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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마녀사냥 당하는 영웅

구병모의 <이창>을 읽고

by 김태경

예전에 신문에서 40대의 남성이 9살 여자아이를 데려가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한 시민이 경찰에 신고를 해서 남성이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시민은 신고 뿐 아니라 그 남성이 아이를 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려는 것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이 날 9살 여자아이는 용감한 한 시민으로 인해 뭔가 벌어졌을지 모를 끔찍한 범죄로부터 지켜졌다.

이런 기사도 있었다. 골목을 걷던 여성 뒤에 한 남성이 바짝 뒤쫓아 오고 있었다. 수상함을 느낀 여성은 이리저리 피해 다녔지만 그 남성은 계속해서 여성의 뒤를 따랐다. 마침 그 골목을 지나던 한 차량의 운전자가 수상한 남성의 행동을 눈치채고 차량의 경적을 울렸고 차량으로 다가와 도움을 요청한 여성을 목적지까지 차량으로 에스코트해 주었다는 기사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또 다행히 이런 사람들이 그때 거기에 있어서 내 딸아이, 내 동생이었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지켰나 싶어 다행이다 싶었다.


배트맨은 방탄 슈트와 배트카를 타고 고담시를 장악하려는 악당과 싸운다. 토니스타크는 강력한 무기로 전 세계를 위협하는 악당들에 맞서기 위해 천재적 지능과 돈을 쏟아부어 총에 맞아도 끄떡없는 바디슈트를 만들어 아이언맨이 되고, 이후에는 히어로 친구들과 힘을 합쳐 지구의 종말을 막아내기도 한다. 주로 마블(Marble)이 만들어내는 영화 속 히어로는 비현실적이지만, 그 비현실적인 판타스틱함으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권선징악이 진리임을 설파하는데 큰 일을 해냈다.


구병모 작가의 단편소설 이창(裏窓. 2015)에도 히어로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어느 날 맞은편 베란다 창문을 통해 거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아이를 발로 차는 여성을 목격한다. 셀 수 없는 발길질에 아이는 이리저리 굴렀고 구르는 아이를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걷어차는 장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긴급통화 버튼은 눌러 아이가 맞고 있다고 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은 아이의 집을 방문만 하고 다시 돌아갔고, 그 후 우연히 동네 마트에서 아이를 발로 차던 여성을 마주치게 된다. 그 여성은 주인공에게 경찰에 신고하신 분 아니냐며 대놓고 물었고, 오해가 있었다며 그날 자신이 한 일의 전말을 줄줄이 말해 대기 시작했다.

며칠 후 주인공은 또다시 맞은편 베란다에서 아이를 향해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목표물을 가격하는 발길질을 목격했고, 그냥 보고만 있었을 수 없없던 주인공은 이번엔 직접 그 집으로 찾아간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아이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확신을 가진 주인공은 문이 열리자마자 집안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했다.

"혹시 교회 다니시나 해서요. 저 요즘 전도기간인데 마침 생각나서."


집에 들어간 주인공은 드디어 작고 왜소한, 슬픈 표정의 아이의 팔에 멍자국을 발견하지만 어린이집에서 다쳐 온 것이라 우기는 아이의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그 집을 나오게 된다. 주인공은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지역과 이름을 모두 익명으로 처리하고 일의 개요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이웃 아이를 돕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백 개의 댓글 중 팔십 개가 오지랖을 넘어선 편집증이 의심되니 정신과에 가 보라는 내용이었고, 당신 자식이 피해 본 것도 아니고 모른 척하면 될 일을 애써 파고드는 저의가 무엇이냐는 질문도 있었다. 결국 주인공은 신상 털기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화자는 책 속에서 자신이 구타당하는 아이를 보고 했던 일련의 행동들-신고와 방문,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의 당위성에 대해 계속 설명한다. 마치 취조를 당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절대 감정적이거나 순간적인 판단이 아니었음을 설득하는 논조의 호소 어린 말들이 가득하다. 올바른 행동을 했음에도 마치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매도 당하는 한 개인의 억울함과 당혹스러움이 진하게 배어 있는 말들이다.


