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현대 프리메이슨의 활동

by DrLeeHC

제5부: 프리메이슨의 현대적 맥락과 미래


제16장: 현대 프리메이슨의 활동


16.1 자선과 사회적 기여


만약 과거의 프리메이슨이 닫힌 로지의 문 뒤에서 비밀스러운 철학을 논하는 신비주의자들의 모임이라는 이미지에 더 가까웠다면, 21세기의 프리메이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와, 자신들의 철학을 구체적인 사회적 기여로 증명하려는 '행동하는 박애주의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음모론의 끈질긴 공격과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 속에서, 현대 프리메이슨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자선 (Charity)이라는, 그들의 가장 오래된 가르침 속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들의 자선 활동은, 단순히 곤경에 처한 형제를 돕는 내부적인 상조(相助)의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가장 시급한 문제에 응답하는 거대하고도 체계적인 사회 공헌 시스템으로 진화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슈라이너스 아동 병원 (Shriners Hospitals for Children)이라는 기념비적인 사례를 살펴보았지만, 현대 프리메이슨의 자선 활동은 의료 분야를 넘어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으로 그 가지를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교육 분야에 대한 막대한 투자입니다. 특히 미국 스코티쉬 라이트 (Scottish Rite)의 북부 관할 지역은, '어린이 난독증 센터 (Children's Dyslexia Centers)' 네트워크를 통해 수십 년간 수만 명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전문적인 언어 치료를 제공해 왔습니다. 그들은 난독증이 아이의 지능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조기에 발견하고 전문적인 도움을 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학습 장애라는 인식 아래, 이 조용한 고통과 싸우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프리메이슨의 핵심 가치인 '빛'을, 단순히 철학적 깨달음의 상징을 넘어, 한 아이가 글을 읽고 세상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하는 실질적인 빛으로 만들어주는, 위대한 현대적 실천입니다.


또한, 현대 프리메이슨은 노령화 사회라는 시대적 과제에도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그랜드 로지들은 '메이소닉 홈 (Masonic Homes)'이라 불리는 양질의 노인 요양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시설들은 단순히 거처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품위 있는 노년의 삶을 위한 다양한 의료 및 복지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많은 경우 회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일반 노인들에게도 그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이라는 건축의 마지막 장을 맞이한 이들에게, 사회가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빚지고 있다는 프리메이슨의 도덕적 신념이 구체적인 형태로 발현된 것입니다.


이러한 거대하고 조직적인 자선 사업 외에도, 현대 프리메이슨의 진정한 힘은 전 세계 수십만 개의 개별 로지들이 각자의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고 펼치는, 풀뿌리 같은 사회 공헌 활동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은 지역 소방서에 새로운 장비를 기증하고, 공립 도서관의 도서 구입 기금을 마련하며, 참전 용사들을 위한 위문 행사를 열고,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는 자원봉사자들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거대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프리메이슨이 더 이상 비밀스러운 엘리트들의 모임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 모여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려는 '생활 밀착형 시민 단체'임을 가장 진실하게 보여줍니다.


현대 프리메이슨은 자신들을 둘러싼 수많은 음모론의 소음에, 웅변적인 반박 대신 침묵의 실천으로 응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비밀스러운 제국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아픈 아이의 치료비를 대신 내주고,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외로운 노인의 말벗이 되어주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처럼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기여야말로, 3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고대의 형제회가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스스로의 미래를 건설해 나가는 가장 정직하고도 강력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2 젊은 세대와 프리메이슨의 부흥


20세기 후반, 서구 사회의 많은 프리메이슨 로지들은 서서히 활력을 잃어가는 노인들의 사교 클럽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전통적인 권위에 대한 반감 속에서, 이 고대의 형제회는 시대에 뒤처진 과거의 유물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우리는 놀랍고도 역설적인 부활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의 한복판에서 태어나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젊은이들이, 그 어떤 세대보다도 진지한 열망을 가지고 이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적 공동체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채워주지 못하는 깊은 인간적 갈증에 대한 의미심장한 응답입니다.


이 새로운 부흥의 가장 깊은 동력은,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살아가는 디지털 시대의 피상성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됩니다. 수천 명의 소셜 미디어 친구와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관계의 깊이는 종종 화면의 두께를 넘어서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젊은 세대는 진정한 소속감유대감에 목말라 있습니다. 프리메이슨 로지는 바로 이 디지털 시대의 고독에 대한 하나의 강력한 해독제를 제공합니다. 그곳은 아바타가 아닌 실제 얼굴을 마주하고, '좋아요'가 아닌 실제 악수를 나누며,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형제들과 하나의 공통된 이상 아래 묶이는, 지극히 물리적이고도 실재적인 공동체입니다. 이들에게 로지는 단순한 모임의 장소를 넘어, 파편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잃어버린 '형제'를 되찾는 영적인 귀향의 공간이 됩니다.


