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소년의 시간>을 보고
한 친구가 결혼 전 사귀었던 남자의 근황을 우연히 인별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사진 속에 그 남자는 멋진 곳에 서 있었고, 환하게 웃고 있었으며, 세련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날 내 친구는 옛 남자친구를 살펴보느라 동이 틀 때까지 잠을 못 잤다고 했다. 하필 그날은 친구가 남편과 대판 싸운 날이었다. 누구의 잘못으로 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족을 토로하며 지금 남편이 아니라 인별그램 속 저 남자와 결혼을 했더라면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 거라며 한탄을 해 댔다. 새로운 아침이 밝았는데도 아직 SNS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내 친구에게 '이제 그 남자 얘기는 그만하고 정신을 차려라. 그 사람 SNS 이제 그만 봐 친구야..'라고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나는 SNS에 게시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가끔 들어가서 이것저것을 본다. 지금 내 알고리즘은 '아기'이다. 내 아이들이 다 커서 그런가 갓난아기부터 5~6살의 아기들이 말하고 움직이는 영상들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며칠 전에는 초등학생, 중학생 내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우리 집 거실 소파에 남편과 앉아서 전 세계에 있는 남의 집 아기가 나오는 영상을 보며 미소를 지어대기도 했다.
"맞아. 우리 아기도 저랬었어.. 아이고 너무 이쁘다. 어떻게 해~~ 아고아고 저것 좀 봐" 하면서 말이다.
버스 속에서도, 지하철 속에서도, 길에서도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로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며 수많은 영상과 사진을 쳐다본다. 아침 산책 겸 나간 동네 공원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틀어 놓은 유튜브 소리가 공원에 사는 새소리보다도 크게 들릴 때가 있다.
자 한번 주변을 관찰해 보자.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어도 아무도 안 건너는 경우가 있다. 거기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신호등이 아니라 휴대폰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기가 탄 유모차를 곁에 둔 애기 엄마는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인별그램을 보고 있다. 바로 옆 유모차 속 아기는 유모차 손잡이에 마치 벽걸이 TV처럼 달려 있는 휴대폰 동영상을 보고 있다.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사실은 그런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다) 나서서 비난하기 어려울 만큼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꼰대는 후지다'는 이 시대의 정신, 그리고 영상 재생 횟수와 구독자 수가 큰 한방을 가져다주게 되면서 많은 사람이 달려들어 무분별하게 쏟아내고 있는 콘텐츠 속에서 참으로 내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하는 고민이 날로 깊어만 간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국의 시리즈물 <소년의 시간>의 원제는 <Aadolescence>, 우리 말로는 <청소년기>이다. 신체적 사회적 정서적으로 성인이 되어가는 발달 시기를 칭하는 것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는 그 질품노도의 순간들 말이다.
이 시리즈는 연출 부문에서도 뛰어나지만, 청소년기 아이들이 어른들이 볼 수 없는 온라인상에서 뭘 하고 노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이미와 친구들은 SNS 놀이터에서 누군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누군가가 시작한 그 놀이, 즉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고, 성(性)적인 비하와 자극을 서슴지 않고, 혐오의 말을 쏟아내는 놀이에 빠져 있다. 그곳에서는 누군가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옳은 일인지 아닌지 따위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놀이에 껴야 학교에서, 또래들의 세계에서 인정받고 내가 괜찮은 남자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사람들의 일 만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상의 성범죄와 도박, 따돌림과 폭력의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 아닌가. 중학생인 우리 집 아이 친구 중 대부분이 인별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있다. 학교에서는 거진 일주일에 한 번씩 사이버 폭력, 학교 폭력 예방과 주의에 대한 통신문이 날아온다. 또 많은 아이들이 PC방에서 가서 온라인 게임을 즐긴다. 어떤 아이는 주말에 10시간이 넘게 휴대폰 게임과 유튜브를 하고 새벽 2~3시까지 총 쏘는 게임을 한다고 했다.
유튜브는 또 어떠한가. 연령 제한을 걸어두지 않으면 예측 못한 공격을 당하는 것처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문구와 이미지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내가 너무 구닥다리에 고지식한 엄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할 수 있는 한 내 아이를 보호하고 싶다. 아이를 믿으라거나 아이에게 맡기라고 하는 건 무책임한 짓이다. 어른들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저 세계를, 내 팔자 한탄을 배가 시키며 마치 내가 잘 못 살아온 것처럼 느끼게 하는 저 세계를, 예쁘고 멋있게 찍은 사진 속의 생판 모르는 남들을 보며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저 세계 속에 어떻게 내 자식을, 내 자식의 친구들을 둘 수 있단 말인가.
마치 아이들에게 칼을 쥐어 주고 너희들끼리 재미있게 놀라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위험할지 알면서, 의도하지 않더라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걸 알면서, 저 칼을 뺏어야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너희만의 세계를 존중해 줄게. 나는 쿨한 어른이거든" 이라거나, "너희들의 나이에는 약간의 혼란이 있을 수 있어 다 이해해"라든가, "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복잡한 놀이구나. 알아서 잘 놀아라" 하며 어른들이 사라져 버린 위험한 놀이터 말이다.
게다가 질풍노도의 시기, 가장 복잡한 심정을 가지는 나이이자 신체적인 변화와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의 아이들이라 구분 지으며 심지어 그 덕에 북한이 침공하지 못한다는 농담까지 만들어 냈던 그런 나이에 속해 있는 아이들 아닌가.
제이미의 부모가 뒤늦게 눈물을 흘리며 내뱉는 대사가 있다.
"우리가 제이미를 위해 뭔가를 했어야 했던 것 같아" 제이미의 부모는 제이미가 원하는 컴퓨터를 사 주고, 방에서 알아서 혼자 잘 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아이가 알아서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아이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을 부모의 가장 큰 역할로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은 그냥 두면 알아서 잘 크는 시대가 아니다. 그냥 두면 이 시대는 아이들을 모두 잡아먹을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창의력 같은 아이다움은 난도질당해서 과장되고 선정적인 문구와 그림으로 포장될 것이고 자극적인 말을 붙여 아이들을 홀려 낼 것이 뻔하다.
이제는 그냥 두면 알아서 하는 아이들은 없다. 산에서 놀고, 동네에서 뛰어다니고, 옆집 가서 놀던 예전 그 시대 아이들은 지금 유튜브에서, 인별그램에서, 총을 갈겨대는 온라인 게임에서 사람이나 자연이 아닌 비좁고 메마르고 영혼 없는 공간 속에서 잠식당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지키면 좋겠다. 그래서 나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국과 호주에서 논의되고 있는 16세 미만 아이들의 소셜 미디어 금지 법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얘들아 그건 안돼"라고 말하는 사회, "얘들아 그건 너희한테 좋지 않아. 안돼, 저리 가"라고 말하는 어른들, "이건 너희가 할 일이 아니야. 그러니 더 하려고 들지 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부모들이 더 많아지면 안 될까.
지니가 램프에서 나와 내게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이 세상에 모든 유튜브와 SNS를 없애줘"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