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결] #03 그 여름, 몽골에서 방향을 바꿨다

오래된 기억, 흐린 풍경 속에서

by 결이

난생처음 가본 해외였다.
그것도 몽골이라니. 어렸을 적 막연하게 꿈만 꿨던 세계여행을 드디어 현실로 내딛는 첫 순간이었다.

때는 2012년 여름이었다. 학교에선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는데, 그건 바로 ‘대학’과 ‘KOICA’가 함께하는 해외 봉사활동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식품영양과라는 특성상 학과엔 여학생이 대부분이었고, 남학생도 드물었으며, 게다가 나는 군필자였다. 자연스럽게 여러 기회가 내게 주어졌고, 운영부 소속이었던 나는 해당 프로그램을 누구보다 먼저 접할 수 있었다.

봉사의 취지는 기독교 학교답게 선교와 나눔이었다.

나는 종교가 없었지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 기회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총 14박 15일의 일정이었고, 활동의 주는 봉사였지만 마지막 이틀은 '셀렝게'로 이동해 관광과 전통 체험의 시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학교 특성상 대부분의 학과는 의료 봉사를 할 수 있었지만, 식품영양과인 우리는 약간은 결이 달랐다. 그래서 제안하게 된 것이 있었다. 바로 낯선 현지 음식에 어려움을 겪는 동료들을 위해 한식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우리 팀은 총 3명이었고, 가장 나이가 많았던 나는 자연스럽게 팀을 이끌었다.

보름이라는 짧지 않은 일정 동안 매일 저녁 한식을 준비하기 위해 팀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아침과 점심은 현지에서 제공되는 음식을 먹지만, 저녁은 우리가 직접 준비했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조사하고, 필요한 것들은 한국에서 미리 챙겨야 했다. 계획표를 만들고 마트에 가서 필요한 식재료를 하나하나 준비했다.

출발일은 7월. 무더운 여름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너무 설렜던 기억이다. 아주 어릴 적 제주도에 친척들과 다 같이 다녀온 기억이 어렴풋이 있었지만, 제대로 기억에 남는 건 이게 처음이었다. 밤비행기였기에 하늘의 풍경을 보진 못했지만, 설렘과 기대만으로도 충분했다. 몇 시간을 날아 도착한 곳은 수도 ‘울란바토르’. 낯선 땅에 발을 딛는 그 순간,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경계, 긴장, 흥분. 오래된 기억이지만 그 공기는 지금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단체버스를 타고 외곽 숙소로 이동했다. 첫날 저녁, 짐을 풀고 몽골의 현지 음식을 처음 접했다. 면과 야채, 고기가 섞인 음식이었는데 특유의 향신료 냄새에 적응하지 못해 거의 먹지 못하고 남겼던 기억이 있다.


징키스칸 국제공항
첫 현지 음식



이튿날부터는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시작됐다. 각 학과의 특성에 맞는 봉사가 이어졌고, 우리는 미리 준비해 온 식재료를 정리하고, 현지 재래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몽골의 시장의 첫인상은 썩 유쾌하진 않았다. 익숙한 재래시장의 소음과는 다른, 조금은 낯설고 투박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간판도 없이 어색하게 이어진 가판대들. 그리고 정육코너에서는 덩어리째 해체된 고기가 진열돼 있었고, 비릿한 냄새 사이를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한쪽에선 야채와 공산품이 함께 진열되어 있었고, 위생이라는 개념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다행히 예상대로 감자는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그 외 필요한 식재료들도 무사히 챙긴 우리는 짙은 인상을 남긴 그 시장을 뒤로하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기억나는 메뉴는 카레, 된장찌개, 짜장라면 등 익숙한 음식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된장찌개였다. 낯선 음식에 지쳐 있던 동료들이 된장찌개 한 그릇을 비우고는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을 때, 그제야 비로소 이 역할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긴 일정 동안, 밥만 했던 건 아니다. 우리도 직접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중 특별했던 건 길거리 정화 활동이었다. 몽골은 치안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정해진 구역 외에는 다니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고, 대부분의 이동은 무리 지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활동만큼은 예외였다. 쓰레기를 줍는 봉사였기에 현지 마을 곳곳을 직접 걸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처음으로 그들의 일상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었다.

