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엔젤루의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를 읽고
중학생 큰 아이의 중간고사 기간에 '학부모 시험감독관'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내 자녀가 속하지 않은 학년 교실에 부감독관으로 들어가서 함께 들어간 선생님을 보조하는 역할이다. 중학교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수학 과목 시험 시간이었다.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문제를 풀기 시작했지만 한 학생은 아니었다. 시험 문제를 살펴보지도 않고 1번부터 마지막 문제인 28번까지 찍기에 돌입했고 그 숫자 그대로 OMR 카드에 마킹을 했다. 그 학생이 마킹을 끝냈을 때는 10시 4분이었고 시험은 10시에 시작했었다. 그리고선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OMR카드에 도장을 찍으러 다니는 교사가 그 학생에게 부드럽고 작은 소리로 그래도 문제를 한번 풀어보라며 타일렀지만, 잠깐 시험지를 폈을 뿐 교사가 지나가자 다시 엎드려 버리고 말았다.
그 학생을 보는 데 속이 좀 상했다.
'아직 16살, 중학교 3학년인데 벌써 무언가를 포기하다니..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만리인데 그 고된 길을 어떻게 가려고 벌써 포기를 하나' 하는 다 자란 사회 선배로서의 안타까움과 뭐라도 좀 해 볼 것이지 그냥 손 놓고 말아 버리는 모습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저 아이의 엄마 같은 감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시대의 수포자를 실시간으로 목격한 것은 충격이었다. 돌아보면 나 또한 수포 자였었는데 말이다. 한창 창창하고 예쁜, 아직 어린 나이의 학생이 숫자와 공식, 기호들로 암호화되어 있는 수학 문제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얘아, 지금이라도 하면 한 두문제라도 더 맞을 수 있단다. 100점까지는 안 맞아도 돼. 포기하지 말거라. 넌 아직 무언가를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가란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야 엔젤루(Maya Angelou, 1928~2014)는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미국 남부의 아칸소 주 스탬프스에서 자랐다. 그녀의 책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는 소설의 형태를 띤 그녀의 자서전 같은 책이다. 그녀가 살던 지역은 인종분리가 너무나 완벽해서 대부분의 흑인 아이들은 백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백인들은 흑인들과는 다르다는 것, 두려운 존재라는 것뿐이었다. 마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이 무렵 나는 백인들이 진짜 사람이라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마야는 흑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3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친할머니에게 보내졌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마야는 몇 년이 지나 드디어 함께 살게 된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몇 년간 말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8세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마야는 그것이 성폭행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강인한 할머니 핸더슨의 삶을 통해 배운 생존력과 지혜 그리고 평생 단짝이었던 오빠 베일리와의 우애를 바탕으로 흑인, 그것도 가난한 흑인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포기해야 했던 자신의 삶을 일궈 나간다. 수많은 문학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돌보았고 결국 그녀는 마틴루터킹 목사와 함께 인권운동에 앞장선 사회 운동가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시인, 영화감독, 극작가 등으로서 업적을 남기며 더 이상 새장에 갇힌 새의 모습이 아닌 자유롭게 비상하는 새로 노래하는 인생을 살아냈다.
지금은 마야가 살았던 잔인하고 가혹한 폭력의 인종차별이 난무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다양한 이유로, 때로는 자의로 때로는 타의로 삶의 일부분을 포기하며 살아간다. 메마른 땅과 하늘로 먹을 물이 없어 먹는 일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인생의 계획을 접어야 하는 사람도 있고,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장애물로 주어진 기회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포기를 당하거나 해야 하는 일은 매우 사소해 보이는 일부터 생명을 다루는 일까지 광범위하다.
그래서인지 포기당하고 포기하는 일이 지극히 개인화되어 버린 것 같다. 많은 학생이 수학과 성적을 포기하고 또 많은 청년이 구직과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학생과 청년을 자녀로 둔 중년은 어쩔 수 없이 부모부양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노후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마야 에인절루도 저 시대에 저렇게 살았는데 그때보다 훨씬 살기 좋은 지금 시대가 뭐가 살기 어려워 포기하냐는 비아냥은 필요 없다. 이제는 그런 비아냥 말고 포기한 것들 옆에 포기하지 않은 하나 혹은 두 개의 일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마야는 시대적, 경제적 상황으로 수많은 것들을 포기당하고 해야 했지만 그녀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속했던 독서와 글쓰기는 그녀에게 깊은 통찰력과 표현력을 선물하며 그녀의 삶에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수학 시험이 끝나기 20분 정도를 남겨두고 갑자기 10시 4분에 엎드려 잤던 그 학생이 일어나서 영어 단어를 시험지에 쓰기 시작했다. 다음날 치르는 영어시험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외운 단어를 쓰고 문법의 형식을 쓰고 있었다. 시험 시간이 끝나고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우연히 그 학생이 선생님께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선생님. 저 국어는 100점 맞았는데 수학은 정말 하나도 못 풀고 찍었어요. 내일 영어는 정말 다 맞아야 해요" 이 이야기를 듣는데 웃음이 나왔다.
'다행이다. 수학만 포기한 거였구나, 넌 국어는 엄청 잘하는 아이였어. 물론 영어 시험 준비도 잘하고 있고.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네가 모든 시험을 포기하고 네 아름답고 예쁜 학창 시절의 막사는 것처럼 단정 지었던 내가 부끄럽다. 내일 영어 시험 정말 잘 보길 바란다. 사실 수학 하나 즈음 인생에서 포기한다고 인생이 어떻게 되지는 않는단다. 하지만 너무 쉽게 포기하지는 마렴. 사실 수학 따위를 포기하기엔 인생은 너무 복합적인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결정적으로 네 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지 않니. 그러니 부디 포기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뭐라도 포기는 하지 말거라. 좀 못 하는 것과 포기하는 건 다른 거니까 예쁜 아이야"
그 예쁜 학생이 새장을 벗어나 훨훨 날아다니며 즐겁고 설레는 인생을 살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나도 내가 포기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잠시라도 생각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