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에 합격한 직후, 나는 어떤 태도였는가?
의과대학을 붙고
정확히 한 달이 지났다.
오랜만에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었기에
기뻤고, 뿌듯했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더욱이 논술로 의대를 합격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꿈을 이뤄냈다는 성취감과 더불어
우월감의 기분을 느끼게도 하였다.
'논술 의대 합격' 이라는 결과에
의대 선배님들과 동기분들께서도 놀라셨고
칭찬해주시고 대단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외에도 많은 축하 인사와 연락에 참 감사했다.
그 과정에서 점점 더 자랑하고 싶어졌다.
아무 준비 없이
학원도 다니지 않고
시험날 고사장에 들어가서
전년도 기출문제만 훑어보고 난 후
합격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4199명 중 15명에 최초합했다는 것.
재종과 컨설팅 업체에서 극구 말리는 의대 논술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합격했다는 것.
동경해왔던 의대생분들도 감탄하셨고
커뮤니티에서는 수과학의 신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졌다.
물론 대놓고 이야기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내심 사람들이 나에게
입시와 관련된 부분을 물어봐주기를 바랬고
남에게 나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가
오도록 유도했던 적도 있었다.
내 뛰어난 면모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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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다.
대단한 사람은 본인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는 겸손하고, 타인을 존중한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한다.
본인의 '선'을 따라 성실히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자존감이 높고 자존심은 낮다.
'나는 여전히 자존심이 높고 자존감이 낮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인정했다'
라는 것 역시 착각일지도 모른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재수생의 1년
영재교육원, 영재학교 입시, 수능 입시 준비
그 치열했던 과정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서의 합격만 뿌듯해하는 것을 깨달은 후
내 존재가 참 작아보였다.
남에게 내세울 수 있는 합격증은
남이 나를 인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내가 나를 인정하는 계기로 이어질 수는 없었다.
한 달 간
자존심의 회복은 할 수 있지만
자존감의 회복에는 영향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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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를 경계하고 위협한다면
그들에게 날카로운 창을 겨누기보다는
견고한 방패를 내세우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창을 겨눠 서로 싸우게 된다면
나도 많은 상처를 입고 쓰러질 것이지만,
방패로 막고 스스로를 보전한다면
내 자아에는 별 타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는 '운동량 보존 법칙'이 성립한다.
이는 상대가 내게 준 충격과 정확히 같은 크기의 충격을 상대에게 돌려준다는 내용이다.
이런 면에서 강한 방패는 매력적이다.
'나'를 보호할 수 있으며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고,
공격하는 상대를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태도는
대단한 사람의 필수적인 요소라 생각한다.
'방패'의 원관념은 '자존감'
'창'의 원관념은 '자존심'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렇지 않을 시 상처를 받기도 하며, 타인을 깎아내리고 내심 행복해하기도 한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자신을 인정하는 태도를 지니며, 타인의 비방과 시샘에도 상처를 거의 입지 않는다. 비판에 열려 있으며, 견고한 자아를 위해 노력하고 행복해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대단한 사람의 필요조건이다.
그간 실패와 극복의 과정에서
단단한 자아를 만들어 올 수 있었지만,
이번 성공의 결과로부터는
아직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법을 진심으로 알지만,
겸손함에 관한 태도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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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관점에서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이 우러러보는 존재보다도
내 '선'에 맞춰 삶을 이어가는 존재가 되고 싶다.
본인을 의식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뛰어난 능력과 겸손함을 가꾸며
자존감을 높이고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