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기독교와 프리메이슨: 악마 숭배 논쟁
제15장: 기독교 내 프리메이슨 수용 사례
15.1 프리메이슨 회원인 기독교인들
우리가 앞선 장들에서 교황의 준엄한 교서와 신학자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기독교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프리메이슨의 철학 사이에 놓인 깊은 심연을 확인했다면, 이제 우리는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하나의 거대하고도 불편한 역설과 마주해야만 합니다. 만약 이 두 세계가 그토록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지난 300년 동안 수많은 경건한 기독교인들, 심지어는 교회의 강단에 섰던 수많은 성직자들이 기꺼이 로지의 문을 두드리고 스스로를 프리메이슨이라 칭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은, 공식적인 교리의 차가운 선언을 넘어, 신앙을 살아냈던 개인들의 뜨거운 고뇌와 신념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이 역설의 역사는 사변적 프리메이슨이 그 모습을 드러낸 가장 첫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1723년, 현대 프리메이슨의 헌법과도 같은 『자유 석공 조합 규약, The Constitutions of the Free-Masons』을 집필한 인물은 바로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였던 제임스 앤더슨 (Rev. James Anderson)이었습니다. 또한, 초대 그랜드 로지의 세 번째 그랜드 마스터로서 조직의 기틀을 닦은 인물은, 당대 최고의 과학자이자 성공회 사제였던 존 테오필러스 데사굴리에 (Rev. John Theophilus Desaguliers)였습니다. 이들에게 프리메이슨은 결코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을 대체하거나 위협하는 새로운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들의 신앙이 가르쳐준 '이웃을 사랑하라'는 위대한 계명을, 서로 다른 교파의 벽을 넘어 모든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하나의 완벽한 '도덕적 실천의 장(場)'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더욱 강력한 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 중 상당수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과 프리메이슨으로서의 정체성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미국 독립군의 총사령관이자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은 평생을 독실한 성공회 신자로 살았으며, 동시에 버지니아의 한 로지에서 마스터 직을 수행하는 것을 큰 영예로 여겼습니다. 그는 성경 위에 손을 얹고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으며, 그 성경은 바로 그가 속한 프리메이슨 로지의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프리메이슨의 원칙인 형제애와 자선, 그리고 진리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사랑과 희생, 그리고 진실의 가치와 전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록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프리메이슨을 단죄했지만, 수많은 평신도와 심지어 일부 성직자들까지도 로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입니다. 그는 평생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 Die Zauberflöte』는 프리메이슨의 입문 의식과 상징들로 가득 찬, 그의 프리메이슨 철학의 위대한 음악적 증언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어둠의 세계를 다스리는 '밤의 여왕'의 맹목적인 복수심은, 지혜와 관용의 빛으로 가득 찬 '자라스트로'의 신전 안에서 마침내 정화됩니다. 모차르트에게 프리메이슨의 지혜는 결코 그의 가톨릭 신앙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신앙을 더욱 깊고 보편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이 명백해 보이는 신학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그 해답은, 그들이 프리메이슨을 '종교(Religion)'가 아닌, '종교적 삶을 위한 시스템(A System of Morality)'으로 이해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문제나 내세의 삶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자신들의 교회 안에서만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 구원의 가르침을 이 땅 위에서, 일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을 바로 프리메이슨의 로지 안에서 배웠던 것입니다. 로지는 그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선한 이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중립적이고도 신성한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역사 속의 수많은 기독교인 프리메이슨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교리와 개인의 신념 사이의 관계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프리메이슨의 상징과 의례 속에서 기독교에 대한 위협이 아닌, 오히려 자신들의 신앙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실천적으로 만들어주는 보편적인 도덕의 언어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프리메이슨과 기독교의 관계가 결코 단 하나의 공식적인 선언으로 재단될 수 없는, 훨씬 더 복잡하고 인간적인 차원의 이야기임을 증언하는,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15.2 종교적 관용과 공존의 사례
프리메이슨의 로지가 단순히 개인의 신앙과 양립 가능한 도덕 체계였다는 사실을 넘어, 우리는 그 안에서 훨씬 더 급진적이고 위대한 사회적 실험이 이루어졌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종교적 증오와 갈등으로 얼룩진 세상의 한복판에서,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이 모든 교리적 차이를 내려놓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만날 수 있는 중립적인 성소 (Neutral Sanctuary)를 창조해 낸 것입니다. 프리메이슨의 가장 위대한 사회적 공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관용'이라는 추상적인 이상을, 실제적인 '공존'이라는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어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위대한 실험의 중심에는, 우리가 이미 그 기원을 탐사했던,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 (The Great Architect of the Universe)'라는 천재적인 철학적 발명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개념은 로지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유일한 신학적 입장권이었습니다. 