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사실 인지하기

:-)

by rainy

나의 엄마가 나한테 몹시 함부로 대했던, 그렇게 대했으면 안 됐던 시간들이 길게 있었다. 감정의 쓰레기통, 폭언과 차별, 가부장적 가치의 강요 등등의 그런 흔하디 흔한 실수들. 이를 자주 꺼내어 기억하지는 않지만, 그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기에 지금의 나를 그 시간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또 없는 문제였다.


엄마는 오랜 시간 ‘그때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는 이유 하나로 당당한 태도로만 일관했다. 그러다 내가 결혼을 한 뒤에 특히 내가 아기를 낳고 난 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과를 반복적으로 몇 번이나 전하곤 했다. 엄마는 자주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너무 부족했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엄마의 사과가 고맙긴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무 때늦은 사과였다. 마음의 문을 일찍이 닫았고 그런 지 너무 오래되어 엄마에게 심적으로 의지하거나 마음을 내어놓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고, 무엇보다 이제 와 어떤 기대라고 할 것이 안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진심 담긴 사과를 듣는다고 해서 갑자기 관계가 달라질 것은 없게 느껴졌다. 나는 이제 엄마의 사랑이나 관심, 사과가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엄마가 당당하게만 굴 때보다는 마음이 녹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없었던 시간이 사과를 받는다고 해서 갑자기 있었던 시간이 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것을 나도 이때 알았다. 우리는 그 시간을 잃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엄마랑 사이가 안 좋거나 내가 자식 된 도리를 안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항상 심적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관계. 속마음을 다 풀어놓으면 살짝 어색하고 싫고 부담스러운 느낌. 그게 우리였다. 내가 그것을 원한다.

어른이 될수록 그리고 나도 엄마가 되어 여러 육아 서적을 읽고 공부할수록 나의 엄마가 한편으로 더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원망보다는 아쉬움 쪽이었다. 그나마 내가 그 시절의 엄마를 이해해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사실은 그것이었다. 엄마는 엄마로서 역량이 부족했구나.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을 테고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렸던 나이에 엄마가 되었으니까.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역량 부족의 문제면 어쩔 수 없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역량만큼 살아가니까. 그렇게 이해했다.


나는 내 아기에게 엄마보다는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있었다. 엄마가 나에게 한 수많은 실수들을 하지 않을 자신이. 부모가 자식에게 무심코 하는 것들 중 어떤 게 실수가 되는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 마음에 구멍을 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그것들은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기에게 그만 좀 하라며 짜증을 낸 날 밤, 나는 내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실수가 별 게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아이는 내 옆에 있는 약자이고, 그랬을 때 순간적으로 흘러나올 수 있는 것 그게 실수였다.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워낙에 순간적이고, 내가 힘들어서 내지르는 비명 같은 것이기에 실수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자각하기도 전에 내 힘듦이 절박해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상처나 무력감 같은 것을 생각 못할 수 있다는 것. 엄마가 그래서 나에게 그랬겠구나. 엄마에게 단순한 이해를 넘어 처음으로 공감한 순간이다. 나의 엄마는 내가 생각해도 평생 힘든 상황 속에 있었고, 그 집에서 가장 약자는 나였으니까.


나도 내 엄마가 그랬듯 부족한 엄마일 수 있겠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의 엄마가 처음으로 이 부분에서 짠하게 느껴졌다. 자기가 부족해서 아이에게 긴 시간 상처를 주었는데, 아이가 그것을 기억한다. 얼마나 후회가 될까 얼마나.

나는 이 날,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나 역시 엄마로서의 역량이 지금으로서 부족하고, 이 집에서는 내 아기가 가장 약자라는 사실 그 두 가지 사실을 인지했다. 아이에게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미성숙한 엄마가 아니라,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훈육을 하는 엄마로 거듭나야 했다. 지금의 아주 작은 실수 정도에서 멈추기를 바라며.


부족한 내 모습을 마주하며 부족했던 내 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것, 그리고 나는 내 부모보다는 더 나은 부모가 될 거고 되어야 한다는 다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중에 나보다 훨씬 더 잘 성장한 어른이 될 우리 아기가 엄마로서의 내 부족함 또한 인지하는 날이 오겠지만 나보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것들이 한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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