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프리메이슨의 기원과 역사
제3장: 프리메이슨의 역사적 사건
3.1 미국 독립혁명과 프리메이슨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때로는 하나의 사상이 시대의 정신과 만나 거대한 불꽃을 일으키며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타올랐던 독립 혁명의 횃불과 프리메이슨의 만남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운명적인 결합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위대한 역사의 장(章)은 단순히 ‘많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사실을 나열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들의 만남이 왜 필연적이었으며, 프리메이슨의 로지가 어떻게 혁명의 이상을 품는 자궁이자, 그 이상을 실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는지를 깊이 이해해야만 합니다.
당시 북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는 아직 하나의 통일된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낯선 이들의 집합체에 가까웠습니다. 매사추세츠의 상인과 버지니아의 농장주, 그리고 뉴욕의 지식인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분열된 식민지 사회 속에서, 프리메이슨 로지는 출신과 직업, 그리고 식민지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미래의 미국인’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어준 거의 유일한 사회적 용광로였습니다. 로지의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영국의 신민(臣民)이 아니라, ‘자유, 평등, 박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등한 형제들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프리메이슨이 혁명의 정신적 토대를 어떻게 마련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로지는 영국의 왕과 총독의 감시를 피해, 자유와 공화주의라는 위험하고도 새로운 사상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었던 가장 안전한 해방구였습니다.
존 로크의 사회 계약론과 몽테스키외의 삼권 분립 사상은 로지 안에서 열띤 토론의 주제가 되었고, 회원들은 압제적인 권력에 저항하여 스스로의 정부를 세울 권리가 있다는 계몽주의의 가르침을 깊이 내면화했습니다. 로지는 단순한 친목 단체가 아니라, 새로운 국가의 청사진을 그리는 혁명의 비밀스러운 건축 학교였던 셈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프리메이슨이 제공한 ‘신뢰의 네트워크’입니다. 혁명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 사이의 절대적인 신뢰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비밀스러운 정보를 전달하고, 위험한 계획을 함께 실행할 동지를 어떻게 믿고 의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프리메이슨의 형제애라는 굳건한 맹세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제공했습니다.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존 핸콕, 폴 리비어와 같은 혁명의 주역들이 모두 같은 형제단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연대가 단순한 정치적 동맹을 넘어선, 깨어질 수 없는 영적인 유대 위에 서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보스턴 차 사건 (Boston Tea Party)을 주도한 ‘자유의 아들들’의 핵심 멤버들이 세인트 앤드루 로지 (St. Andrew's Lodge)의 회원들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로지가 어떻게 혁명의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잉태하고 실행하는 신경 중추의 역할을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독립 전쟁의 포화 속에서, 조지 워싱턴 장군이 이끌었던 대륙군의 장교단 상당수가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점 또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부분입니다. 혹독한 겨울을 나던 밸리 포지 (Valley Forge)의 야전 막사 안에 세워진 군사 로지는, 패배의 위기 속에서도 장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서로 다른 식민지 출신 군인들을 하나의 대의 아래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접착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전쟁은 단지 영국의 군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혼돈(Chaos)으로부터 질서(Order)를 창조하고, 압제라는 ‘거친 돌’을 깎아 자유라는 ‘완벽한 성전’을 세우려는 위대한 영적 건축 작업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프리메이슨은 미국 독립 혁명에 세 가지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첫째, 혁명의 이념을 잉태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상적 자궁’을 제공했습니다.
둘째, 혁명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신뢰의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셋째, 절망의 순간에도 혁명의 대의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도덕적, 영적 지지대’가 되어주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화국의 탄생은 프리메이슨이 배후에서 조종한 음모의 결과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프리메이슨의 로지 안에서 수련되고 꿈꾸었던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여 하나의 거대한 국가라는 현실로 구현된, 위대한 역사의 필연이었던 것입니다.
3.2 프랑스 혁명과의 연관성 논쟁
만약 우리가 미국 독립 혁명을, 프리메이슨의 설계도 위에서 그들의 도구로 지어진 하나의 장엄한 이성의 신전(神殿)에 비유할 수 있다면, 불과 몇 년 뒤 유럽 대륙을 뒤흔든 프랑스 혁명은 그 원인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거대하고도 혼돈스러운 화산의 분출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거대한 역사의 용암 한가운데, 프리메이슨의 이름은 미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훨씬 더 복잡하고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역사가들을 양편으로 갈라놓는 이 격렬한 논쟁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과연 프리메이슨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보이지 않는 손이었습니까, 아니면 그저 혁명의 거대한 불길에 휩쓸린 또 하나의 희생자였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그렇다'는 대답은, 혁명의 공포가 채 가시지 않은 18세기 말에 이미 강력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오귀스탱 바뤼엘 신부와 같은 반혁명 사상가들의 눈에, 프랑스 혁명은 우연히 일어난 민중 봉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수십 년에 걸쳐 로지의 가장 깊숙한 방 안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왕관과 제단을 동시에 무너뜨리기 위한 거대한 음모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유, 평등, 박애’라는 혁명의 구호 자체가 본래 프리메이슨 로지에서 사용되던 것이었으며, 볼테르와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회원으로 있었던 파리의 ‘아홉 자매 로지 (Loge Les Neuf Sœurs)’와 같은 곳은 바로 구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사상적 무기를 벼리는 대장간이었습니다.
