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무슨 물건인가?-13
세상에는
예술에 관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글들이 있다.
동양에서는
조선, 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방대한
회화이론들이 편찬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서양에서도
18세기 '미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래,
수많은 철학자와
미학자, 이론가들이
예술에 대해 사유하고
언급해 왔다.
동서양의 예술철학은
각 시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미학을 제시해
왔지만,
결국 예술을 통한
'인간성 회복'
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예술철학 또는 미학을
찾기 위해
사색과 성찰을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무언가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한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에고(ego)'가 있기 때문이다.
에고는
이성, 도덕률, 욕망, 감정,
생각 등을 포함한다.
에고는 분별과 비교를
통해 분배와 정리를 하지만,
동시에 집착이
생기고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
인간은 스스로
동물이나 식물보다
우월하고 영적인 존재로
느끼지만,
어떤 순간엔
그들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자아(自我)를 가진 인간은
그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을 겪으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의 환경과
삶의 방식 속에서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는 반복되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인고(忍苦)의 수레바퀴라고
할 수 있다.
예술 또한
예외는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미학을 찾고자 하고,
미학자들은
지금까지 제시된 미학의
문제점을 점검하며
시대에 걸맞은
심오(深奧)한 미학을 찾고
있을 것이다.
어떤 미학이
과연 우리를 예술을 통해
구원할 수 있을까?
예술 역사에서
'최선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만일 누군가
그와 같은 심오한 미학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냥'
그리는 것이다.
그림은 '그냥 그릴 때'
자연스러워지고 심오해진다.
무언가
특별하고 심오하게
그리려는 의도 없이,
자신의 기쁨과 슬픔,
결핍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그냥' 드러낼 때,
오히려 의외성이
튀어나와 더 특별하고
심오해질 수 있다.
어떻게 '그냥'
그리는 것이 심오할 수
있을까?
자연은
스스로 그럴 뿐이다.
그 안에는 특별함도,
심오함도 없다.
특별하고 심오함이란
단지 인간의 분별심이 만든
이름일 뿐이다.
우리는 자연을 보고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자연은 그걸 모른다.
그래서 어디에도
'위대함'이라는 가치기준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인간이 그렇게
여길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인위와 분별에 구속되어 빠져
나올 수 없음을 알기에,
꾸밈없는 자연을 보고
위대하다고 느끼는 것이라
하겠다.
자연은
인위가 묻어있지 않은
스스로 충족된 자체다.
그 안에는
어떤 목적도 의도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그런',
'그냥'이라 부른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인생관이 있겠지만,
가장 심오한 인생관은
무사인(無事人)처럼
"일을 하되
일이 없는 듯 일하며" 사는
삶일지 모른다.
사회를 위하고
인류를 위한다는 거창한
인생관조차,
그 목적이 모두
이루어지고 나면
결국은 '그냥' 자족하는
삶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냥 사는 삶'에 이르기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욕망을
다 채운 뒤에야 비로소
'그냥 살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차, 일찍이
이걸 알았더라면
그냥 살았을 텐데 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미학적 사유와
실천을 거친 끝에
도달한
우리의 최종미학은
결국
인위(人爲)에서 무위(無爲)로
나아가는
'그냥' 그리기
일지 모른다.
자연보다 탁월한 미학이
있었던가?
인위가
무위를 뛰어넘을 수
있는가?
인위와 무위가
둘이 아님을 자각하기 전,
인위는 여전히
에고의 분별심일 뿐이고
무위는 본성자체인데,
인위에 갇힌 꿈같은 환상이
어떻게 실존의 무위와
견줄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냥 그리는 것'을
유치하거나 깊이가 없다고
여겨왔다.
생각과 기교를 중시한
교육 때문이다.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생각은 필요하다.
계획하고
설계하며 구상하는 모든 힘은
생각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생각이 생각을
불러오고, 그 생각들이
실천을 방해해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냥' 그린 다는 것은
이미 몰입이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는 중에
걸림 없는 자유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리는 마음은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온전히
'바치는' 혹은 '받아들이는'
거슬림이 없는 상태다.
이런 상태를
동양에서는 '무심'이라 하고,
기독교적으로는
'성령과 하나 된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냥'그리는 그림은
억지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억제하지
않기에 순간순간
필요한 것들이
저절로 선택되고,
욕망, 감정, 생각 속의
결핍과 고통들이 적절하게
녹아들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더불어 그 안에는
자신만의 개성과
진정성이
자연스럽게
묻어나기에
사람들에게
진실하게 다가가는
예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