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구절들이 ‘하나의 실체’가 어떻게 신성한 부모인 태양과 달, 그리고 우주적 조력자인 바람과 땅의 보살핌 속에서 잉태되고 양육되는지에 대한 거시적이고 신화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면, 다섯 번째 구절은 갑자기 그 광대한 시선을 우리 발밑의 한 점으로, 바로 ‘여기(hic)’라는 가장 구체적인 현실로 되돌려 놓습니다. 이 구절은 연금술의 모든 추상적 이론이 어떻게 구체적인 실천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작업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교량이자 실천적 선언입니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신성의 ‘현존(presence)’에 대한 비밀과 그 힘의 ‘현현(manifestation)’에 대한 비밀이라는, 위대한 작업의 두 가지 핵심 열쇠가 담겨 있습니다.
현존의 비밀: 모든 것은 ‘여기(hic)’에 있다
“온 세상 모든 완전함의 아버지는 여기에 있다.” 이 선언은 단순하지만, 서양 정신사를 지배해 온 많은 종교적, 철학적 관념을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텔레스무스(Telesmus)’란 완성, 완전, 혹은 마법적 성취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즉, 헤르메스는 모든 창조와 완성의 궁극적인 근원이자 아버지가, 저 멀리 떨어진 천상의 영역이나, 우리가 도달해야 할 아득한 미래, 혹은 특별하고 신성한 장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이 지점에 현존하고 있음을 단언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성함을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이 세계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인간의 오랜 경향에 대한 강력한 도전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신을 저 높은 하늘에 계신 분으로, 구원을 죽음 이후에나 도달할 수 있는 피안(彼岸)의 세계로 설정합니다. 우리는 종종 “신은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물으며, 그 답을 외부에서 찾으려 헤맵니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그 모든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신은 ‘어디에’ 있는 분이 아니라, 그냥 ‘여기’에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현존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의 도토리 씨앗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하고 장엄한 참나무의 모든 가능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미래의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나무의 복잡한 구조, 수천 개의 잎사귀, 단단한 줄기의 정보는 이미 그 작은 도토리 씨앗 안에, 바로 ‘여기’에 완벽한 잠재력으로 현존하고 있습니다. 도토리는 참나무의 ‘모든 완전함의 아버지’인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미켈란젤로가 조각할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 안에는 이미 다비드상의 모든 가능성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의 역할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기’에 존재하는 완전함을 가리고 있는 불필요한 돌들을 쪼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금술의 제1질료(Prima Materia)가 지닌 역설의 본질입니다. 왜 연금술사들은 그토록 중요한 재료가 “어디에나 있지만 알려지지 않았고”, “값싸면서도 귀하다”고 말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바로 이 일상의 현실, 우리가 경멸하는 나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 그리고 우리가 무시하는 길가의 흙먼지 안에, 바로 ‘온 세상 모든 완전함의 아버지’가 숨 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헤르메스주의의 내재론(immanentism)은 『키발리온』이 제시하는 첫 번째 원리, 즉 ‘정신의 원리(The Principle of Mentalism)’를 통해 더욱 깊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전체(THE ALL)는 마음이며, 우주는 정신적이다.” 만일 이 우주 전체가 신성한 마음의 정신적 창조물이라면, 창조주인 마음은 결코 자신의 창조물인 우주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자가 자신의 생각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듯이, 신은 자신의 정신적 우주 안에 필연적으로 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신을 찾기 위한 순례는 외부를 향한 여정이 아니라, 바로 ‘여기’, 내 자신의 의식과 내가 마주한 현실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한 내면의 탐험이 되어야 합니다.
현현의 비밀: 힘은 땅 위에서 온전해진다
신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혔다면, 구절의 두 번째 부분은 그 신성한 힘을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현실 속에서 작용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열쇠를 제공합니다. “그것의 힘은 땅 위에서 온전하다(Vis eius integra est, si versa fuerit in terram).”
여기서 ‘그것의 힘(Vis)’이란, 제1질료 안에 잠재되어 있는 원초적이고, 역동적이며,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휘발성의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의 힘과도 같아서, 그 자체로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지만, 구체적인 형태로 ‘고정(fixation)’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 있는 일도 할 수 없는 순수한 가능성입니다. 건축가의 머릿속에 있는 완벽한 건물의 청사진, 작곡가의 영혼 속에서 울려 퍼지는 장엄한 교향곡, 혹은 명상 속에서 얻은 심오한 영적 깨달음이 바로 이 ‘힘(Vis)’의 상태입니다.
