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타블렛』제2장

제2장: 두 번째 구절 주해

by 이호창

제2장: 두 번째 구절 주해


원문: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같고,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같으니, 이는 하나의 실체의 기적을 행하기 위함이다.”

(Quod est inferius, est sicut quod est superius, et quod est superius, est sicut quod est inferius, ad perpetranda miracula rei unius.)


2.1. 우주론적 해석: 상응의 원리와 홀로그램 우주


만일 『에메랄드 타블렛』의 첫 번째 구절이 진리의 존재를 선언하는 형이상학적 서약이었다면, 두 번째 구절은 그 진리가 어떤 구조와 법칙을 통해 현현하는지를 밝히는 우주론적 대헌장입니다.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같고,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같다.” 이 간결하고도 심오한 아포리즘은, 헤르메스주의 철학 전체를 떠받치는 제1원리, 즉 ‘상응의 원리(The Principle of Correspondence)’를 선언합니다. 이는 단순히 ‘비슷하다’는 유비(analogy)의 차원을 넘어, 우주의 모든 다른 층위—천상과 지상, 정신과 물질, 대우주와 소우주—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패턴과 법칙을 공유하며,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자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임을 밝히는 존재론적 선언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분리되고 파편화된 것처럼 보이는 이 세계의 이면에 숨겨진 통일성의 비밀을 꿰뚫어 보는 첫걸음입니다.


대우주와 소우주의 거울


고대의 지혜는 인간을 ‘소우주(Microcosmos)’라 부르고, 그를 둘러싼 세계를 ‘대우주(Macrocosmos)’라 불렀습니다. 상응의 원리는 바로 이 둘 사이의 깊은 관계를 설명합니다. 인간의 신체 구조는 하늘의 별자리와 상응하며, 인간의 감정적 리듬은 달의 주기와 공명하고, 인간의 영적 여정은 태양의 길을 따릅니다. 따라서 인간은 우주로부터 고립된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우주 전체의 구조와 드라마를 자신의 존재 안에 압축하여 담고 있는 작은 우주입니다. 반대로, 광대한 우주 또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확대하여 투사한 거대한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관찰하는 행성들의 투쟁과 결합은, 사실 우리 내면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힘들 사이의 드라마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첫째, 그것은 우리에게 ‘자기 인식’의 가장 확실한 길을 제시합니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자연과 우주라는 위대한 책을 읽어야 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는 방식 속에서 내 영혼의 성장 법칙을 배우고, 계절의 순환 속에서 내 삶의 리듬을 발견하며, 별들의 운행 속에서 내 운명의 지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둘째, 그것은 우리에게 ‘세계 인식’의 열쇠를 줍니다. 우주의 가장 큰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거대한 망원경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 즉 나 자신의 존재를 깊이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헤르메스주의자에게,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실험실이자 관측소인 셈입니다.


홀로그램 우주: 부분 속에 전체를 담다


이 상응의 원리는 놀랍게도,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현대 물리학의 가장 첨단 이론 중 하나인 ‘홀로그램 우주론(Holographic Principle)’과 깊은 공명을 이룹니다. 홀로그램이란, 2차원의 필름에 3차원의 모든 정보가 암호화되어 기록된 것을 말합니다. 이 필름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그것을 아무리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도, 각각의 조각 안에 전체 이미지에 대한 정보가 온전히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부분이 전체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에메랄드 타블렛』이 말하는 상응의 원리는 바로 이 홀로그램적 구조를 고대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우주라는 전체 이미지는, 소우주라는 작은 조각 안에 그 모든 정보와 패턴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인간 한 사람, 작은 풀잎 하나, 모래알 한 톨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의 모든 개별적인 존재는 우주 전체의 홀로그램적 파편이며, 따라서 그 안에는 우주 전체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면”이라고 노래했을 때, 그는 바로 이 헤르메스적 통찰을 시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키발리온』이 제시하는 두 번째 원리, 즉 ‘상응의 원리(The Principle of Correspondence)’의 핵심입니다. 『키발리온』은 이 원리가 진리를 탐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정신적 도구 중 하나라고 말하며, “상응의 원리를 이해하는 자는 베일을 찢고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을 볼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즉, 이 원리를 통해 우리는 현상 세계라는 베일 너머에 있는 실재의 숨겨진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기적: 통일성을 향한 위대한 작업의 목표


그렇다면 이 상응의 원리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타블렛은 그 목적이 “하나의 실체(One Thing)의 기적을 행하기 위함”이라고 명확히 밝힙니다. 여기서 ‘하나의 실체’란 바로 위대한 작업의 최종 목표인 ‘현자의 돌’이며, ‘하나의 기적’이란 그 돌이 행하는 궁극의 변성 작용을 의미합니다.