한 손엔 비닐봉지, 다른 손엔 집게를 들고 조를 나눠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노후된 주택, 군데군데 금이 간 담벼락, 그리고 마당마다 세워진 나무 울타리들. 어딘지 한국의 시골과 닮아 있었지만, 길 위로 느긋하게 풀을 뜯거나 햇살을 피해 그늘에 웅크린 염소와 송아지, 그리고 말들의 풍경은 분명히 이국적이었다. 한여름의 태양은 뜨거웠고, 온몸이 금세 땀으로 젖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낯설고 특별했기에, 즐거웠던 기억이다.


배정된 나의 보금자리
길거리의 가축들



일과가 끝나면, 우리는 짬짬이 동료들이나 현지 가이드들과 어울렸다. 특히 나는 가이드들과 가까워졌는데, 그들은 한국어를 전공한 또래의 대학생들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도 많고, 말도 능숙해서 처음엔 낯설다가도 금세 편해졌다.

그들이 알려준 카드게임을 함께하고, 소소한 놀이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웃음이 오갔다.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그들이 궁금해하던 한국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 나눴다. 서로 살아온 환경은 다르지만, 꿈과 고민은 비슷하다는 걸 느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교감 때문인지 귀국하는 공항에서 그들과 쌓은 정으로 헤어지기 아쉬워 서로 눈물을 보였던 해프닝도 있었다. 그래서 동료들이 위로해 준 기억이 난다. 감성이 많았던 시절이기도 하고, 쌓인 정도 그만큼 깊었던 것 같다. 당황스럽고 조금은 부끄러운 장면이었지만, 돌아보면 그만큼 진심이 오갔다는 뜻일 것이다. 그때 우리는 페이스북 아이디를 주고받으며 꼭 연락하자고 약속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가끔 문득 생각이 난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봉사활동 일정을 모두 마친 뒤, 마지막 이틀은 우리를 위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셀렝게'로 향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8시간 정도 달렸던 것 같다. 긴 여정이었고, 중간중간 잠이 들기도 했다.

'셀렝게'는 전통 몽골 유목민 체험을 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드넓은 초원과 부드러운 언덕들, 그 사이에 동그랗게 세워진 '게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윈도우 배경화면처럼 완벽한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었고, 무서웠지만 드넓은 들판에서 말을 타기도 했다.

저녁이 되자 우리는 ‘게르’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밤이 깊어질 무렵,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을 때. 그곳엔 말 그대로 쏟아질 듯한 별이 가득했다. 대기가 맑고 오염이 거의 없는 몽골의 밤하늘. 카메라로는 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 풍경은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 선명히 남아 있다.


셀렝게로 가는 기차
셀렝게 '게르'



몽골 여행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꾼 전환점 중 하나였다. 돌아오는 길, 나는 처음으로 ‘목표’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코이카'에 지원해 해외에 나가보자. 그게 당시의 나에겐 꽤 선명한 계획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봉사활동 그 자체가 간절했던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하고 싶었다. 수익은 없지만 주거와 생활비가 전액 지원되고, 무엇보다 그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환경. 어릴 적부터 꿈꿨던 세계여행이나 현지 가이드 같은 직업을 떠올렸을 때, 그건 나에게 무료 어학연수 같은 기회였다.

그러기 위해선 ‘전문성’이 필요했고, 나는 내가 가진 전공 영양학을 처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전까진 그저 학과 커리큘럼의 일부였던 영양사라는 자격이 그제야 목표가 되었다. 독서실을 등록하고, 수업에 더 집중했고, 이듬해 결국 영양사를 취득할 수 있었다. 단순한 여행의 여운이 아니라, 정말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계기였던 셈이다.

하지만 졸업 후, 나는 결국 ‘코이카‘에 지원하진 않았다.

졸업 즈음, 교수님의 권유로 예상치 못했던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품질업무라는 새로운 길이었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망설임도 있었지만, 그 시기 내게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기회였다. 결국 나는 계획했던 방향과는 다른 길을 택했지만, 돌아보면 그 또한 나를 이루는 과정이었다.


요즘은 ‘여행’을 테마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아직 내 안 어딘가에 그 꿈이 남아 있다는 걸 느낀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낯선 땅의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던 상상들. 그건 여전히 내 마음 한켠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책임져야 할 일들과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그 꿈은 잠시 접어둔 채, 즐거운 상상으로만 꺼내 본다.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 이상적인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걷지 못한 그 길 끝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지금도 문득 떠오르지만, 후회란 이름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땐 망설이지 않고 한 발 내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가진 것들과 주어진 삶 안에서 행복하고 싶다.


그 마음을 품고도,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산 중턱에서 바라본 풍경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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