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무슨 물건인가?-12
"예술성(藝術性)이 뭐죠?"
"묻는 자가 사라질 때
드러나는 것이다."
"...??"
"음..
존재의 울림이다."
"존재의 울림이요?"
"말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가슴을 울리는 어떤 감응,
진정성으로부터 나오는
영혼의 떨림 같은 거지."
"말만 들어도 버겁네요...
그런데 예술성은 기를 수
있는 건가요?"
"'기른다'기보다.
'드러나도록 허용되는 것'
이라 하겠지.
예술성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라기보다
존재의 드러남이라고
봐야 할 거야."
"노력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라니...
차라리 다행입니다."
"하. 노력해서
얻기도 힘들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도
힘들고,
진퇴양난이구나.
아무튼 네가 하는
추상작업은 한 생각 놔버리고,
존재를 따르면 엄청 쉬운 건데
생각으로 풀려면 참으로
힘든 거지.
그래, 일단 하나씩
짚어 나가 보자고.
'예술(藝術)'이라는 말은
일본 메이지시대에
서구의 'Art'를
번역하면서 생겨났다고 해.
그중 '예(藝)'는
본래 '심다, 가꾸다'는
뜻의 글자야.
예전엔 농사를
짓거나 정원을 가꿀 때,
전문적인
지식과 안목, 기술(技術)과
정성이 필요했을 거야.
예술도 그처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섬세한 기술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지.
예술의 핵심은
'예술성(藝術性)이
되겠는데,
그건 예술행위에 깃든
숨결,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지."
"예술이라는 말 자체가
자연과 연관되어 있군요?"
"그렇지.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기운생동(氣韻生動),
신기(神氣), 신운(神韻),
일기(逸氣)
같은 표현을 썼어.
오늘날로 말하자면
창조성, 예술정신,
또는 영적 아우라(aura),
같은 개념이라고 하겠고,
그런데 작가들은 말로는
예술성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물질이나 명예를 예술성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아."
"그걸 어떻게
착각하는 거죠?"
"작가는 다들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라는 게 뭘까?를
계속 찾아들어가다 보면
결국에는
권위 있는 미술계의
평가나 미술관,
갤러리, 혹은 옥션에서
인정받는 작품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지.
깊게 생각
하지 않아서,
숨어있는
욕망을 스스로 못
보는 거야.
이걸
타자의 시선이라고 하는데,
사실 모르지도 않아.
직관적으로는 알고 있지.
물론 자기완성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작업하는
작가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럼 물질이나
명예를 위한 작업은
잘못된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지.
칸트는 예술의 본질은
'무목적의 목적성'이라고 했어
그가 말한 목적성이란
예술이 실용적 목적 즉 윤리, 정치,
경제, 종교 등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이성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유발하는
내적 목적성이야.
그렇듯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조형적으로
구현시킨 결과,
사람들이 감동하고
좋아해서 명예나 돈이 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 인데,
문제는 주객이 전도됐을 때야.
그림을 팔기 위해,
유명해지기 위해 작업을
하는 거지."
"그럼 그런 작가들이
잘못하고 있는 건가요?"
"잘못이라기보단,
그 과정에서 내면의 모순과
갈등이 생기는 게 문제지.
겉으로는 순수를
말하면서도 속으론
'이게 팔릴까?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게 되니,
마음이 둘로 갈라져
고민하고 괴로워지는 거지.
차라리 자신의 목적을
스스로 인정하면 훨씬
편할 텐데 말이야.
작가는
물질과 명예를 위해
작업하면 안 된다고
정한 적도 없잖아.
스스로를
속이기 때문에 생기는
고통이 문제인 거지."
"결국 안팎이 맞는 정직함이
핵심이군요."
"누군가 그러더라.
'은행가들은
모이면 예술얘기 하고,
예술가들은
모이면 돈얘기 한다'고."
"하하...