이 힘이 어떻게 “온전”해질 수 있습니까? 타블렛은 그 유일한 조건이 바로 그것이 “땅으로 전환될 때(if it be converted into earth)”라고 말합니다. 연금술에서 ‘땅’은 단순히 흙이라는 원소를 넘어, 고정성, 안정성, 구체성, 그리고 물질적 현실 그 자체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하늘의 미묘하고 휘발성인 영적 에너지(독수리)가, 반드시 땅이라는 고정된 육체와 결합하여 구체적인 형태로 현현될 때에만, 비로소 그 온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연금술의 대원칙, ‘코아굴라(Coagula)’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건축가의 청사진(힘)은 벽돌과 시멘트(땅)를 통해 실제 건물로 지어질 때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작곡가의 교향곡(힘)은 오케스트라의 악기(땅)를 통해 실제 소리로 연주될 때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마찬가지로, 구도자가 얻은 영적 깨달음(힘)은, 그의 구체적인 일상의 행동, 습관, 그리고 관계(땅)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로 나타날 때 비로소 온전한 것이 됩니다. 아무리 숭고한 영적 진리를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그의 삶이 여전히 탐욕과 분노,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의 힘은 아직 ‘땅으로 전환’되지 못한 공허한 관념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키발리온』의 ‘극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Polarity)’와 ‘리듬의 원리(The Principle of Rhythm)’를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영(Spirit)과 물질(Matter)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의 양 극단일 뿐이며, 위대한 작업이란 이 양 극단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은 추처럼 앞뒤로 움직이는 리듬을 가지고 있기에, 순수한 영적 상태(하늘)에만 머무르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그 반대 극인 물질적 혼돈(땅)으로의 반동을 불러옵니다. 진정한 현자는 이 리듬을 중화시켜, 하늘과 땅의 중간 지점, 즉 영적인 것을 물질 속에, 물질적인 것을 영 속에 구현하는 균형의 상태에 머무릅니다.
이처럼 다섯 번째 구절은 위대한 작업의 전체 과정을 하나의 완벽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먼저, 모든 완성의 가능성이 바로 ‘여기’, 우리의 발밑에 있는 비천한 현실 속에 내재해 있음을 깨달으십시오(신성의 내재). 그리고 그 깨달음이라는 잠재적 ‘힘’을, 당신의 구체적인 삶이라는 ‘땅’ 위에서 온전히 실현하고 구현하십시오(신성의 현현). 이 두 가지 비밀을 이해하고 실천할 때, 우리는 더 이상 구원을 찾아 하늘을 방황하는 유배자가 아니라, 하늘의 힘을 땅 위에서 실현하는 창조의 대리인이자, 진정한 의미의 연금술사가 될 것입니다.
5.2. 연금술적 해석: ‘고정(Fixation)’의 비밀과 잠재력의 현실화
만일 다섯 번째 구절의 첫 부분이 ‘어디에서’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장소의 비밀을 밝혔다면, 그 두 번째 부분은 ‘어떻게’ 그 작업을 완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정의 비밀을 드러냅니다. “그것의 힘은 땅 위에서 온전하다”는 이 짧은 선언은, 연금술의 ‘위대한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술적 과제, 즉 ‘고정(Fixation)’의 신비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연금술사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휘발성의 힘을, 눈에 보이는 안정된 실체로 붙들어 매어, 마침내 잠재력을 현실적인 능력으로 변성시키는지를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작업 지침입니다.
‘그것의 힘(Vis eius)’: 잠재된 하늘의 권능
먼저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그것의 힘(Vis)’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라틴어 ‘비스(Vis)’는 단순한 물리적 힘을 넘어, 생명력, 덕성(virtue), 본질적 권능을 의미하는 매우 다층적인 단어입니다. 연금술의 맥락에서 이것은 제1질료 안에 잠재된, 순수하고, 미묘하며, 휘발성인 영적 에너지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타블렛의 네 번째 구절에서 “바람이 자신의 배 속에 품었던” 바로 그 ‘영(Spiritus)’이며, 연금술의 우의화 속에서는 하늘을 나는 ‘독수리(Eagle)’입니다.
