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그림, 나쁜 그림

예술, 무슨 물건인가?-14

by 에코




좋은 그림이 있고

나쁜 그림이 있는가?



사람에 따라 안목

천차만별로 다양해서,



좋은 그림이

나쁜 그림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그림이

좋은 그림이 될 수도 있다.



세계미술 전반에 걸쳐

안목이 열리면



대체적으로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사람의 취향 나름이다.



예전에 어느 선사가 이르길,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가 했더니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구나.



하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라고 하였다.



이는 산과 물이 다르다고

여겼는데



실상(實相)을 보니

둘이 다른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분별을 해줘야 하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 한다'는



'무분별의 분별',

중도(中道)의 지혜로

읽힌다.






그림도

무분별의 분별로

판단할 때,



좋고 나쁨이 있다 하겠다.



좋은 그림은 무엇이고,

나쁜 그림은 무엇인가?



'머물면 타 버린다'는

말이 있듯이,



좋은 그림이란

마음의 '머뭄 없음'에서

비롯되어



집착이 사라져

내면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고,



나쁜 그림이란

마음의 '머뭄 없음'을

모르고



집착된 채로

그려 내면이 죽어 있는

것이라 하겠다.



마음이 머뭄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



내면이 저절로 드러나 그림이

변화하고 생동하지만,



이것을 모르면

내면이 드러나지 않는



죽은 마음이

되어버리기에



그림도 죽어버리는

것이다.



죽은 마음이란,

내 안의 타자를 거부하는



고정관념 속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한다.



좋다고

여겨지는 것만 표현하고



불편하거나 어두운 것을

숨기거나 외면한다면,



이는 일체가 무차별의

상대적인 것임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선(善)만이 아니라

악(惡)이라 부르는



실수, 방종,

허영, 오만, 탐닉, 편견,

질투 등



온갖 결함들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



바깥으로 드러날까 두려워

깊숙이 감추어 두지만



현실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것들을 드러내며 산다.



이렇듯 그림에서도

혐오, 불쾌, 불결, 불경, 탁함, 오염,



즉흥, 우연성 등이

드러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혹여 튀어나올까 봐



전전긍긍하는데서

그림은 경직되어 가는 것이다.



그들 또한

나의 자아(自我)이므로

그들을 수용하여



내 안에서

고저, 장단, 희로애락처럼



음과 양의 상호작용을 이루며

공존하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상대적인 것을

둘로 나누어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선악을 초월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획일적 이성에 대한 반성

때문인지 몰라도



서양에서는 사회, 문화적으로

금기시되거나 억압된,



혐오감을 주는 것들 즉,



신체 파편, 피, 분비물, 죽음,

공포, 타자성 등을 드러내는



에브젝트(abject) 미술이

생겨 났다.






자연계나

우리 현실은 항상

유동적이다.



우리 마음도

유동적이어야 거기에

대처할 수가 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리는

머물기를 좋아한다.



심신이 머물고 안주하는 것을

편하게 느끼고,



움직이는 것은

마음도 몸도 바빠 힘들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신체적으로 보더라도

하루의 2/3은 움직이고



1/3은 쉬거나

잠을 자는 구조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잠을 잔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꿈을 꾸고 몸을 뒤척이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머무는 적이 없다고

하겠다.



사실

자연계가 쉬지 않고

세상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들 마음이 쉬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한시도
쉬지 않는다.'



그런데 쉼 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마음을

철이 들었다는 이유로,



온갖 규범과 법규,

윤리, 도덕으로 묶어

움직이지 않게



스스로

고정관념을 만들면서

문제는 발생한다.






사람은

어린아이 단계에서

성인의 단계로 성장한다.



어린아이는 선악분별

이전의 단계이므로



천방지축이고

무한한 상상력과 호기심

덩어리이다.



어린이가 성장하여

사리분별(事理分別)이 가능한



성인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철이 들었다고 한다.



분별심에 관해서는

성경에도 나와 있다.



아담과 이브가

뱀에게 속아 사과를

먹음으로써



이분법적인

분별의 눈을 떠,



천국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는

비유가 있다.



라깡은 이것을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진입'

이라 했다.



분별심이 생겨

철이 들었다는 성인이란,



사회적 질서에

순응할 수 있는 고정관념을 갖은

사람을 뜻한다.



이로써

성숙한 성인으로

대접을 받으며,



그에 상응하는

물질과 명예를 얻거나

향유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자기 생각을 지키려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정관념에

머물게 된다 하겠다,






작가 역시

본래 지녔던 무한한 자유를

그리워 하지만,



자기 안에 쌓아 올린

지식, 미술이론, 기술적



방법론들

걸림돌이는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는

이 상징계의 규범적 이론들이



필연적으로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술은 애초에 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바로 그 틀을 깨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동양미술에서는

파격(破格)을 매우 중시했다.



격(格)은 법도, 규범, 격식,

형식을 말한다,



파격은 자신의 틀,

즉 고정관념을 깬다는

말이다.



틀을 깬다는 것은

엄청나게 두려운 일이다.



그동안 사회가 원하는

규범적 방식으로 작업하여

안정된 삶을 누리던



물질과 명예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을 버려야 한다는

것처럼



과감히

그 틀을 잊어버리고




존재의 세계로

뛰어들어 자신만의 법이

살아나는



진정성 있는 작품을 해야

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틀에 갇혀있는 관객의

영혼을 흔들어



그들도 순간

자각(自覺)의 희열과

감동을 통해,



홀연히

자신의 틀을 벗어날

수도 있기에,



'좋은 그림'





중요한 것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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