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로부터, 하나의 명상에 의해 비롯되었듯이, 모든 것은 이 하나의 실체로부터 파생되어 나왔으니, 그 방식은 적응이다.”
(Et sicut omnes res fuerunt ab uno, meditatione unius, sic omnes res natae fuerunt ab hac una re, adaptatione.)
3.1. 우주론적 해석: 신성한 마음의 명상과 유출(Emanation)의 철학
『에메랄드 타블렛』의 세 번째 구절은, 앞서 선언된 ‘하나(the One)’와 ‘여럿(the Many)’의 관계를 더욱 구체화하며, 우주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작동 원리를 드러냅니다. 이 구절은 서양 정신사를 관통하는 두 가지 위대한 창조론, 즉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와 ‘유출(emanation)’ 중에서 명확하게 후자의 입장을 취합니다. 이 세계는 신이 자신과 다른 어떤 것을 외부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신성한 ‘하나’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결과물입니다.
하나의 명상: 정신적 우주
이 구절의 가장 심오한 부분은 바로 창조의 동력이 “하나의 명상(meditatione unius)”이라고 말하는 지점입니다. 이는 우주의 창조가 어떤 물리적인 노동이나 폭력적인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지극히 고요하고도 정신적인 사건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최고의 실재인 ‘하나’, 즉 신성한 마음(Nous)은 자기 자신을 관조하고 명상합니다. 그리고 이 자기-성찰의 행위 자체가 곧 창조의 행위가 됩니다. 신이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생각할 때, 그 생각의 내용들이 곧바로 우주라는 실체로 현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키발리온』이 제시하는 첫 번째 원리, 즉 ‘정신의 원리(The Principle of Mentalism)’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전체(THE ALL)는 마음이며, 우주는 정신적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 우주는 궁극적으로 신성한 마음의 정신적 투사물(mental projection)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무와 별, 그리고 우리 자신조차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이처럼 헤르메스주의는 세계의 근원을 물질이 아닌 의식에 둠으로써, 극단적인 유물론을 거부하고, 우주 전체를 살아있고 지성을 갖춘 신성한 실체로 바라보는 길을 엽니다.
유출의 철학: 넘쳐흐르는 충만함
‘하나’가 명상을 통해 자신으로부터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은 ‘유출(emana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더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Plotinus)는, 창조를 마치 샘에서 물이 넘쳐흐르거나 태양에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 비유했습니다. 샘은 물을 주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그 충만함 때문에 저절로 흘러넘치며, 태양 또한 빛을 비추려 애쓰지 않아도 그 본성상 빛을 발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성한 ‘하나’는 너무나 완전하고 충만한 존재이기에, 그의 선함과 존재는 필연적으로 그 자신으로부터 흘러넘쳐 더 낮은 차원의 실재들을 낳게 됩니다. 『에메랄드 타블렛』은 “모든 것은 이 하나의 실체로부터 파생되어 나왔다(natae fuerunt ab hac una re)”고 말하며, 이 유출의 원리를 명확히 합니다. 이는 신이 어떤 결핍을 느끼거나 외부적인 목적을 가지고 세상을 창조했다는 관념을 배제합니다. 창조는 필요에 의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필연적인 넘쳐흐름이자, 충만함의 아낌없는 선물입니다.
적응(Adaptation)의 비밀: 원형과 현현
그렇다면 이 유출의 과정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루어집니까? 타블렛은 그 방식이 바로 ‘적응(adaptatione)’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유출된 존재가 어떻게 원본의 완전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형태를 취하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적응’이란, 하나의 동일한 원리가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에 맞추어 자신을 변형시키고 표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물’이라는 하나의 실체는 하늘에서는 구름으로, 땅에서는 강으로, 그리고 추운 곳에서는 얼음으로 그 모습을 ‘적응’시켜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신성한 ‘하나’의 통일된 본질은 아이온(영원)의 세계, 코스모스(천상)의 세계, 그리고 생성(지상)의 세계라는 각기 다른 차원의 조건에 맞추어 자신을 ‘적응’시켜 드러냅니다. 천상에서는 완전한 원형으로, 지상에서는 불완전한 복사본으로 말입니다.
