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변하지 않는 진리는 어떤 의미일까?
<매트릭스>에서도 주인공은 빨간 약과 파란 약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파란 약은 기존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질서있는 세계 속 편안한 길을, 빨간 약은 기존의 인식과는 다른 혼돈스러운 진실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빨간 약을 선택하는 것이 진실로 판정되었고,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지만
'만약 기존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질서있는 세계가 현실이었다면...?' 이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빨간 약을 선택한 사람들은 결국 환각, 환청, 환상통을 느끼는 것이고, 빨간 약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 눈에는 그들의 증상을 조현병이나 정신 착란으로 판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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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실재'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세계를 실재라 합니다.
실재는 감각 기관을 통해 받아들여지고 의식을 지닌 생명체들은 각자만의 방식대로 감지하며 반응하죠.
이 글자의 색깔은 무엇일까요?
이는 빨간색, red, 적(赤)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같은 시각적 정보를 인류의 다른 언어권에서는 다르게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빨간색이 과연 모두에게 같은 '빨간색'일까요? (편의를 위해 비색맹인 한국인 기준 색의 언어를 사용하겠습니다.)
만약 색맹이나 색약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인지하는 '빨간색'과는 다른 색깔을 인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후천적 색맹이라면 저것이 비색맹인들이 인지하는 빨간색이 아님을 인지할 수도 있습니다.
인류 집단을 벗어난다면 시각세포 중 적원추세포가 발달하지 않은 고양이에게는 저것이 노란색으로 보일 것이고, 색 자체를 구별하지 못하는 황소에게는 저것이 회색으로 보일 것입니다.
이처럼 인지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면, 우리가 보는 것이 실재라고, 환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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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문단은 실재와 감각의 차이를 논의하기 위해 제시한 사례일 뿐입니다. 저것은 생물학적인 차이이고, 선택권이 없는 경우입니다.
이제는 <매트릭스>에 가까운,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관련된, 아주 유명한 문구입니다.
천동설(태양이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는 가설)이 우세했던 당시, 지동설(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가설)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교리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가톨릭의 재판을 받았고, 가톨릭은 그에게 목숨을 유지하는 대신 지동설의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요청을 승인하고 재판장을 나가면서 담담히 외친 저 혼잣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에서 갈릴레이의 지동설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 말을 갈릴레이가 실제로 했는지, 종교 재판의 이야기에 관해서는 진위 여부가 갈리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끝까지 지동설을 지지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모두가 의심 없이 믿는 천동설에 의문을 품고, 가설을 세우며 대중의 거대한 믿음을 거슬러갔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지동설이 대두되었고, 인류는 천문학의 발전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천동설을 믿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의심을 품지 않고 거대한 믿음의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잘못된 믿음이고, 해서는 안 될 짓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천동설이 우세했던 시기에는 천동설만의 근거가 존재했고, 지동설은 대두되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기존의 지식에 기반한 이론을 믿고 따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새로운 선택에 적극적이라면 위험부담이 크고 증명해야 할 사실도 많아지니 피곤해지겠죠.
오늘날에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구평평설을 믿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천동설 지지자 역시 존재할 것입니다.
이들의 믿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누군가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논리를 펼친다면 그 믿음은 논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환상과 실재의 경계를 정확히 나누는 능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감각 기관에 따라 환상은 상대적으로 존재하기에, 그리고 각 존재마다 선택할 믿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인식한 내용을 잘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는 타인과의 비교/대조를 통해 이뤄집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상호교류를 하며 타인, 대중의 믿음과 감각이 어떠한지를 파악하고 나는 어떠한 믿음 체계에 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질서 있는 체계에 반하는, 소수를 향한 다른 선택에는 큰 책임과 위험이 따릅니다.
즉, 현실적인 가치나 부담 등 여러 가지를 분석하며, 내가 왜 그 선택을 해야하는지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논리를 찾아나서야합니다. 만약 주관적으로만 납득하고 객관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면 (오늘날 주장하는 지구평평설 등) 본인 믿음의 가치는 사라지고 그 정체성은 훼손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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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를 향한 다른 선택만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대중의 믿음을 파악하고 그에 만족하는 삶이 그른 것도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의 믿음에 확신을 가지고 나만의 뚜렷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선택에 객관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체계가 잡혀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타인과 비교하고 상호 소통하는 이유는, 하나의 존재가 독립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한다면, 체계가 잡히지 않은 환상으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객관적으로 납득하지 않을 천동설이나 지구 평평설을 주장해봤자 그 믿음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며, 널려 있는 정보들로 반박 가능한 믿음들을 논해봤자 본인이 가진 또 다른 믿음들 역시 훼손되며 정체성도 옅어질 것입니다. )
<매트릭스>에서 파란 약을 선택하고, 인간이 조종당한다는 말을 거짓이라고 믿는 체계를 따르는 것이 납득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대중의 믿음(파란 약)에 맞춰 본인의 만족적인 삶을 더 추구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것 또한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죠.
빨간 약을 선택하고 인간이 조종당한다는 말을 진실이라 믿고 따르는 것도 납득 가능합니다.
주인공에게 처해진 상황이나 행위, 현실이라 말하는 이야기(인간이 조종당한다는)의 논리성 등등을 듣고 기존의 믿음을 거스르는 선택을 하는 것 역시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은 선택을 향한 자기확신과 그에 관한 합리적인 체계로부터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식한 현실을 분석해 합리적인 선택으로 나아간다면 각자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히 다른 선택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선택을 고민하고 현실을 분석하는 과정, 합리적으로 결정해낸 선택과 그 체계, 이후 최선을 다해 지게 될 책임 모두를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