이 힘은 그 자체로 “온전(integra)”, 즉 완전하고 흠이 없습니다. 그것은 신성한 근원으로부터 직접 흘러나온 것이기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힘은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으니, 바로 ‘휘발성’입니다. 그것은 붙들어 매어지지 않는 한, 쉽게 흩어지고 사라져 버립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증기(steam)’라는 구체적인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을 끓이면 강력한 증기가 발생합니다. 이 증기는 기차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힘(Vis)을 잠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 증기를 실린더와 피스톤이라는 견고한 용기 안에 가두지 않는다면, 그 힘은 그저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릴 뿐, 아무런 의미 있는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연금술사가 다루는 제1질료의 영적인 힘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순수하고 강력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변성도 일으키지 못하는 순수한 잠재력일 뿐입니다. 연금술의 초기 단계에서 물질을 가열하면, 바로 이 미묘한 영이 증기처럼 용기 위쪽으로 피어오릅니다. 초보 연금술사는 이 귀한 영을 붙잡지 못하고 날려 보내는 실수를 반복하며, 결국 생명력 없는 죽은 찌꺼기만을 손에 쥐게 됩니다. 따라서 위대한 작업의 핵심 기술은, 이 하늘로 날아가려는 독수리를 어떻게 다시 땅으로 내려오게 하여, 그 힘을 잃지 않고 안정된 형태로 보존하는가에 있습니다.
‘땅으로의 전환’: 고정(Fixation)의 기술
타블렛은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 힘은 오직 “땅으로 전환될 때”에만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연금술에서 ‘땅(Terra)’은 단순히 흙이라는 원소가 아니라, 고정성, 안정성, 그리고 구체적인 육체를 상징하는 근본 원리입니다. ‘땅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하늘의 휘발성인 영(독수리)을 땅의 고정성인 육체(사자)와 결합시켜, 더 이상 날아가지 않는 하나의 안정된 실체를 만드는 것, 즉 ‘고정’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연금술의 대원칙인 ‘솔베 에트 코아굴라(Solve et Coagula)’, 즉 “녹이고, 다시 굳혀라”의 두 번째 단계인 ‘코아굴라’의 핵심입니다. 앞선 여섯 번째 구절에서 “미묘한 것을 거친 것에서 분리”하는 ‘솔베’의 과정이 끝난 후, 연금술사는 이제 그 정화된 미묘한 영을, 마찬가지로 정화된 거친 육체 위에 다시 되돌려 놓아 영원히 결합시켜야 합니다. 이 과정은 일곱 번째 구절에서 “그것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 위와 아래의 힘을 받는다”는 순환의 운동으로 묘사됩니다. 증류기 속에서, 증발하여 위로 올라갔던 영은 용기의 차가운 벽을 만나 다시 액체가 되어 아래로 떨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이 끊임없는 순환을 통해, 영은 점차 자신의 휘발성을 잃고, 육체는 영의 미묘한 본성을 받아들여, 마침내 둘은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이 ‘고정’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예는 ‘향수(perfume)’의 제작 과정입니다. 꽃의 진정한 본질은 그 향기(Vis)이지만, 이 향기는 극도로 휘발성이어서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숙련된 조향사는 이 섬세한 향기 분자를 붙잡기 위해, 알코올이나 비휘발성 오일과 같은 ‘고정제(fixative)’, 즉 연금술의 ‘땅’을 사용합니다. 꽃의 영혼인 향기는 이 고정제라는 육체와 결합함으로써 비로소 그 향기를 오랫동안 보존하고 발산할 수 있는 안정된 ‘향수’라는 새로운 실체가 됩니다.
온전함의 실현: 잠재력에서 현실로
『에메랄드 타블렛』의 다섯 번째 구절은 위대한 작업이 어떻게 잠재력을 현실적인 능력으로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신성한 힘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고 온전하지만, 그 힘이 이 지상 세계에서 구체적인 ‘기적’을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땅’이라는 현실의 토대 위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하늘의 지혜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 속에서, 영적인 사랑은 타인에 대한 실제적인 행동 속에서, 그리고 예술적 영감은 물감과 캔버스라는 물질 속에서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연금술사는 이 원리를 이해하기에, 결코 땅을 경멸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숭배하는 동시에, 땅을 지키는 사자의 힘을 존중합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이 둘을 영원히 화해시켜, 하늘의 지혜와 땅의 힘을 모두 지닌, 날개 달린 사자, 즉 ‘그리핀(Griffin)’과도 같은 신화적인 존재를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의 힘을 땅 위에 온전히 구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완전함의 아버지가 ‘여기’에 현존함을 증명하고, 그 잠재된 힘을 온전한 현실로 만드는, 위대한 연금술사의 진정한 과업입니다.
5.3. 심리학적 해석: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온전함의 체험
만일 연금술의 위대한 작업이 우리 내면의 납을 황금으로 바꾸는 영혼의 변성 과정이라면, 다섯 번째 구절은 그 모든 변화가 일어나는 유일한 시공간, 즉 ‘지금, 여기(hic et nunc)’라는 현재의 순간으로 우리의 흩어진 의식을 강력하게 불러 모읍니다.