이 ‘적응’의 원리는 『키발리온』의 일곱 가지 원리, 특히 ‘상응의 원리’와 ‘극성의 원리’, 그리고 ‘리듬의 원리’가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열쇠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기에 서로 상응하지만(상응의 원리), 서로 다른 진동수와 극성을 가짐으로써(극성의 원리), 그리고 리듬감 있는 순환을 통해(리듬의 원리) 다채로운 현상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에메랄드 타블렛』의 세 번째 구절은 우리에게 창조의 본질이 신성한 마음의 내적 활동임을 가르쳐줍니다. 이 세계는 ‘하나’라는 위대한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을 명상하며 빚어낸, 살아있는 정신적 예술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술 작품의 일부이자, 동시에 그 예술가의 마음을 나누어 가진 작은 창조주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이 세계를 차갑고 의미 없는 물질의 집합으로 보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사물 속에서 ‘하나’의 생각을 읽어내고, 모든 현상 속에서 그의 명상의 흔적을 발견하며, 마침내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신성한 창조의 드라마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3.2. 연금술적 해석: 제1질료(Prima Materia)의 통일성과 분화
우주 창조의 거시적인 원리를 이해한 구도자는 이제 자신의 용광로, 즉 소우주 안에서 그 창조를 재현하는 구체적인 작업으로 들어섭니다. 이때 연금술사가 마주하는 가장 첫 번째이자 가장 어려운 과업은 바로 ‘제1질료(Prima Materia)’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찾아내는 것입니다. 『에메랄드 타블렛』의 세 번째 구절은, 이 제1질료의 본질과, 그것이 어떻게 만물로 변성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합니다. 이 구절은 연금술의 모든 작업이 궁극적으로 ‘하나’에서 시작하여 ‘여럿’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완성된 하나’로 귀결되는 변증법적 과정임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작업 지침서입니다.
하나의 질료: 프리마 마테리아
연금술의 역사는 제1질료를 찾기 위한 수많은 실패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금에서, 어떤 이들은 납에서, 또 다른 이들은 식물이나 동물의 피에서 그 비밀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철학자들은 한결같이, 위대한 작업의 주체가 “오직 하나뿐”이라고 증언합니다. 『에메랄드 타블렛』은 이 ‘하나의 실체(una re)’가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선언하며, 구도자로 하여금 헛된 길에서 방황하지 말고 오직 이 하나의 재료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제1질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통일성’과 ‘잠재성’입니다. 연금술사들은 그것을 종종 ‘카오스(Chaos)’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창조 이전의 원초적 상태처럼, 모든 원소와 힘들이 분화되지 않은 채 하나로 뒤섞여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상태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형태도 없는 무질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앞으로 생성될 모든 것—금과 은, 왕과 여왕, 독수리와 사자—의 가능성이 씨앗의 형태로 잠들어 있습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현대 생물학의 ‘줄기세포(stem cell)’라는 놀라운 비유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줄기세포는 분화되지 않은 단 하나의 세포이지만, 적절한 신호와 환경이 주어지면 신경 세포, 근육 세포, 피부 세포 등 우리 몸의 모든 다른 세포로 변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금술의 제1질료는 바로 이 줄기세포와 같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근원적인 줄기세포로서, 그 자체로는 비천하고 형태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우주 만물을 창조할 수 있는 모든 정보와 힘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연금술사의 기술이란, 바로 이 우주적 줄기세포에 올바른 신호(비밀의 불)를 보내어,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완벽한 존재(현자의 돌)로 분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분화의 과정: ‘적응(Adaptation)’의 비밀
그렇다면 이 ‘하나의 실체’는 어떻게 수많은 다른 존재들로 변화할 수 있습니까? 타블렛은 그 방식이 바로 ‘적응(adaptatione)’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위대한 작업의 핵심적인 과정인 ‘솔베(Solve)’, 즉 분리와 정화의 단계를 의미합니다. 연금술사는 하나의 통일된 제1질료를 취하여, 그것을 자신의 용광로 안에서 ‘불타는 영(fiery Spirit)’의 힘으로 분해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이전에는 혼돈스럽게 뒤섞여 있던 내재적 원리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 분화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훌륭한 비유는 ‘백색광과 프리즘’입니다. 태양의 백색광은 우리 눈에 단일한 빛으로 보이지만, 프리즘을 통과하는 순간,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라는 일곱 가지 무지개 색으로 분화됩니다. 프리즘은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백색광 안에 이미 잠재되어 있던 색들을 분리하여 드러내 보여준 것뿐입니다.
