데 그 묵직함이 뭐길래 마음에 금세 큰 쉼을 얻은 내가, 그날 밤 남편에게 오빠는 꼭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며 마무리한 밤.


아마 다음 주 목요일쯤이 되면 나는 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기 낳은 게 잘한 선택이 맞는지 의심하고 허리에는 파스 세 장은 기본으로 붙이고 있겠지만, 그래도 또 남편의 그늘에서 잠시 쉬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keyword
이전 24화내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