상응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과 땅,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체를 서로 분리된 별개의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는 이 분열된 세계 속에서 영원한 갈등과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상응의 원리를 깨달은 연금술사는, 이 모든 것들이 본래 ‘하나의 실체’의 다른 표현일 뿐임을 압니다. 그는 더 이상 이원성의 세계에 살지 않습니다. 그는 위와 아래가, 안과 밖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에, 지상의 물질(납)을 다루는 작업을 통해 천상의 원리(황금)를 실현할 수 있음을 이해합니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 곧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는 길임을 알며, 자신의 내면을 변성시키는 것이 곧 외부 세계를 변화시키는 길임을 압니다.


이처럼, 위대한 작업의 모든 과정은 이 상응의 원리에 대한 깊은 신뢰와 적용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작은 용광로(소우주) 안에서, 우주가 창조되었던 바로 그 법칙(대우주)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그는 땅에서 불을 분리하고, 미묘한 것을 거친 것에서 분리함으로써, 태초에 신이 행했던 분리의 기적을 모방합니다. 그는 땅에서 하늘로 영을 올렸다가 다시 땅으로 내림으로써, 우주 안에서 영원히 순환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재현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는 마침내 자신의 존재 안에서 대우주의 모든 힘들—위와 아래, 하늘과 땅의 모든 힘—을 하나로 통합하여, ‘하나의 실체’, 즉 현자의 돌을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에메랄드 타블렛』의 두 번째 구절은 단순한 철학적 명제를 넘어, 실재의 본질과 구원의 길에 대한 가장 심오한 비밀을 담고 있는 열쇠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 파편화된 세상 속에서 통일성을 발견하고, 그 통일성의 법칙을 따라 자신의 삶을 변성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이 상응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자신의 존재가 곧 우주 전체의 축소판임을 깨닫는 자만이, 마침내 분열된 존재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자신 안에 포함하는 ‘하나의 기적’ 그 자체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2.2. 연금술적 해석: 소우주로서의 용광로와 대우주


만일 두 번째 구절의 우주론적 의미가 ‘실재의 통일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원리를 선언하는 것이라면, 그 연금술적 의미는 그 원리가 어떻게 구체적인 ‘위대한 작업’의 청사진이자 실천적 지침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연금술사에게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라는 이 구절은 단순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자신의 실험실에서 우주 창조의 신비를 재현할 수 있다는 가장 위대하고도 대담한 약속입니다. 이 원리에 따라, 연금술사의 용광로와 그 안의 유리 그릇은 더 이상 평범한 도구가 아니라, 우주 전체의 구조와 법칙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소우주(Microcosmos)’가 됩니다. 연금술사는 바로 이 작은 우주 안에서, 대우주가 탄생했던 바로 그 과정을 모방함으로써, 마침내 “하나의 실체의 기적”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우주의 재현: 세계로서의 용광로


『헤르메스 비의』의 저자는 이 상응의 원리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돌의 생성은 세계 창조의 패턴을 따라 이루어진다”고 단언하며, 연금술 작업이 곧 창세기의 재현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 관점에서, 연금술의 모든 도구와 과정은 우주적 상징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연금술사가 사용하는 둥근 형태의 용광로, 즉 ‘아타노르(Athanor)’는 우주 전체를 감싸고 있는 하늘의 구(球) 혹은 태초의 ‘세계의 알(World-Egg)’을 상징합니다. 그 안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비밀스러운 불’은, 우주의 중심에서 모든 것에 생명과 운동을 부여하는 ‘중심의 태양’입니다. 연금술사가 이 용광로 안에 넣는 ‘제1질료(Prima Materia)’는, 창조 이전의 어둡고 형태 없는 ‘카오스(Chaos)’ 혹은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원초적 물의 상태와 같습니다.

작업의 첫 단계인 ‘솔베(Solve)’, 즉 용해와 분리는 신이 빛과 어둠을 나누고,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을 분리했던 창조의 첫 나날들을 그대로 모방합니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용기 안에서 “땅을 불에서, 미묘한 것을 거친 것에서 분리”함으로써, 혼돈 속에 뒤섞여 있던 원소들에게 각자의 고유한 자리를 찾아줍니다. 이처럼 연금술사는 자신의 작은 용기 안에서, 신이 행했던 우주 창조의 드라마를 한 단계 한 단계 경건하게 재현해 나가는 작은 창조주가 되는 것입니다.