그럼 예술성이란,
물질과 명예를 위하든,
자기완성을 위하든,
진정성을 갖고
표현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그런데 어떤 작가는
잘 팔린다고 기계적으로
반복 작업을 하던데,
그런 것도
예술성이 있다고
할 수 있나요?"
"그건 좀 다르지.
결핍과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고백이라기보다,
그것을 숨긴 채
오직 팔기 위한 생산이라면
예술성추구라기보다는
상업행위라고 하겠지."
"둘 다 몰입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르군요."
"그건 욕망에 빠져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과 같아.
작가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어있어야 하는 거야."
옛날사람들은
'땅은 하늘을 법으로 삼고,
하늘은 도를 법으로 삼고,
도는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고 했어.
'자연'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연경관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함
(seif-so-ness)'-
저절로 그러한 상태야.
이렇듯
억압하고 숨겨놓은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허용하는 것,
그게 예술성의 핵심이지."
"그렇다면
예술가들이 구현하려고 하는
진정한 예술성이란,
자신을 속이지 않고
표현하는 것이겠네요?"
"그렇지, 물질을 위하든,
명예를 위하든,
혹은 자아완성을 위하든,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낼 때,
진짜 예술이 되는 거겠지.
이건 예술뿐 아니라
인생의 진실이기도 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떻게 하긴,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되지,
무슨 방법이
따로 필요하겠니?"
"솔직하게 그린다는
생각만 해도 무섭네요."
"바로 그거야.
무섭다는 건
네가 새로운 세상 앞에
서 있다는 증거야.
그건 네가 스스로 만든
껍질을 벗어버리고
진짜 너를 만나기 위해
진실한 문 앞에 서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어.
이 건 마치 외줄을 타고
건너가려는 순간,
두려운 생각과 감정들이
물밀듯 올라오더라도,
그걸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지켜보고 받아들이며
오로지 일념(一念)으로
목표를 놓치지 않고
건너가는 것을 일러
치열하다, 진정성 있다고
하는 데,
이런 정신에서
존재를 울리는 예술성이
발현이 되는 거지."
"아.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물론 쉽진 않지...
평생 눈치 보던
습관을 벗어버리는 게
쉬울 리가 있겠어?
그러나 우리는
평소 본능을 억압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심신이 왜곡되어 있어.
이 들은
원래대로 회복되길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이게 풀렸을 때,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하는 거고,
또 진정성 있는
'예술성의 발현'이라고
하는 거겠지?"
"아. 네. 하지만
마구 본능적으로 그리라는
말씀은 아니죠?"
"물론이지.
사회 내에서야 마구 본능적으로 하면
불이익을 당하겠지만
예술에서 만큼은
마음대로 해도 뭐라 할
사람 없잖아.
그렇다고 마구 하는 게 아니라
이성과 감성이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끔
풀어줘야 하는 거지.
사실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분별적이잖아.
그래서 예술이 중요한 거야.
단지 지나친
억압만 풀어주면 돼.
그렇게 되면
모든 게 저절로 자리를
잡게 될 거야.
그래서
존재가 이끄는 대로 믿고
한번 가봐야 한다고.
그렇게 하면
그릴 때마다 야성의 아름다움이
나타나게 되어,
저절로 진정한 창조가
일어나게 되고
예술성 있는 작품이
출현하게 되는 거지."
"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럴 거 같네요."
"그래. 한번 생각해 봐라,
작가들이 스스로 억압해 놓은
내면을 드러내는 순간,
정체성이 살아있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테니,
그 작품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참신하겠어?"
"네, 그런데
그렇게 해나가다가
또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때도 피하지 말고,
두려운 채로 표현해 봐.
두려움이나 갈등, 그리고
불안조차도
그림의 중요한 요소야.
그러니까
자신의 존재를
믿고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해 보라고."
"알겠습니다!!
용기를 내 보겠습니다."
"그래.
오로지 '한 곳'만
바라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