또한, 무한한 선택지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현대 사회 속에서, 젊은 세대는 자신의 삶을 의미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줄 구조목표를 갈망합니다. 프리메이슨이 제공하는 점진적인 등급 체계와 수 세기에 걸쳐 다듬어진 의례(儀禮)는, 바로 이 혼돈스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한 걸음씩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명확한 '영혼의 커리큘럼'을 제공합니다. 도제에서 직인으로, 그리고 장인 석공으로 나아가는 여정은, 단순히 지위를 얻는 과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미완의 프로젝트를 완성해 나가는 구체적인 이정표가 됩니다. 이것은 즉각적인 만족과 끊임없는 변화를 강요하는 현대 문화 속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신을 연마하는 고전적인 장인(匠人) 정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새로운 세대의 프리메이슨들은 그들의 선배 세대가 종종 간과했던, 조직의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보물, 즉 에소테릭 (Esoteric) 전통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프리메이슨은 더 이상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사교 클럽이 아닙니다. 그것은 헤르메스주의와 카발라, 그리고 연금술의 지혜가 담긴 상징들을 통해, 자기 자신과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는 진정한 신비주의 학교입니다. 우리가 제7장에서 살펴보았던 '에소테릭 부흥'의 주역이 바로 이들입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탐구하고, 팟캐스트와 온라인 포럼을 통해 전 세계의 형제들과 철학적 토론을 벌이며, 프리메이슨을 다시 한번 지적이고 영적인 탐구의 최전선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프리메이슨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결코 과거의 권위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가장 오래된 전통 속에서, 가장 현대적인 문제, 즉 파편화된 공동체와 의미의 상실, 그리고 영적 갈증에 대한 가장 진실한 해답을 발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젊은 건축가들의 손에서, 프리메이슨이라는 낡고 거대한 신전은 이제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시대의 빛을 담아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정과 지적 호기심이야말로, 이 고대의 형제회가 21세기를 넘어 다음 세기로까지 그 생명력을 이어가게 할 가장 강력한 희망의 불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3 디지털 시대의 프리메이슨: 온라인 로지


프리메이슨의 모든 철학과 상징은 하나의 근본적인 전제, 즉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육체적인 체험을 통해 전달된다는 전제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로지 (Lodge)는 단순한 회의실이 아니라, 신성한 기하학의 원리에 따라 구획된 우주의 축소판입니다. 입문 의식은 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가리고, 거친 돌을 만지며, 형제들의 손에 이끌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온몸의 여정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완벽하게 물질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고대의 전통이, 모든 것이 비물질적인 데이터의 흐름으로 존재하는 디지털 시대와 과연 공존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은 21세기 프리메이슨이 마주한 가장 심오하고도 도전적인 철학적 화두입니다.


초기의 인터넷은 프리메이슨에게 주로 외부 세계를 향한 홍보의 창구이자, 내부 회원들을 위한 정보 공유의 게시판 역할을 했습니다. 그랜드 로지들은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자신들의 역사를 알리고, 음모론에 대해 반박하며, 새로운 회원을 유치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로지 그 자체, 즉 의례가 행해지는 신성한 공간이 디지털 세계로 옮겨갈 수 있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상상하기 어려운 일종의 신성모독처럼 여겨졌습니다. 악수가 없는 형제애가, 물리적인 제단이 없는 의식이, 그리고 함께 숨 쉬는 공간의 공기가 없는 유대감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 근본적인 회의론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는, 이 철학적인 질문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전 세계의 로지들이 무기한 문을 닫아야만 했을 때, 프리메이슨은 수백 년 역사상 처음으로 물리적인 만남이 불가능해진 실존적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아이디어, 즉 온라인 로지 (Online Lodge) 혹은 가상 로지 (Virtual Lodge)라는 새로운 형태의 실험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온라인 로지는 결코 물리적인 로지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입문과 진급과 같은 핵심적인 의례는 여전히 신성한 물리적 공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거의 모든 프리메이슨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화상 회의 플랫폼을 이용하여, 의례 외의 다른 중요한 기능들을 디지털 공간에서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로지는 이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형제들이 지리적 제약 없이 모여, 프리메이슨의 철학과 상징에 대해 토론하고, 저명한 학자들의 강연을 듣는 거대한 '디지털 아카데미'가 되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로지에 속한 한 젊은 메이슨이, 이제는 런던이나 뉴욕의 저명한 프리메이슨 사상가와 실시간으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지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온라인 로지는 형제애의 유대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새로운 통로가 되었습니다. 질병이나 노령으로 인해 더 이상 로지에 직접 참석하기 어려워진 원로 회원들은, 이제 스크린을 통해 젊은 형제들의 얼굴을 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프리메이슨의 가장 위대한 가치인 구제 (Relief)의 정신이, 기술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디지털 혁명은 프리메이슨에게 중대한 철학적, 실천적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과연 화면 속의 아바타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진정한 유대감이라 할 수 있는가? 신성한 상징과 의례가 유튜브 영상처럼 손쉽게 소비될 때, 그것은 그 깊이와 신비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이 열린 디지털 공간 속에서 수백 년간 지켜온 비밀주의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디지털 시대의 프리메이슨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온라인 로지는 결코 전통적인 로지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변적 (Speculative)' 프리메이슨이 탄생했던 18세기 이후, 프리메이슨의 정의와 가능성을 가장 근본적으로 확장시키는 또 한 번의 위대한 진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이제 '로지란 무엇인가?', '형제애란 무엇인가?', 그리고 '함께 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21세기의 언어로 다시 묻고 답해야만 하는 새로운 과업의 시대에 들어선 것입니다.