연금술의 제1질료 또한 이 백색광과 같습니다. 그리고 연금술사의 기술은 프리즘과 같습니다. 그는 ‘적응’이라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통일된 질료 안에 잠재되어 있던 세 가지 원리(유황, 수은, 소금)와 네 가지 원소(불, 물, 공기, 흙)를 분리해냅니다. 『헤르메스 비의』의 저자가 “돌의 생성은 세계 창조의 패턴을 따라 이루어진다”고 말했듯이, 이 과정은 태초에 신이 빛과 어둠을 나누고, 하늘과 땅을 분리했던 창조의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연금술사는 먼저 ‘하나’를 ‘여럿’으로 분화시키는 분석적이고 해체적인 작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분리의 기술 없이는, 결코 더 높은 차원의 합일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통일성에서 다양성으로, 그리고 더 높은 통일성으로
결론적으로, 세 번째 구절은 우리에게 위대한 작업의 전체적인 리듬과 구조를 보여줍니다. 그 여정은 언제나 ‘하나(Unity)’에서 시작합니다. 구도자는 먼저 이 세상의 모든 다양성 이면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근원적 실체, 즉 제1질료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 다음, 그는 ‘적응’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 통일성을 ‘다양성(Multiplicity)’으로 펼쳐내야 합니다. 그는 제1질료 안에 잠재된 수많은 가능성들을 분리하고, 각각의 원리들을 정화하며, 그 고유한 본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이 정화된 다양성을 다시 하나의 용기 안에서 재결합시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높고 완전한 차원의 ‘통일성(perfected Unity)’, 즉 현자의 돌을 창조합니다.
이처럼 『에메랄드 타블렛』의 세 번째 구절은, 하나에서 여럿으로, 그리고 다시 여럿에서 새로운 하나로 나아가는 변증법적 순환이야말로, 우주와 영혼 모두를 관통하는 창조의 근본적인 법칙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3.3. 심리학적 해석: ‘자기(Self)’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심리 현상
우리의 내면세계는 언뜻 보기에 수많은 생각과 감정, 기억과 욕망들이 서로 다투는 혼란스러운 전쟁터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왜 이렇게 모순적인가?”라고 자문하며, 자기 안의 이질적인 목소리들 사이에서 길을 잃곤 합니다. 그러나 『에메랄드 타블렛』의 세 번째 구절은 우리에게 놀라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 모든 다채롭고 심지어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심리 현상들이, 사실은 “하나로부터, 하나의 명상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의 언어로 이 ‘하나(the One)’를 번역한다면, 그것은 바로 칼 융(Carl G. Jung)이 ‘자기(the Self)’라고 불렀던, 우리 정신 전체의 중심이자 근원적인 원형입니다.
하나의 명상: ‘자기’의 내적 활동
‘자기’는 우리가 흔히 ‘나’라고 생각하는 의식적인 ‘자아(Ego)’와는 다릅니다. 자아는 정신의 중심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포함하는 우리 정신의 총체성이며, 마치 태양이 행성들을 자신 주위로 돌게 하듯이, 자아를 포함한 모든 심리적 기능들을 조직하고 이끄는 보이지 않는 중심입니다.
