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하루, 작은 시간 속에서
강의실엔 평소보다 조금 더 말끔한 공기,
그리고 말없이도 느껴지는 잔잔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은 대학원 외부강사 대표님의 마지막 4주 차 수업.
늘 그렇듯 차분하고 담백한 강의였지만,
그날은 유난히 한 마디 한 마디가 오래 남았다.
강의 말미, 대표님은 본인의 작은 습관 하나를 들려주셨다.
매일 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한 편씩 본다고.
끝까지 다 보지 않아도,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 이유가 인상 깊었다.
"영화는 상상력을 키워줍니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리더로서의 태도와 철학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조용히 마음속에 메모해 두었다.
가장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
톰과 제리였다는 말씀도 의외였다.
익숙한 만화지만,
대표님이 들려준 마지막 회의 결말은 낯설었다.
톰은 결국 죽고, 새로운 고양이가 등장해
제리를 잡아먹으며 이야기가 끝난다고 했다.
영화에서 톰은 어리석게,
제리는 명석한 두뇌로 영리하게 표현된다.
하지만 나는 결말을 듣고 그런 생각이 든다.
톰은 사실, 제리를 좋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들은 정말 싸우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서로의 표현 방식이 서툴렀던 걸까.
나는 톰에게 유독 마음이 갔다.
서툴고 어설펐지만, 늘 먼저 다가가던 쪽.
제리는 알고 있었을까, 톰의 진심을.
귀멸의 칼날의 첫 장면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누군가 눈 때문에 미끄러져 높은 곳에서 떨어졌지만,
그 높게 쌓인 눈 덕분에 살았다는 이야기.
죽을 뻔한 원인이,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의 이유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데, 문득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의 앞날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오늘의 고비가 내일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며,
지금의 힘겨움이 결국 나를 살게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오늘따라 유난히 믿고 싶어졌다.
수업이 끝난 뒤,
나는 준비해 둔 명함을 대표님께 직접 건넸다.
업무적인 자리에서 명함을 주고받는 일은 익숙했지만,
이렇게 진심을 담아 누군가에게 다가간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내 얼굴엔 어색한 웃음이 걸려 있었고,
속은 꽤 긴장돼 있었다.
“지난 4주간 감명 깊게 수업 들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대표님 기업에 지원해보고 싶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대표님의 이직 생각이 있냐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지금 당장은 여건이 되지 않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도전해보고 싶었다
대표님께서 건네주신 명함 한 장.
그 작은 카드 한 장이 그날 내겐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돌아서고 나서 아쉬움이 밀려왔다.
좀 더 단단하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따라붙었다.
결국, 그날 밤 대표님께 문자 한 통을 보냈다.
혹시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을까,
내 마음이 과하게 전해지진 않을까 고민했지만
수업에 대한 감사와, 짧은 다짐만 조심스럽게 담았다.
그 순간, 나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전이었다.
물론, 서툴렀다.
다 보여주지 못했고, 완벽한 순간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그 순간을 피하지 않았고,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건넸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냈다는 사실에,
나는 의미를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