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철인통치
지난 고전과 윤리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플라톤의 ‘국가’의 구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맨 처음 읽었던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의 구절에 비해 ‘국가’는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어 아이들이 읽기에 편했다. 사실 칸트의 고전을 읽을 때는 나도 두 번 세 번 넘게 읽어야 무슨 이야기인지 납득이 가곤 했었다.
오늘 읽었던 구절은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리거나, 국가의 통치자는 충분히 ‘철학’을 해야 한다는 구절이었다. 사실 이 구절의 의미는 진짜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라는 말은 아니고, ‘지혜’나 ‘진리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지혜로운 자에 의한 통치를 말한다.
여기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무엇이 정의로운지, 무엇이 올바른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에게 국가의 통치를 모두 맡겨도 좋을까?”, 한 마디로 “지혜로운 통치자가 독재해도 좋아?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모든 일들을 올바르게 처리하고, 우리 국가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거야.”
나는 당연히 학생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여러 의견이 분분히 등장했다. “하지만 독재를 하게 된다면 결국엔 자기 이득을 챙기지 않을까요?”, “권력이 너무 막강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아니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기 이득을 안 챙기지.”, “아니 그건 모르는 거지.” 등등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흥미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아마 플라톤이라면 지혜로운 철학자는 이미 용기와 절제의 덕목도 갖췄다고 생각해서, 자기 이득을 위해 국가를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그런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총명하고 뛰어난 사람들조차 결국엔 욕망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었다.
플라톤의 철인통치를 학급을 꾸리는 것에 한번 생각을 해본다. 내가 담임으로서 학급 공동체를 꾸려나갈 때, 과연 나는 현명했었는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올바른 규칙으로 아이들을 지도했었는가. 왠지 조금 부끄럽다. 어떤 때는 효율적으로 어떤 때는 가장 불만이 적은 쪽으로 결정을 내리고, 아이들을 이끌어 갔었던 것 같다.
갑자기 드는 생각은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철인통치가 어쩌면 우리 국가를 가장 부유하게 만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의롭게 통치한다는 것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