이 구절은 현대인이 겪는 가장 깊은 실존적 고통, 즉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현재를 끊임없이 놓쳐버리는 ‘영혼의 추방 상태’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치유의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헤르메스는 우리에게, 우리가 찾아 헤매는 모든 완전함과 힘이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여기’에 있으며, 그 힘은 오직 ‘땅’이라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만 온전해진다고 선언합니다.
완전함의 장소: ‘여기(hic)’
“온 세상 모든 완전함의 아버지는 여기에 있다.” 이 선언의 심리학적 함의는 지대합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의 황금시대가 아득한 과거의 낙원에 있거나, 성취해야 할 미래의 어느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통찰입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온전함, 평화, 그리고 의미의 근원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바로 이 지점 ‘안에’ 이미 완전한 잠재력으로 현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의식은 대부분 과거나 미래라는 두 개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의 실수에 대한 후회와 원망 속에서 현재의 에너지를 소모하거나, 내일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과 기대로 오늘을 저당 잡힙니다. 우리는 “내가 그 시험에만 합격했더라면”, “내가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과거를 곱씹거나, “내가 승진만 한다면”, “내가 은퇴만 한다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미래를 향한 조건부 행복을 설정합니다. 이처럼 과거와 미래라는 감옥에 갇힌 의식에게 ‘지금, 여기’는 단지 스쳐 지나가는 무의미한 통로일 뿐입니다.
『에메랄드 타블렛』은 이러한 ‘심리적 유배 상태’야말로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완전함의 아버지’는 바로 여기에 있는데, 우리는 다른 곳에서 그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융 심리학의 언어로, 이는 우리 정신의 전체성을 주관하는 ‘자기(Self)’ 원형이, 미래에 성취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경험 전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현존하는 실체임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영적 작업은, 미래의 완벽한 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불완전한 나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고 그 안에서 신성한 ‘자기’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동양의 선(禪) 사상이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즉 ‘평범한 일상의 마음이 곧 깨달음의 길’이라고 가르친 것과 같이, 헤르메스주의 또한 가장 위대한 신비가 가장 평범한 ‘지금, 여기’에 숨겨져 있음을 역설합니다.
힘의 육화(肉化): ‘땅으로 전환될 때’
‘여기’에 모든 완전함이 잠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면, 다음 과제는 그 잠재된 힘(Vis)을 어떻게 현실적인 능력으로 바꾸는가 입니다. 타블렛은 그 힘이 오직 “땅으로 전환될 때”에만 온전해진다고 말합니다. 이는 심리적으로, 우리의 영적 통찰이나 깨달음이 구체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육화(embodiment)’되지 않는 한, 그것은 아무런 힘도 없는 공허한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영적 구도자들이 이 지점에서 실패합니다. 그들은 명상이나 수련을 통해 황홀한 신비 체험이나 깊은 평화(Vis)를 맛보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예전의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인 행동 패턴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그들의 하늘(영적 체험)과 땅(일상의 삶)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힘은 ‘땅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다시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 것입니다.
‘땅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추상적인 깨달음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명상을 통해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는 자비의 통찰(Vis)을 얻었다면, 그 힘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직장 동료에게 친절한 말을 건네고, 그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구체적인 행동(땅)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힘이 됩니다. 위대한 예술적 영감(Vis)을 얻었다면, 그것을 게으름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혹은 원고지 위에 단어로 옮기는 고된 노동(땅)을 통해서만 불멸의 예술 작품으로 ‘고정’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영혼의 독수리(휘발성의 영)와 사자(고정된 육체)의 통합 과정입니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위대한 진리를 본 독수리는, 반드시 땅으로 내려와 사자의 굳건한 힘과 결합해야만 합니다. 독수리의 비전은 사자의 실천력을 통해 현실이 되고, 사자의 힘은 독수리의 인도를 통해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됩니다.
이처럼 다섯 번째 구절은 심리적 연금술의 가장 위대한 비밀, 즉 ‘현존의 실천’을 가르칩니다. 진정한 현자의 돌은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의 평범한 순간을, 나의 온전한 의식과 구체적인 행동으로 살아낼 때 연단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유령을 떨쳐내고, 우리의 의식을 현재라는 대지 위에 단단히 뿌리내릴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모든 완전함의 힘은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의 삶 자체를 황금으로 변성시키는 기적을 행하기 시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