천체의 영향력: 별들의 리듬


‘위’와 ‘아래’의 상응 관계는 단순히 구조적인 유사성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힘의 흐름, 즉 천상의 세계가 지상의 세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는 동적인 관계를 포함합니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작업이 결코 고립된 행위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작업의 성공은, 자신의 소우주적 작업을 대우주의 거대한 리듬과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금술이 점성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이유입니다. 『헤르메스 비의』의 마지막 부분은, 위대한 작업의 각 단계가 언제 시작되고 완성되어야 하는지를 황도 12궁을 통과하는 태양의 운행에 맞추어 설명합니다. 작업의 시작인 니그레도(흑화)는 태양이 염소자리, 즉 ‘사투르누스(토성)’의 집에 들어서는 가장 어두운 겨울에 시작됩니다. 정화의 단계인 알베도(백화)는 태양이 ‘달(Luna)’의 집인 게자리에 이르렀을 때 그 완성을 보며, 최종적인 완성인 루베도(적화)는 태양이 자신의 왕궁인 사자자리에 들어서면서 시작됩니다.

이는 연금술사가 단지 화학적 변화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때(kairos)를 읽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우주적 사제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용광로(아래)를 하늘의 별들의 운행(위)과 일치시킴으로써, 천상의 강력한 힘을 자신의 작업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이처럼 ‘위’와 ‘아래’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감응(sympathy)’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입니다. 르네상스의 위대한 마법사 아그리파(Henry Cornelius Agrippa)가 그의 저서 『자연 마법 철학』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현자는 바로 이 상응의 원리를 이용하여 천상의 덕성(virtues)을 지상의 물질 속에 담아내는 기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작업의 목표: 하나임의 기적


그렇다면 이 모든 상응의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에메랄드 타블렛』은 그것이 바로 “하나의 실체의 기적을 행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의 실체’는 현자의 돌이며, ‘하나의 기적’은 그 돌이 행하는 변성(transmutation)의 작용입니다.


‘위’와 ‘아래’의 상응을 이해하고 그 둘을 조화시킨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늘(정신)과 땅(물질)의 이원성을 극복하고, 그 둘을 하나의 통일된 실체 안에서 결합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금술의 전 과정은, 하늘의 힘을 땅으로 내려오게 하고(영의 하강), 다시 땅의 정수를 하늘로 끌어올리는(물질의 승화) 끝없는 순환입니다. 이 순환의 과정을 통해 마침내 탄생하는 현자의 돌은, 더 이상 순수한 정신도 아니고 순수한 물질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의 힘과 땅의 힘을 모두 자신 안에 온전히 통합한 제3의 존재, 즉 ‘영광체(corpus glorificatum)’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의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땅에 속해 있으면서도 하늘의 힘을 지녔기에, 지상의 불완전한 금속(납)을 천상의 완전한 금속(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라는 두 번째 구절은 연금술사에게 가장 위대한 실천적 원리를 제공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실험실을 우주의 신전으로, 자신의 용광로를 창조의 제단으로 여기라는 가르침입니다. 연금술사는 이 원리를 통해, 대우주를 자신의 소우주 안에 재현하고, 하늘의 리듬에 맞춰 땅의 물질을 경작합니다. 그는 이 거룩한 작업을 통해, 분리되었던 하늘과 땅을 화해시키고, 정신과 물질의 신성한 결혼을 주관하며, 마침내 그 둘이 하나가 된 기적의 아이, 즉 현자의 돌을 탄생시키는 우주적 사제가 되는 것입니다.


2.3. 심리학적 해석: 내면세계와 외부 현실의 거울 관계


만일 연금술의 용광로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상징한다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위대한 작업은 바로 우리 각자의 삶 그 자체일 것입니다. 『에메랄드 타블렛』의 두 번째 구절은, 이 실존적 연금술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비밀, 즉 우리의 내면세계(위)와 우리가 경험하는 외부 현실(아래)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하나의 거대한 거울 관계에 있다는 진리를 선언합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를 삶의 수동적인 희생자에서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는 능동적인 연금술사로 변모시키는 가장 위대한 인식의 전환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세상이라는 거울을 통해 경험할 뿐입니다.