특히, 프랑스 프리메이슨의 총본부라 할 수 있는 ‘그랑 오리앙 (Grand Orient de France)’의 그랜드 마스터이자, 국왕 루이 16세의 사촌이었던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에갈리테 (Philippe Égalité)의 존재는 이러한 의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막대한 재산과 프리메이슨의 전국적인 조직망을 이용하여 반정부 여론을 선동하고, 혁명의 초기 국면을 주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음모론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 군단을 이끌고 스스로 왕좌를 차지하려 했던 혁명의 총사령관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처럼 선명하고도 드라마틱한 고발의 장막을 한 꺼풀 걷어내고 역사의 맨얼굴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훨씬 더 복잡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풍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선, 당시 프랑스의 프리메이슨은 결코 하나의 통일된 의지를 가진 단일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혁명을 앞둔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처럼, 내부적으로 깊이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수많은 로지는 국왕과 귀족 계급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들은 혁명의 급진적인 흐름에 결코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혁명이 공포 정치의 광기로 치달으면서, 수많은 프리메이슨들이 단두대 위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에는 국왕 루이 16세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프리메이슨은 혁명의 가해자였던 동시에, 가장 비극적인 피해자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또한, 오를레앙 공작의 경우 역시, 그가 프리메이슨의 명령을 받아 움직였다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프리메이슨이라는 도구를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가 결국에는 혁명의 불길에 자신마저 삼켜져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결코 모든 것을 통제하는 배후 조종자가 아니었음을 비극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프리메이슨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된 계몽주의의 이상이 로지 안에서 자유롭게 논의되고 확산되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리메이슨 로지는 혁명을 계획한 ‘사령부’는 아니었지만, 혁명의 정신이 잉태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수많은 ‘자궁’ 중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혁명의 원인은 아니었지만,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촉매제’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함과 혼돈 속에서, 프리메이슨의 이미지는 영원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 ‘건설자’의 역할을 했던 그들은, 프랑스에서 ‘파괴자’라는 새로운 혐의를 뒤집어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새롭고도 위협적인 이미지는, 곧이어 우리가 다음 장에서 만나게 될 거대한 음모론의 서사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될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3.3 19세기 반프리메이슨 운동
프랑스 혁명이 남긴 거대한 지적 폐허 위에서, 프리메이슨을 향한 의심의 씨앗은 이제 유럽 대륙을 넘어 전 세계로 흩뿌려졌습니다. 19세기는 바로 이 의심의 씨앗이 각기 다른 사회적, 정치적 토양과 만나, 때로는 거대한 정치 운동으로, 때로는 기괴한 사회적 광기로, 또 때로는 교활한 사기극의 형태로 자라난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에 반프리메이슨 운동은 더 이상 소수 사상가들의 지적인 고발에 머무르지 않고, 대중의 분노를 자양분 삼아 실재하는 권력을 추구하는 거대한 사회 현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역설적이게도 프리메이슨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바로 그 나라, 미국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1826년, 뉴욕 주 바타비아라는 작은 마을에서 윌리엄 모건 (William Morgan)이라는 한 남자가 프리메이슨의 모든 비밀 의식을 폭로하는 책을 출판하겠다고 선언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는 한때 로지의 문을 두드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나, 혹은 낮은 등급에 머무른 것에 불만을 품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계획이 알려지자, 지역 프리메이슨들은 출판을 막기 위해 갖은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해 9월, 모건은 정체불명의 사내들에게 납치된 후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이 '모건 사건 (Morgan Affair)'은 미국 사회에 거대한 불을 질렀습니다. 사람들은 프리메이슨이 자신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질렀다고 믿었으며, 이 사건은 그들이 법 위에 군림하는 오만한 비밀 제국이라는 공포를 확산시켰습니다. 이 대중적 분노를 동력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제3정당인 '반프리메이슨당 (Anti-Masonic Party)'이 창당되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반프리메이슨당은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비밀 맹세로 뭉친 프리메이슨들이 사법 체계와 정치를 부패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며, 한때 대통령 후보까지 내는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광풍 속에서 수많은 프리메이슨 회원들은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사업에 타격을 입었으며, 수천 개의 로지가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모건이라는 한 개인의 실종 사건이, 한 나라의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거대한 태풍의 눈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바다 건너 유럽에서는 반프리메이슨 운동이 전혀 다른, 더욱 기괴하고도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중심에는 레오 탁실 (Léo Taxil)이라는, 본래 교회를 조롱하는 글로 악명을 떨치던 프랑스의 한 작가가 있었습니다. 1880년대, 그는 돌연 가톨릭으로 개종했다고 선언하며, 과거의 죄를 뉘우치는 의미에서 프리메이슨의 사악한 실체를 폭로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이후 12년 동안, 프리메이슨의 최고 등급 안에는 '팔라디즘 (Palladism)'이라 불리는 사탄 숭배 비밀 조직이 존재하며, 그들이 루시퍼를 숭배하고 흑마술 의식을 거행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책들을 쏟아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선정적이었습니다. 그는 '다이애나 본 (Diana Vaughan)'이라는, 악마 루시퍼의 아이를 낳았으나 회개하고 돌아온, 전직 팔라디스트 여성의 증언까지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책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가톨릭 교회는 이 '용감한 폭로'에 열광했습니다. 심지어 교황 레오 13세까지 그의 공로를 치하하는 축복을 내렸을 정도였습니다.