당신이 믿는 신이 야훼이든, 삼위일체의 하느님이든, 혹은 알라이든, 당신이 이 우주가 신성한 원리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로지는 당신의 다른 모든 신학적 신념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로지 안에서 종교적, 정치적 논쟁을 금지하는 엄격한 규율은, 이곳이 세상의 갈등을 재현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 갈등으로부터 벗어나는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러한 원칙이 가장 빛을 발했던 역사적 사례 중 하나는, 바로 18세기 유럽 사회에서 여전히 깊은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던 유대인 (Jews)들의 프리메이슨 가입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유대인들은 시민으로서의 완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으며,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된 사회의 모든 주류 기관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1720년대와 30년대, 런던의 프리메이슨 로지들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혁명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유대인 상인과 지식인들에게 기꺼이 로지의 문을 열어주고, 그들을 동등한 '형제'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로지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종교 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사회의 다른 엘리트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교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로지 안에서 유대인 상인은 성공회 귀족과, 유대인 학자는 장로교 목사와 나란히 앉아, 서로의 종교가 아닌 공통의 인간성과 도덕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교 활동을 넘어, 수백 년간 쌓여온 불신과 편견의 벽을 허무는, 작지만 위대한 공존의 실천이었습니다. 이처럼 프리메이슨은, 국가가 법적으로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로지라는 작은 공화국 안에서 유대인들에게 실질적인 시민적 평등을 선물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용의 정신은, 프리메이슨이 인도의 힌두교도와 파르시교도,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들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로지는 종종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 엘리트들이 유일하게 동등한 인간으로서 만날 수 있는 기묘한 중립 지대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상이 항상 완벽하게 실현된 것은 아니었으며, 인종적, 종교적 편견이 로지 안으로 스며드는 경우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메이슨이 역사에 남긴 중요한 발자취는, 그들이 종교적 진리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대신, 도덕적 삶의 보편성을 추구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경전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정직과 자비, 그리고 진실이라는 가치는 모든 선량한 인간의 마음속에 공통으로 새겨져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공통의 도덕률이야말로, 모든 종교적 차이를 뛰어넘어 인류를 하나의 위대한 형제단으로 묶어줄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단단한 기반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처럼 프리메이슨의 로지는, 신학적 통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윤리적 공존을 통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계몽주의의 가장 위대한 꿈이 실현되었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사회적 실험실 중 하나였습니다.
15.3 현대 기독교와 프리메이슨의 화해 노력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교황의 교서와 신학적 비판의 역사는, 기독교와 프리메이슨 사이에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한쪽은 유일한 진리를, 다른 한쪽은 보편적 관용을 그 깃발로 내걸었기에, 두 세계의 충돌은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을 함께 겪어낸 이후, 이 견고해 보였던 대립의 구도 속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새로운 대화와 상호 이해를 향한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신학적 화해라기보다는, 오랜 적대감의 근원이 되었던 깊은 오해의 안개를 걷어내려는, 양측의 지성인들이 벌인 고통스럽고도 용기 있는 노력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가톨릭 교회보다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었던 개신교 교단들, 특히 영국 성공회 (Church of England)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1987년, 성공회 총회는 프리메이슨과 기독교 신앙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공식적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프리메이슨의 일부 상징과 의례가 기독교 신앙과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들, 예컨대 이신론적(Deistic) 경향이나 종교적 혼합주의의 위험성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보고서는 프리메이슨을 사탄 숭배 집단으로 규정하거나, 그 회원들을 이단으로 단죄하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보고서는 성공회 신자들이 프리메이슨에 가입할 경우, 자신의 신앙적 양심에 따라 그 양립 가능성을 신중하게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훨씬 더 온건하고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것은 프리메이슨을 '절대악'으로 규정했던 과거의 태도에서 벗어나, 그들을 하나의 복잡한 철학 체계로 인정하고 '비판적 대화'의 가능성을 연, 매우 중요한 신학적 전환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Second Vatican Council) 이후 불어온 개방과 쇄신의 바람 속에서 미묘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1983년에 새로 반포된 『교회법전, Codex Iuris Canonici』에서는, 이전 법전과는 달리 프리메이슨을 직접적으로 명시하여 파문(Excommunication) 대상으로 삼는 조항이 삭제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교회가 마침내 프리메이슨에 대한 오랜 적대 정책을 철회하는 것이 아니냐는 희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직후,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요제프 라칭거 (Joseph Ratzinger) 추기경, 즉 훗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 (Pope Benedict XVI)는,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명확히 하는 공식적인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교회법전에 프리메이슨이 명시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철학적 원리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화해 불가능(Irreconcilable)'하다는 교회의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따라서 가톨릭 신자가 프리메이슨 회원이 되는 것은 여전히 중죄(重罪)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재확인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 기저에는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과거의 단죄가 프리메이슨이라는 조직 자체를 악으로 규정했다면, 새로운 입장은 그들의 '철학적 원리'와의 비양립성을 문제 삼는, 훨씬 더 신학적이고 정교한 형태로 그 논리를 전환한 것입니다. 