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by 청풍

우리는 무의식을 극복해야만 한다.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지금도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그래서 항상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다. 경험이 어떤 것이었던지에 상관없이 그것을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해석해 왔다. 지식과 지혜를 더 탐낼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져 나는 겸손해 진다. 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이런 경험이 있으실 것이다. 내가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더 성장하고 싶을 때 부족하고 모르는 것들 속에서 무기력해지는 속상한 경험말이다. 이와 같이 모른다는 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어떤 지식이나 문제 해결방법을 모른다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 적어도 의식할 수 있는 단계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적으로 깨닿지 못하는 습관이나 감정의 패턴처럼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상태를 '무의식'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무의식이라는 것은 말실수, 꿈, 억압된 감정 등을 통해 드러내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단서가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로 드러나는 무의식을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실수의 반복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해 어떤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흘러가는 흐름으로 생각할 뿐이다. 또한 꿈에서 나타나는 상징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생각하고 그것이 나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무의식은 베일에 쌓인 비밀처럼 쉽게 드러나지 않으며 억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에 접근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른다는 것은 분명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외면하면 우리는 자신이 갇힌 새장에서 날아갈 수 없다. 왜 갇힌 새장으로부터 날아가야 하는가? 어떤 이들은 갇힌 새장이 편하고 굳이 날아가야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새장으로부터 날아가야 하는 이유는 플라톤이 주장했던 것처럼, 그림자를 벗어나 즉 모르는 상태를 벗어나 탐구를 해 나가는 것이 우리만의 진리로 한걸음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깨달음의 상태로서 해를 맞이한 것이다. 이는 곧 무의식 즉 우리의 심연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알 수 없음을 극복하고, 성장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과 같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보다 낫게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의식을 끊임없이 앎으로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냥 모르는 채 살아가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평생 똑같은 생각과 행동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정된 삶을 살아갈 것이며, 나를 변화시킬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삶에서 크나큰 손실이다.


1. 무의식의 패턴 찾기


내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공부를 썩 잘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이쁨도 많이 받았고, 친구들의 부러움과 응원도 많이 받았다. 욕심도 많아 잘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아이였던 것도 맞다. 이렇게 한발 떨어져서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리 아플 것이 없는 보통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성적이 떨어졌던 때가 있다. 문제는 그 후부터이다. 나의 성적이 떨어지고 선생님들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도 나를 걱정하는 마음 반, 그리고 성적이 떨어진 학생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건이 나에게는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직까지도 그렇지만 나는 배움에 있어서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시도와 노력을 지지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생을 믿어주고 그들의 흥미를 인정해 주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내가 성적이 떨어졌다고 그렇게도 창피를 주고 차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 내가 가진 생각은 내가 공부를 잘해야만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는 길은 어디까지나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서 남아 있을 때였던 것이다. 내가 존재 그 자체로 예쁘다기 보다는, 칭찬과 지지는 어떤 성과를 잘 냈을 때 오는 인정같은 것이었다. 그때 받는 상처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 경험은 나에게 항상 숙제같이 남아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항상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내가 어떤 시도를 하고자 하였을 때는 또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것이 나에게 교육이란 정말 무엇인가?를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겉으로 멀쩡하게 학교를 다니고 즐기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과거가 다시 떠오르곤 했다. 특히 내가 어떤 것을 배우려고 할 때 내가 사람들에게 실수를 하면 어쩌나, 내가 어떤 것을 모른다고 하면 어떤 결과가 돌아올 것인지를 항상 생각하고 배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이것은 과거의 어떤 부정적인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시도를 할 때 드러나는 트라우마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연에서 느끼는 깊은 감정의 패턴을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떤 상황에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살피고,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그리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끊임없이 파고들어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게 깊게 뿌리내린 무의식을 알아낼 수 있었다. 과거에서의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과 미움, 분노 등의 감정은 나에게 남아 내가 나 자신에게서 실망을 하고 더 노력하게 만들었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사건은 내가 어떤 시도를 하거나 배움을 해 나갈 때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무의식은 이렇게 과거의 숨겨지고 억압되었던 경험으로부터 나에게 다가왔다. 무의식이 드러나는 방식은 이렇게도 반복적인 패턴 속에서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는 무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보이지 않게 숨어있는 무의식을 알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명명하는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나는 알아내는 일을 끝마쳤다. 나를 계속해서 묶어두었던 무의식의 패턴을, 이제는 그것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있으며 보다 긍정적으로 새로운 앎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이 평생을 학생으로 살아갈 나로서는 값지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발판이 된 것 같다.


2. 무의식적 경험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이러한 무의식적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첫째, 무의식을 의식화하면 무의식의 지배에서 벗어나 주체로서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무의식이 드러나는 방식은 나의 습관이나 어떤 경험에 대해 느끼는 지속적인 행동과 감정의 패턴이다. 나는 학교에서 교육으로 인한 부정적인 경험을 하였다. 선생님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경험을 했었지 않나. 그것이 나에 대한 실망감, 좌절, 절망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경험은 내 자신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잘것 없이 규정해 버렸고, 나아가 나의 배움에 대한 태도를 만들어 버렸다. 배움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싶었던 나였는데 내가 흥미있어하고 잘 하고 싶어서 꿈꾸던 것이 분명히 있었는데 그 경험 이후에는 배움에 대한 나의 습관도 그것을 대하는 나의 감정도 바껴 버렸다. 자연스럽게 적극적으로 배움에 임할 수 없었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나를 지배했다. 그러나 패턴화되어 반복되는 나의 생각과 감정에 직면하면 나는 다시 깨어날 수 있다. 항상 생각과 사고 실험으로 나의 문제를 들여다 보고자 하였다. 처음에는 너무나 힘들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끄집어 내어서 그 생각을 깨기위해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나의 어두운 면을 바로 보아야 하고, 그 어두운 면이 치유될 시간을 줘야 하고, 그 치유된 시간이 나를 다시 변화시키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과정에서의 기다림이 멀다. 그러니 오랜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 배움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무의식을 결국 의식화하여 한단계 성장한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성장은 무의식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을 의식화시키면서 지배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삶은 제한되어지지 않는다. 둘째, 무의식을 알게 되면 자기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분명히 깨어난 앎은 나 자신이 어떤 것을 소중히 하고, 어떤 사람이고 싶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알게된 경험은 결국 나를 위한 길이었고, 내가 새롭게 깨어나는 경험이었다. 모르고 있었을 때는 희미한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무의식의 흐름을 이해하고 나니 선명한 세상이 나에게 들어왔다. 나에 대한 이해도 부쩍 선명해 졌다. 선명하게 보이는 길을 걸어가는 것은 이제는 조금 덜 두렵고,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길을 걸어가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한 시간이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처럼, 깨어난 앎은 나에게 새 생명을 주었다. 즉, 무의식을 의식하는 순간 나는 새로운 앎에 도착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배움의 가능성을 열었던 것이다. 배움은 살아있을 때까지 계속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무의식은 우리가 모르는 형태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것의 내면화 방식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약화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무의식적 패턴을 의식화하면 우리는 새로운 앎과 배움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앎과 배움이라는 것은 실제 지식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경험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고정되어 있는 생각과 신념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과 시간이 아하하는 순간으로 변화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에게 자유를 주고 싶은, 앞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나도 모르는 나의 무의식이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 찾아서 자신으로서 단단히 설 수 있으면 좋겠다.


jr-korpa-bWBDZ1uViqI-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Jr Korpa
작가의 이전글나 자신을 알아가는 법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