그 결과, 반프리메이슨 정서는 유럽 전역에서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1897년 4월, 탁실은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마침내 다이애나 본의 실체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전 유럽의 이목이 집중된 그 자리에서, 그는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꾸며낸 거대한 사기극이었으며, 다이애나 본이라는 인물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목적은 프리메이슨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맹목적으로 믿어버린 가톨릭 교회의 어리석음을 조롱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탁실의 사기극 (Taxil Hoax)'은 19세기 반프리메이슨 운동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광기 위에 서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례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정치 운동과 유럽의 거대한 사기극. 이 두 사건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그 뿌리는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급격한 산업화와 사회 변동 속에서, 평범한 대중들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엘리트 집단의 존재를 두려워했던 19세기의 시대적 불안감이었습니다.
프리메이슨은 그들의 국경을 초월한 네트워크와 비밀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이러한 대중적 불안을 투사하기에 가장 완벽한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프리메이슨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이 '사악한 음모가'라는 낙인을 온몸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3.4 현대 프리메이슨의 활동과 자선
19세기의 거친 파도가 할퀴고 간 상처와, 레오 탁실의 사기극이 남긴 깊은 냉소 속에서, 프리메이슨은 ‘음모를 꾸미는 비밀 제국’이라는 무거운 멍에를 짊어진 채 20세기를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수한 의심과 적의 속에서, 그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들이 정말로 세계 정복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가진 조직이었다면, 그들의 현대적 활동 역시 더욱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대 프리메이슨의 활동을 편견 없이 들여다볼 때, 우리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놀랍도록 공개적이고 이타적인 풍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날 프리메이슨의 활동을 가장 잘 설명하는 하나의 단어를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자선 (Charity)’입니다. 물론 자선 활동은 프리메이슨의 초기 역사부터 존재해 온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를 거치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리메이슨은 자신들을 둘러싼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그들의 철학이 단순한 탁상공론이 아님을 행동으로 증명하기 위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체계적인 자선 사업에 그들의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장 위대하고도 감동적인 사례는 바로 ‘슈라이너스 아동 병원 (Shriners Hospitals for Children)’의 존재입니다. 슈라이너스 (Shriners)는 스코티쉬 라이트나 요크 라이트처럼, 마스터 메이슨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부속 단체 중 하나입니다. 붉은색 페즈(fez) 모자로 상징되는 이들은, 본래 즐거운 사교 활동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1922년 그들은 자신들의 에너지를 인류를 위한 가장 숭고한 목표에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의 지불 능력과 상관없이, 화상이나 척추 기형, 구순구개열과 같은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어린이를 무료로 치료해주는 전문 병원을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북미 전역에 세워진 20여 개의 슈라이너스 병원은, 지금까지 150만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한 푼의 치료비도 받지 않고 새 삶을 선물했습니다. 이곳의 문을 두드리는 아이와 그 부모에게, 의사는 단 한 번도 치료비나 보험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아이가 프리메이슨 가족인지 아닌지조차 묻지 않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이 아이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뿐입니다. 수많은 음모론이 프리메이슨이 인류를 조종하려 한다고 속삭일 때, 슈라이너스 병원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병마에 시달리는 어린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그들의 철학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유일한 사례가 아닙니다. 스코티쉬 라이트는 미국 전역에서 수백 개의 ‘아동 언어 장애 클리닉 (Childhood Language Disorders Clinics)’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난독증이나 말더듬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세상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이 조용한 활동 역시, 프리메이슨의 핵심 가르침인 ‘빛을 향한 추구’가 구체적인 형태로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그랜드 로지와 개별 로지들은 각자의 지역 사회에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재난 구호 기금을 마련하며, 노숙자를 위한 쉼터를 지원하는 등, 그 규모와 형태를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자선 활동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프리메이슨의 가르침에서 ‘구제 (Relief)’라 불리는 핵심적인 덕목의 실천입니다. 그들에게 자선은 단순히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한 홍보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받는 형제와 이웃을 돕는 것이야말로,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의 뜻에 따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가장 신성한 노동이라는 철학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물론, 이러한 거대한 자선 활동에도 불구하고 프리메이슨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현대 프리메이슨은 더 이상 비밀의 장막 뒤에 숨어 그들의 정체를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병원과 클리닉, 그리고 수많은 자선 단체라는 공개적인 창문을 통해, 세상이 자신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웅변으로 설득하는 대신,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용한 실천은, 지난 세기 동안 쌓아 올려진 그 어떤 거대한 음모론보다도 훨씬 더 크고 깊은 울림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