16.4 여성과 소수자 포용의 변화


프리메이슨의 가장 위대한 이상이 국적과 종교,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넘어선 보편적 형제애에 있다면, 그들의 가장 깊은 역사적 딜레마는 바로 그 '형제'라는 단어 안에 과연 누구까지를 포함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수 세기 동안, 프리메이슨의 로지는 거의 예외 없이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그 견고한 성벽은 여성과 유색 인종들에게는 결코 열리지 않는 문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의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 즉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이 가장 오래된 형제회 역시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과 고통스럽게 마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의 가장 상징적인 전선은 바로 여성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미 제2장에서 코프리메이슨리 (Co-Freemasonry)의 탄생을 통해 남녀가 함께 활동하는 별도의 흐름이 존재함을 살펴보았지만, 더욱 의미심장한 변화는 바로 전통적인 남성 전용 프리메이슨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연합 그랜드 로지 (United Grand Lodge of England, UGLE)를 비롯한 대다수의 주류 그랜드 로지들은 여전히 남성만을 회원으로 받는다는 기본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여성 프리메이슨 조직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던 완고한 태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들을 '프리메이슨의 이상을 공유하는 별개의 합법적인 조직'으로 공식적으로 인정(Recognition)하는, 실로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통합은 아닐지라도, 수백 년간의 배척을 넘어,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동반자로서의 상호 존중과 공존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젠더(Gender)에 대한 현대적 이해와 만나 더욱 복잡하고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만약 한 회원이 프리메이슨이 된 이후에 자신의 성(性)을 여성으로 전환한다면, 그의 회원 자격은 어떻게 되는가? 2018년, 잉글랜드 연합 그랜드 로지는 이 민감한 질문에 대해, "한번 형제는 영원한 형제"라는 원칙 아래, 성전환 이후에도 그의 회원 자격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공식적인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남성'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 입문 당시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확장한, 전통과 현대적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고뇌의 산물입니다.


인종의 문제 역시 프리메이슨의 현대적 변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중요한 창입니다. 특히 미국의 역사 속에서, 프리메이슨은 사회의 인종 차별적인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18세기 후반, 흑인이라는 이유로 기존 로지에서 가입을 거부당했던 프린스 홀 (Prince Hall)이라는 인물은, 영국으로부터 직접 허가를 받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위한 독자적인 프린스 홀 프리메이슨리 (Prince Hall Freemasonry)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200년 동안, 미국의 프리메이슨은 백인 중심의 주류 그랜드 로지와 흑인 중심의 프린스 홀 그랜드 로지라는, 보이지 않는 인종의 벽으로 분리된 채 각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이 부끄러운 분열의 역사를 청산하고 진정한 형제애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각 주(州) 그랜드 로지들은 점진적으로 프린스 홀 그랜드 로지를 자신들과 동등한 합법적인 프리메이슨 조직으로 공식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두 조직의 회원들이 서로의 로지를 자유롭게 방문하고 교류하는 것이 보편적인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프리메이슨의 이상이 마침내 그들 자신의 역사적 과오를 극복해 나가는, 느리지만 위대한 화해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 프리메이슨은 자신들의 가장 오래된 전통이었던 배타성(Exclusivity)의 성벽을 스스로 허물고, 그들의 가장 위대한 이상이었던 보편성(Universality)의 지평을 향해 조심스럽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으며, 내부적인 저항과 갈등을 동반하는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 변화의 물결은, 프리메이슨이 더 이상 과거의 유물로 박제되기를 거부하고, 21세기라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자기 쇄신의 몸부림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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