"당신들이 나를 희대의 오지라퍼 하고 불러도 좋다. (중략) 나만이 유난스럽게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주장할 마음은 없으며, 그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도리라고 믿는다"


"이 여자는 집에서 자기 애나 똑바로 돌보는 게 먼저 아닌가 이 여자는 직업도 할 일도 없고 바쁘지도 않은가 고작해야 남의 집을 몰래 관찰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회 정의감을 대리 충족하려는 가 왜 이 여자는 제대로 된 담론을 펴지 못하고 감성적이며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에 대해 먼저 해소하고자 한다"


"... 나로선 최선을 다했고 필요하다면 조금 더 할 의향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당신들에게 이렇게까지 비난받아야 할 이유란 없다."


"나를 이해할 마음이 없는 당신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중략) 그들은 이웃집 그녀보다 오히려 나더러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 목소리로 말하며, 이제 누가 미친 사람이고 미치지 않은 사람이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본질을 흐리는 데에 한 몫했다. 글을 올린 지 이틀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몇몇 사람이 내 신상을 털기 시작했고 (중략) 본격적인 마녀사냥이 시작되기 전 나는 원문을 삭제했다. (중략) 내 딸까지 이상한 아이라는 오해를 받게 놔둘 수는 없었다. 결코 내가 누군가를 해칠 모종의 계획이 있어서 원문을 내린 게 아니라는 사실만 분명히 해 두고 싶다"


배트맨과 아이언맨이 무력하게 발길질당하고 있는 아이를 봤다면 슈트를 입고 그 아이가 맞고 있는 현장의 베란다든 아파트 벽을 뚫고 들어가든 해서 현행범으로 아이의 엄마를 잡아 냈을지도 모르겠다.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아이 엄마의 말이 거짓이고 아이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전신 스캐너를 통해 상황의 심각성을 모두에게 알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말을 100%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그저 맨몸으로 악당에 맞섰다. 이런 측면에서 그녀는 아이언맨과 배트맨보다 한 수 아니 두 수 위다. 자신이 눈으로 목격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제 발로 찾아가고 말로 공격하고 위험과 불의의 실상을 사람들에게 알렸음에도 영웅은 커녕 정신 나간 여자 취급을 받으며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소설은 비극으로 끝난다. 기어이 아이의 장례식을 찾아간 주인공은 영정 속 아이를 차마 바라보지도 못한 채 그 자리를 나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 엄마의 얼굴에서 조소를 읽는다.


아이언맨, 배트맨은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여러 모양의 모습을 가진 악당으로부터 괴롭힘을 받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한다.

불의를 보고 용기를 낸 이들을 영웅으로 대접해 주는 사회 속에서 살고 싶다. 불의로 의심되는 일이라도 모른 체 하고 지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영웅이라 불러주면 좋겠다.

그러면 누가 나쁜 놈이고 착한 놈인지 잘 골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착한 놈이 그 일은 착한 일이다 설득하는 게 아니고, 나쁜 놈이 얼마나 나쁜 놈인가에 대해 더 집중하는 곳이 되면 좋겠다.


어린아이의 손을 끌고 범죄의 소굴로 들어가던 악마를 막아섰던 그 시민, 공포에 질린 채 갈바를 모르고 악마에게 농락당하고 있던 여성에게 구원의 경적을 울려 주었던 그 시민..

그분들이 아이언맨이고 배트맨이다.


나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쓸모 있는 일을 해야 한다면 모른척하지 않고 주저 없이 용기 내는 사람이길 바란다. 비록 슈퍼카와 수트는 없더라도 날카로운 관찰력과 큰 목소리, 당당함과 지혜로운 순발력을 무기와 방패로 삼아서 말이다. 또 용기를 낸 또 다른 쓸모 있는 시민을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는 동료 시민이 되었으면 한다.

"결과야 어떻든 당신은 용기를 내어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당신의 용기를 자랑스러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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