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언제나 옳다> 나는 정말 언제나 옳을까?

길리언 플린의 <나는 언제나 옳다>를 읽고

by 김태경

부정적인 면이 있는 사건을 긍정적으로 포장하려는 행동, 혹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나 실패를 정당화하려는 심리기제를 '자기 합리화'라고 한다. 내가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이유는 종일 회사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했기 때문이고, 오늘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온종일 화창한 저 날씨가 나를 계속 밖으로 불러냈기 때문이었다. 가벼운 일상에 굳이 적용하자면 늘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많은 부분이 자기 합리화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내가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것과 공부를 끝내지 못한 것은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내 의지박약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형편없이 사는 것은 모두 남편이나 부모 때문이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싹수없는 그 X들 때문이며, 내가 그 일을 그르쳤던 것은 이 사람이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등등등 이유를 대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다.


그러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기 합리화'란 추악하고 원초적으로 변하는 자신을, 자기 연민과 상대적 박탈의 감정을 이기지 못한 자신을, 직면도 해결도 하지 못한 채 회피하기를 선택한 자신의 본모습을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뜻 아닐까.


길리언 플린의 단편 소설 <나는 언제나 옳다(원제: THE GROWNUP)>의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 길에서 구걸하며 먹고살았다. 모녀는 프로였다.


"열여섯 살 되던 해에는 엄마와 얼룩과 텔레비전에서 벗어나 스스로 내 길을 개척했다.

매일 아침 밖으로 나가 여섯 시간 동안 구걸을 했다.

누가 접근할 만한 사람인지, 얼마나 길게 말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절대 부끄럽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순수한 거래였다.

누군가를 기분 좋게 해 주고 돈을 받는 것이다."


주인공의 직업은 남자들이 수음하는 일을 돕는 '손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소설 도입부에서 꽤 당당하고 전문가 인 체 하며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내가 이 소설을 이용해서 이 쪽 계통에 일 하시는 분들을 비난하려는고 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어릴 적부터 꽤 그럴듯한 거짓말로 생계를 유지해 온 주인공은 영역을 넓혀 '점쟁이'를 자처하기로 한다. 그녀는 자신이 사람들의 기(氣)를 느낄 줄 아는 예언하는 사람, 혹은 심리치료사로 소개하기도 한다.

어느 날 똑똑해 보이고 예쁘게 생긴, 비싼 핸드백과 바느질 마감이 훌륭한 드레스를 입고 지혜로운 목소리를 가진 수전 버크라는 여성이 찾아온다. 그녀는 친아들과 남편, 남편의 의붓아들과 살고 있는데 의붓아들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고 했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었고 자신의 방 벽에 핏자국이 있다고도 했다.

수전의 말을 듣고 돈을 많이 벌기로 작정한 주인공은 수전의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주술행위를 통해 나쁜 기운을 내보내는 일에 착수한다. 그들은 빅토리아 시대를 연상케 하는 고(古) 저택에 살고 있었다. 주인공은 그 저택에서 수전의 의붓아들 마일즈를 마주하게 되는데 마일즈는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 수전이 문제라고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해 준다. 아버지와 주인공의 관계를 의심한 새엄마(수전)가 당신과 나를 없애기 위해 접근한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수전이 아니라 마일즈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여기며 마일즈와 함께 그 집에서 도망친다.

이제 주인공은 열다섯 살 아이의 유괴범, 돈을 노린 사기꾼이 되었지만 소설 말미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중략) 태어나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이 지역을 마침내 떠나는 것이다.

게다가 난생처음 '엄마'라는 신분까지 얻었다. 나는 염려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중략) 내가 실제로 사기를 당했든 아니든, 나는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고 믿기로 선택했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속여서 수많은 일을 믿도록 했던 나다.

그런 나에게도 이번 일은 그야말로 생애 최고의 업적이 될 참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나 스스로 믿도록 만드는 것! 옳지 않더라도 나름 합리적인 일 아닌가."


인생 어디에 선을 긋고 살아야 하는 걸까.

누군가 선을 그어 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여기까지는 철저히 너의 문제이고, 이제부터는 완전히 저 사람의 잘못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거예요. 자! 뭐든 선택하세요!"


하지만 내 인생의 결과는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므로 주저하게 된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끔은 나를 다독이고 격려하면서도 또 가끔은 내 못난 모습을 직면하고

반성하며 몸과 마음을 추슬러 더 나쁜 나로 변모되는 걸 막는 것 아닐까.

이 세상에 온통 자기 합리화만 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것보다는 자기 성찰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게

좀 더 옳은 일이고 살기 좋은 곳이 되는 방법 일 듯하다.

그랬다면 주인공의 마지막 말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가 걱정처럼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keyword
이전 08화<이창> 마녀사냥 당하는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