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현금성 복지와 세금 전가, 재정이 망가지는 진짜 이유

by 끄덕이다

대한민국이 병들어가고 있다.

아니, 이미 국가는 수술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 같다.


트럼프의 재당선으로 이제는 더욱 가속된 지역화 시대에서, 지금처럼 한국이 힘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보고 있는가. 필자 또한 한국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 중 하나로서, 누구보다 우리나라가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나의 희망사항과 냉혹한 현실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나라 걱정은 사치가 되었고, 이제는 개개인이 어떻게 살아갈지,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부터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개인이 경제적으로 대비해야 하는 시간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늦은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


이전 글에서 노동의 가치가 줄어들고 자산의 가치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며, 한국은 특히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간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다소 극단적이고 급진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솔직하게 필자는 대중들이 이러한 현상을 직접 깨닿게 되는 시기를 넉넉히 10년 이내로 보고 있었는데, 나의 개인적인 생각보다 더욱 앞으로 당겨지고 있음을 체감하는 중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핵심 구조는 크게 네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인구, 산업, 세금, 복지구조다.


이 네 가지 축은 서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 인구가 줄면 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산업이 낙후되면 세금이 줄며, 세금이 줄면 복지를 감당할 수 없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지금 이 네 축은 동시에 무너지고 있으며, 한국정부는 이를 보완하기보다는 "현금 지급"이라는 단기 처방으로 민심을 누그러뜨리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포퓰리즘이 현재뿐 아니라 미래 세대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는 데 있다. 그 중에서 이번 편에서는 세금 및 복지구조와 관련한 이슈를 중심으로 비평을 써보려고 한다.


아래는 최근 2025년 7월 20일과 7월 21일에 나온 기사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5518853?sid=101

https://n.news.naver.com/article/014/0005379563?sid=101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528055?sid=101


이재명 정부의 최근 경제정책 흐름은 '재정 확대와 형평성 회복'이라는 명목 아래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짝만 들여다봐도 심각한 구조적 왜곡과 포퓰리즘의 흔적이 엿보인다.


정부는 소비 쿠폰이라는 대중 친화적 정책으로 민심을 사로잡는 동시에, 법인세·증권거래세 인상 및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강화 등으로 재정 부족분을 보충하려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뭔가 이질적이거나 모순된 느낌을 받지 않았는가?


물론 정부의 소비쿠폰 정책은 단기적으로 침체된 민간 소비를 자극하고, 지역 내 소상공인 매출을 회복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차상위 계층 및 농촌 거주자에게 집중되는 구조라면, 일정 수준의 승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맹점은 이런 일시적 처방이 구조 개혁이나 중장기 전략과 병행되지 않을 때, 정책 신뢰도와 재정 일관성을 동시에 훼손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국민 1인당 최대 45만 원 지급, 동시에 증권거래세와 법인세 인상 검토>


지난 7월 21일부터 신청이 시작된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최대 1인당 45만원, 전 국민 대상이다. 이 정책은 누가 보더라도 선심성이다. 특히 사용 기한이 11월 30일까지라는 점에서, 경기 부양보다는 소비 촉진이라는 단기 자극에 방점이 찍혀 있다. 게다가 사용처도 연매출 30억 이하 소상공인 업소 등으로 제한되어, 실질적인 소비 왜곡이나 수혜 집중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재정 지출의 핵심은 '지출 우선순위'다. 그러나 이번 정책은 일부 취약 계층에 가중 혜택을 주는 구조를 갖추고는 있지만, 결국 전 국민을 대상으로 폭넓게 집행된다는 점에서 '선별적 보편주의'라는 중간 지점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재정 여건과 지출 우선순위 평가 없이 진행될 때, 보편주의가 곧 포퓰리즘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은 유한하고, 더욱이 적자 상태에서는 더 정밀하고 정당한 기준이 필요하다. 민간 기업조차 명확한 투자와 지출 계획 없이 예산을 투입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부라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감세 기조는 경기 부양과 기업 투자 확대를 명분으로 했지만, 실제로는 법인세 수입이 2022년 약 100조원에서 2023년 60조원대로 급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단순히 감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건 섣부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수출 부진, 기업 이익 감소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한국의 기업경쟁력이 힘을 잃었다고 보는 것이 차라리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정부가 이러한 복합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감세를 되돌리면 세수는 회복된다'는 단순논리를 펴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거래세 역시 마찬가지다. 당초에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도입과 연계된 정책이었으나, 금투세는 폐지되고 거래세만 남았다. 현 정권의 거래세 인상 시도는 제도 설계 실패의 후속조치처럼 보이며, 자칫하면 과세의 신뢰성과 정책 일관성에 의문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정부는 세수 기반 복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가 투자자 심리 위축이나 자본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충분한 고려가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강화 역시 "고소득층 감세"에 대한 정치적 비난을 피하기 위한 포퓰리즘적 조치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조치로 인해 대주주 기준이 애매하게 조정될 경우, 연말에 주식 물량이 쏟아져 주가가 하락하고, 소액주주까지 피해를 입는 현상이 반복될 것은 자명하다. 이는 자본시장 건전성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다.


세금정책은 단순한 공정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구조가 조세기반을 형성하고, 조세기반이 복지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한다. 지금 정부는 '형평성'이라는 이름으로 조세 기반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단지 '부자 증세'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리는 자해행위다.


국가는 기업보다 더 큰 책임과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정책 흐름을 보면, 마치 국민의 지갑은 끝없이 열어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뽑았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정치권의 오만, 그리고 "돈만 받으면 된다"는 국민의 무관심이 맞물리며, 이른바 '도덕적 해이 국가'가 만들어지고 있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과 '신뢰'의 문제다. 지금 우리가 묻지 않으면, 장래의 아이들이 대신 묻게 될 것이다.


국가는 선심을 베푸는 자선기관이 아니다. 정책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말해야 한다. 그렇다고 복지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복지는 필요하다. 소비 진작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장기적 설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그 재원을 조세 전가 방식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국민이 느끼는 것은 신뢰가 아닌 부담일 것이다.


정책은 결국 순서와 맥락의 문제다. 세금은 '먼저 신뢰받은 다음에' 걷는 것이고, 복지는 '지속 가능성 위에'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의 정부 정책은 구조적 수술이 아니라, 진통제 처방이다. 진정한 복지는 정치적 인기를 위해 돈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국가의 지출이 정당한가, 세입은 공정한가, 구조는 지속 가능한가를 묻고 따져야 할 시간이다. 아무도 우리를 대신해 묻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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