타블렛이 말하는 “하나의 명상”은 바로 이 ‘자기’의 내적 활동을 상징하는 완벽한 은유입니다. 우리의 의식적인 자아가 잠든 밤, 우리는 꿈을 꿉니다. 이 꿈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경이로운 창조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자아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표현하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자기’의 활동입니다.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 겪었던 경험들, 억압했던 감정들, 그리고 아직 인식하지 못한 가능성들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자기’는 매일 밤 우리를 위한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심리 현상은,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자기’라는 하나의 중심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입니다.
적응(Adaptation)의 비밀: 원형과 콤플렉스
그렇다면 이 하나의 ‘자기’는 어떻게 수많은 다른 심리 현상들을 낳습니까? 타블렛은 그 방식이 바로 ‘적응(adaptatione)’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기’ 안에 잠재된 원형(archetype)들이 우리의 개인적인 삶의 경험과 만나, 구체적인 심리적 특성, 즉 ‘콤플렉스(complex)’를 형성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어머니 원형(Mother Archetype)’이라는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정신에는 ‘어머니’라는 보편적인 원형, 즉 양육하고, 보살피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근원적인 이미지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이 원형은 각 개인의 삶 속에서 실제 ‘어머니’와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적응’하여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따뜻하고 지지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세상과 타인을 신뢰하고, 자신 또한 타인을 돌보는 능력이 발달한 ‘긍정적인 어머니 콤플렉스’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차갑고 거부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세상에 대한 깊은 불신과 애정 결핍에 시달리는 ‘부정적인 어머니 콤플렉스’를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너무 과보호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콤플렉스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성격, 재능, 상처, 그리고 우리가 반복적으로 겪는 삶의 패턴들은 모두, 보편적인 원형(하나)이 우리의 개인사라는 토양 위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적응’하여 자라난 나무들과 같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는 결코 무의미하거나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자기’가 우리를 온전한 존재로 이끌기 위해 보내는 신호이자,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들입니다.
심리적 연금술: 분리하고, 다시 통합하라
이러한 이해는 우리에게 심리적 치유와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길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연금술의 과정, 즉 ‘솔베 에트 코아굴라(Solve et Coagula)’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솔베(Solve)’, 즉 분리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문제적인 행동 패턴(콤플렉스)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을 멈추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나는 분노 그 자체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내 안에서 분노라는 강렬한 에너지가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문제와 나 자신을 분리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문제의 뿌리, 즉 그것이 어떤 원형의 왜곡된 표현인지를 탐구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확보하게 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코아굴라(Coagula)’, 즉 재통합입니다. 우리는 콤플렉스를 유발한 상처 입은 내면의 부분을 비난하거나 제거하는 대신, 그것을 의식적으로 끌어안고 그 안에 담긴 긍정적인 잠재력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거부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타인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사람은, 그 상처 이면에 사실은 누구보다 깊은 사랑과 연결을 갈망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그 억압되었던 사랑의 능력을 자신의 삶 속에서 새롭게 표현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부정적인 콤플렉스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는 폭군이 아니라, 우리를 더 깊고 온전한 존재로 만드는 지혜의 원천으로 변모합니다.
이렇게 볼 때, 『에메랄드 타블렛』의 세 번째 구절은 우리에게 가장 희망적인 심리학적 진실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세계가 아무리 혼란스럽고 모순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우리를 온전함으로 이끌려는 단 하나의 중심, 즉 ‘자기(Self)’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업은, 이 내면의 안내자인 ‘하나의 명상’에 귀를 기울이고, 삶의 모든 경험이라는 ‘적응’의 과정을 통해, 마침내 우리 자신의 모든 부분을 사랑 안에서 통합하여,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