거울로서의 세계: 투사(投射)의 법칙


우리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독 특정 종류의 사람이나 사건이 반복적으로 삶에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어떤 이는 어딜 가나 자신을 배신하는 파트너를 만나고, 다른 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무시하는 상사 아래에서 고통받으며, 또 다른 이는 늘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휘말립니다. 우리는 이것을 불운이나 우연, 혹은 타인의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그러나 상응의 원리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외부 세계는 텅 빈 스크린과 같으며, 우리가 그 위에서 보는 드라마는 사실 우리 자신의 무의식이라는 영사기에서 투사(projection)된 필름이라는 것입니다.

칼 융(Carl G. Jung)은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측면, 즉 ‘그림자(Shadow)’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내 안의 기만성을 마주하기 두려운 사람은 세상이 사기꾼으로 가득 찼다고 불평하고, 내 안의 나약함을 인정하기 싫은 사람은 타인의 사소한 약점마저 경멸합니다. 즉, ‘아래’의 세상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부조리와 악은, 종종 ‘위’의 세계, 즉 우리 자신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어둠이 거울처럼 반사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연금술적 작업의 첫 단계는, 외부를 향한 비난의 손가락을 거두고,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외부 현실이 내 내면의 어떤 진실을 비추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성찰하는 것입니다.


정신적 우주: 생각하는 대로 존재한다


이 거울 관계는 단순히 부정적인 것의 투사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의 근본적인 믿음 체계와 의식 상태 자체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의 질(質)을 창조합니다. 『키발리온』의 첫 번째 원리인 ‘정신의 원리(The Principle of Mentalism)’는 “전체(THE ALL)는 마음이며, 우주는 정신적이다”라고 선언합니다. 대우주가 신성한 마음의 창조물이듯이, 우리의 개인적인 우주, 즉 우리의 삶 또한 우리 자신의 마음이 빚어내는 창조물입니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위험하고 적대적인 곳이라고 믿는 사람의 마음(위)은, 그의 외부 현실(아래) 속에서 그러한 믿음을 증명하는 사건들만을 선택적으로 인식하고 끌어당길 것입니다. 반면, 세상이 근본적으로 풍요롭고 의미 있는 곳이라고 믿는 사람의 마음은, 동일한 현실 속에서도 성장의 기회와 감사의 이유를 발견해낼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 상태는 현실을 수동적으로 인식하는 필터가 아니라, 현실을 능동적으로 구성하고 창조하는 진동의 중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키발리언』의 세 번째 원리인 ‘진동의 원리(The Principle of Vibration)’와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고유한 진동수를 가지며, 이 진동은 상응하는 진동수를 가진 현실을 자석처럼 끌어당깁니다.


하나임의 기적: 통합의 작업


그렇다면 이 모든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왜 “하나의 실체의 기적을 행하기 위함”입니까? 여기서 ‘하나의 기적’이란, 바로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여 온전한 자기(Self)를 실현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삶을 의식적으로 창조하는 능력을 되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지한 상태의 인간은, 자신의 내면(위)과 외부 현실(아래)이 분리되어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무의식적 투사가 만들어낸 드라마의 희생자라고 느끼며, 외부 세계를 바꾸기 위해 헛되이 애씁니다. 그러나 상응의 원리를 깨달은 연금술사는, 외부 현실이라는 거울을 닦는 대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닦기 시작합니다. 그는 더 이상 타인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며,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의 믿음 체계를 정화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와 ‘아래’의 힘을 의식적으로 통합하는 작업입니다. 자신의 내면세계(위)를 정화하고 조화롭게 만들면,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외부 현실(아래)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내면의 전쟁이 끝나면, 세상의 전쟁 또한 멈추기 시작합니다. 내면의 결핍감이 치유되면, 외부 세계는 풍요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자신의 내면 작업을 통해 외부의 현실을 변성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연금술사가 행하는 가장 위대한 ‘기적’입니다.


위에서 살펴 본, 이 두 번째 구절의 심리학적 해석은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자기 책임의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 영혼의 상태를 비추는 정직한 거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는 거울 속의 상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을 멈추고, 조용히 우리 자신을, 즉 상의 원본을 바꾸는 내면의 작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이 위대한 진리를 깨닫고 실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이라는 연금술적 용광로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고통과 혼돈이라는 납을 지혜와 조화라는 황금으로 변성시키는 기적을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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