이것은 프리메이슨 회원 개개인을 악마 숭배자로 낙인찍는 대신, 두 사상 체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한 대화의 문을 아주 조금이나마 열어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심스러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양측의 일부 지식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비공식적인 대화와 학술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메이슨 측에서는 자신들의 의례와 상징이 결코 기독교 신앙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인 도덕률을 통해 그 신앙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도구임을 설명하려 노력했습니다. 일부 기독교 신학자들은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수많은 비난들이, 레오 탁실의 사기극과 같은 명백한 역사적 왜곡에 기반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더 이상 악마의 하수인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기독교와 프리메이슨의 관계는 여전히 불편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것이 사실입니다. 완전한 신학적 화해는 아마도 영원히 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전쟁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때로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최소한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지지는 않으려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휴전(休戰)의 상태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위태로운 평화는, 지난 300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작지만 위대한 진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4 프리메이슨의 자선 활동과 기독교 가치
만약 우리가 신학이라는 엄격한 언어의 법정에서만 기독교와 프리메이슨의 관계를 심문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유죄와 무죄의 공방만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선을 돌려, 교리의 세계가 아닌 행위의 세계, 즉 고통받는 이웃의 눈물 앞에서 그들이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길이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같은 곳을 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프리메이슨의 자선 활동은, 그들의 철학이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가치 중 하나인 사랑(Agape, 아가페)의 실천과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하고도 소리 없는 증언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윤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위대한 계명 속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특히, 강도를 만나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한 사마리아인이 아무 조건 없이 그를 보살펴 주었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진정한 사랑이 교리나 신분, 혹은 종족의 경계를 넘어, 오직 고통받는 존재를 향한 무조건적인 자비의 행위를 통해 증명됨을 가르칩니다.
바로 이 기독교적 사랑의 원형은, 프리메이슨이 그들의 세 가지 위대한 기둥 중 하나로 삼고 있는 구제(Relief)의 원칙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형태로 발현됩니다. 우리가 이미 간략히 언급했던 슈라이너스 아동 병원 (Shriners Hospitals for Children)의 존재는, 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20세기에 하나의 거대한 조직적 형태로 재탄생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병원들은 지난 100년 동안, 화상이나 척추 질환으로 고통받는 150만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부모가 가진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단 한 번도 묻지 않고,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전액 무료로 제공해 왔습니다. 병원의 문턱에서, 아이는 단지 치료가 필요한 한 명의 고통받는 인간일 뿐입니다. 이처럼 조건 없는 자비의 실천 앞에서, '기독교인'과 '프리메이슨'이라는 신학적 구분은 그 의미를 잃고, '돕는 자'와 '도움이 필요한 자'라는 훨씬 더 근본적인 인간의 관계만이 남게 됩니다.
이러한 정신은 비단 거대한 병원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개별 로지들의 조용한 활동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역 사회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자연재해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위해 구호 기금을 모금하며,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복지 시설을 후원합니다. 이 모든 행위의 저변에는, 프리메이슨의 가르침, 즉 우리는 모두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의 자녀로서 서로를 돌볼 의무가 있는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라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학적 관점에서 이 두 세계의 동기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자선은 신의 은총에 대한 감사와 구원의 믿음에서 비롯될 수 있으며, 프리메이슨의 자선은 인류라는 위대한 신전을 건설하기 위한 도덕적 의무감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동기의 신학적 뿌리가 어떠하든, 그들이 맺는 열매는 '고통의 감소'와 '사랑의 실현'이라는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굶주린 아이에게 빵 한 조각을 건네는 손길 앞에서, 그 손이 기도 끝에 나온 것인지 철학적 성찰 끝에 나온 것인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할지 모릅니다.
프리메이슨의 자선 활동은, 두 세계 사이에 놓인 신학적 논쟁이라는 거대한 강을 건널 수 있는 하나의 작지만 튼튼한 다리가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교리의 언어가 때로는 서로를 가르고 단죄하는 날카로운 칼이 될 때, 고통받는 이를 향한 침묵의 봉사는 그 어떤 웅변보다도 더 강력하게, 우리 모두가 하나의 보편적인 도덕률 아래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합니다. 어쩌면 진정한 신앙과 철학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다고 말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어떻게 보듬는가를 통해 가장 진실하게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