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의 종말》 - 3. 신뢰 이후의 사회

노동의 무력화와 자산의 독점화

by 끄덕이다

노동은 더 이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한때 자본주의는 분명한 약속을 건넸다.


"성실함(노동)은 정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이 말은 경제학의 전제이자, 윤리의 명제이며, 국가가 구성원에게 내민 사회계약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도덕으로 배웠고, 부모에게서 삶의 지침으로 들었다.

하지만 이제 이 약속은 구조적으로 무너졌다.

실질임금은 정체되었고, 주거비·교육비·의료비는 급등했다.

성실히 일해도 집 한 채를 마련하기는커녕, 하루하루를 버티기조차 벅차게 되었다.

'열심히 살자'는 말은 이제 현실적 전략이 아닌, 공허한 자기기만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단순한 체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노동'이 아니라 '자산'이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 구조로 전환됐다.

기회는 성실한 자가 아닌, 이미 자산을 가진 자에게만 열린다.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노력했는가가 아니라, 언제 얼마나 많은 레버리지를 땡겼는가로 결정되는 시대.

이 구조 안에서 '노동을 중심으로 한 생존 설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생존의 분기점 : 두 갈래의 길


현실을 직시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전략을 재정의하고 있다.
첫째는 국가 정책에 기대어 기본적인 생존을 확보하는 전략,

둘째는 자산을 중심으로 기회를 극단적으로 끌어당기는 전략이다.
이 양극단 외에 '성실한 중간'은 존재할 수 없다.

중산층은 양쪽 어디에도 편입되지 못한 채, 체계적으로,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다.


첫 번째 길, 정책 시스템 안에 머무는 삶


국가는 점점 더 조용하게, 그러나 깊숙하게 우리의 삶을 관리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 소비 쿠폰, 의료비 감면, 연체자 구제, 긴급생계비 대출...

이러한 정책은 이제 더 이상 예외적인 처우가 아니다.

정기적인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는 국가가 제공하는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오히려 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의 기반이 되고 있다.


여기서 노동은 필요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을 포기한 자'에게 더욱 적극적인 보장이 제공된다.

이 수동적인 생존 방식은 정서적으로는 패배감을 줄 수 있지만, 물리적으로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이 되고 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해도 가난하다면, 정책을 활용하자"는 방향으로 의식과 행동이 옮겨지고 있다.


두 번째 길, 레버리지를 통한 적극적 생존


반대편에는 전혀 다른 전략이 있다.

바로 적극적인(어쩌면 극단적인)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 게임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주택 갭투자, 레버리지 ETF, 알트코인뿐만 아니라 타인 명의을 이용한 대출 등 각종 편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단을 총동원해 자산을 확보하고 상승을 기다리는 전략이다.


이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소득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금액을, 얼마나 빠르게, 언제 투입했는가'가 인생의 결과를 결정한다.

노력보다 포지션이 중요하고, 땀보다 운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 생존법은 근로윤리를 완전히 우회한다.

동시에 '게임에 들어갈 자격' 자체를 자산 기반으로 고정시킨다.

이는 자산소득이 노동소득을 압도하는 구조에서 나온, 매우 합리적인 전략적 판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구조가 만든 합법적 도박 시스템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제도 바깥의 경로도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가짜 증빙을 통한 불법 대출, 사행성 앱 운영, 청년층의 허위 재테크 콘텐츠 제작, 리셀 시장의 가격 조작 등.. 이 모든 것은 "정상적인 루트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집단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런 경로가 이제는 특수한 부류의 선택이 아니라,

'어느 정도 교육받고, 능력 있는 젊은 세대'까지도 유입되는 생존 선택지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뢰의 사회는 무너지고, 법과 규범은 이제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이 모든 생존 전략은 결코 개인의 윤리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노동'을 축적의 수단이 아니라 소외의 조건으로 만들고,

'정책'을 유일한 생존 보장으로 만들며, '자산'을 생존의 전제 조건으로 고정한 그 순간부터,

이 전략들은 구조가 만들어낸 합리적 행위다.

즉, 문제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느냐가 아니라, 왜 그럴 수밖에 없도록 구조가 설계되었는가다.
이 구조는 성실함에 보상을 주는 대신 박탈감과 허무함을 주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자산을 모은 사람을 승리자로 만들면서, 모든 사회적 기대와 책임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뢰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붕괴인 것이고, 우리가 앞으로 직면할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다.




소외된 중산층, 붕괴의 전조


이 두 갈래 생존 전략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중산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가 보조 대상이 되기에는 소득이 높고,
그렇다고 자산을 축적하기엔 소득이 낮으며,
큰 레버리지를 감당할 만큼의 담보나 신용도 없다.


결국 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국가는 이들을 정책 대상에서 배제하고, 자산 시장은 이들을 진입 장벽 밖으로 밀어낸다.

하지만 세금과 공과금은 성실한 납세자로서 그대로 부담한다.

자녀 교육비, 대출 원리금, 의료비, 연금 부담...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중산층이다.


지금 같은 구조 속에서 이들은 스스로의 성실함에 보상을 기대하지도, 희망을 품지도 못한다.

그저 버티는 것이 유일한 전략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들이 단순히 '힘든 개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산층은 한 사회의 신뢰와 책임, 균형을 지탱하는 허리다.

그 허리가 무너질 때, 사회는 신뢰를 잃고, 분노와 혐오의 정치로 기운다.
책임의 분산은 사라지고, 모든 구조는 파편화된다.

그렇기에 이들의 침묵은 위기다.
그리고 이 침묵의 확산은 사회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성실의 사망, 그리고 다시 묻는 질문


성실함은 한때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미덕이었다.
노동은 정당한 보상을 약속했고, 노력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였다.
그러나 지금, 그 약속은 구조적으로 폐기되었다.


성실히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고,
꾸준한 경력은 불안정한 계약직으로 전락하며,
절제된 소비는 자산 시장의 파도 앞에 무력하다.

정책은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만 보상을 제공하고,
자산 시장은 이미 올라탄 자들에게만 기회를 주며,
중간은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 채, 침묵 속에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왜 우리는 여전히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가?"
"무너진 보상의 구조, 왜곡된 기회의 구조 안에서 성실함은 어떤 이름으로 남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개인의 회의나 절망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가 어떤 가치에 보상하고, 어떤 전략을 정당화하며,
다음 세대에게 어떤 생존의 윤리를 주입하고 있는가에 대한 구조적 질문이다.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자산'에만 보상하고,

'정책'만으로 생존을 관리하며,

'노동'을 사회적 소외의 조건으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성실한 개인이 아니라, 자기기만을 강요받는 시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성실함은 죽었고, 새로운 윤리,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사회계약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모두는 더 이상 미래를 설계하지 못한 채, 자산 없는 자의 패배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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