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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의 전투> 보이는 게 다가 아닌 법

황석영의 <지붕 위의 전투>를 읽고

by 김태경

20대 중반에 소개팅을 했었는데, 상대 남자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시 나의 이상형과 거리가 좀 있다고 느꼈었다. 유머러스하고 단정하면서 인물이 어느 정도 괜찮은 남자를 선호했던 것 같은데 그때 그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착하고 순수한 분이었던 것 같은데 젊은 그때 나는 그런 걸 볼 줄 아는 눈이 없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 대기업 법무팀에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남자분이 있었는데 안정적인 직업이었음에도 키가 작고 실제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 탓에 여자 청년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신앙심이 한결같고 성실하고 착한 것만큼 결혼 상대자로 좋은 조건이 없건만 나를 비롯한 젊은 여성들은 그때 그걸 알아보지 못했다.

직장에서도 이런 일은 있다. 직원 연수에서 한껏 자신의 끼를 발산하며 분위기를 주도하며 날고 기던 한 신입직원을 이 부서 저 부서에서 데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배치되고 나면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직원은 못 알아듣는 것 같고 행동이 꿈 떠서 언제 가르치나 한숨 쉬고 있는데 어느 날 그 직원이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기도 한다.


내가 나이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몇 가지 배운 것들이 있다.

-사람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직접 겪어봐야 한다.

-위기일 때 그 사람의 진가(眞價)가 나타난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고 세우는 사람이 진짜 괜찮은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성실한 사람은 일단 인정하고 봐야 한다... 등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아니 내 편견으로 인해 누군가를 단정 짓고 오해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사람은 그냥 딱 보니까 아줌마네", "저 사람은 그냥 딱 보니까 백수네 뭐", "에이 저 학생 완전 날라리네"와 같은 순간적 판단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나도 아줌마고 나도 지금은 백수(육아휴직 중인)인 주제에 남들도 나를 보고 이렇게 순간적 판단을 할 것이라는 것은 잠시 잊은 채, 채 1초가 가기도 전에 내 머릿속은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누군가를 단정해 버리고 만다.

가난한 대학생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재벌 2세였더라는 드라마가 늘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식하고 섣부른 자신의 판단에 면죄부를 주는 일종의 최고의 명분이기 때문 아닐까.(이런 현상이나 이유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사람이 성숙해진다는 건 이런 순간적인 단정(斷定)을 밀어내는가 아닌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에 대해 잘 모르니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고 결정하는 것은 멋진 말이기는 하지만 자신에 대한 깊고 진지한 절제력이 있지 않고서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안타깝게도 자아 성숙으로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그 사람을 겪어 내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는 듯하다.


황석영의 단편소설 <지붕 위의 전투>의 고문관 같이 말이다.

이발소와 솜틀집, 방앗간이 붙어 있는 길에 사람이 한가득 모여 있다. 무슨 일이 난 게 틀림없어 가보니 어떤 아이가 굵은 전깃줄이 지붕 위로 늘어진 줄 모르고 지붕에 얹힌 공을 꺼내러 올라갔다가 붙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 장면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맞은편 지붕으로 올라가고 그 길목에서 동네 상이군인 한 사람을 만난다. 그는 전쟁에 나갔다고는 하는데 혀 짧고 묘한 말씨를 하고 있다. 또 그의 누이는 양키를 끌어들이는 양공주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빈둥빈둥 놀며 누이에게 그 짓을 하게 두는 능력 없는 놈으로 비웃음을 당하며 동네에서 바보로 취급받던 사람이었다. 소설의 화자인 아이들도 그를 고문관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느 노인 하나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갔지만 구렁이처럼 움직이는 굵은 전선에 휘감기고 치여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 순간 그 장면을 지켜보던 고문관을 벌떡 일어나 이렇게 말한다.


"나쁜 놈든 가트니...구경만 함 다야? 얘든다 내가 가따 온다. 경네해다, 경네."


그는 맨손으로 지붕으로 노인에게 달려들어 감긴 전선을 떼어 내는 목숨을 건 전투를 시작했다. 전압을 견디느라 경직된 근육들이 부풀어 오르고 눈알이 생선처럼 불쑥 튀어나왔다. 드디어 노인을 전선으로부터 떼어낸 고문관은 이제 아이 몸에 감긴 전깃줄을 잡아떼기 시작했다. 피와 땀을 줄줄 흘리며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는 상태까지 이르렀지만 아이를 구해내고야 만다.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고문관은 죽었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는 벌떡 일어나 사람들에게 팔을 흔들어 보였다.


"며칠 지나서 그가 다시 거리에 나타났을 적에 어른들은 아무도 그를 바보라고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나와 국원이는 다리를 절뚝이며 쌍성루 쪽으로 걸어가는 붕대 투성이의 고문관을 앞지르고 달려갔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저 옥상에서처럼 경례를 척 올려붙였다."


겪어봐야 깨닫게 된다는 것은 아픈 과정을 기어이 지나야만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서라도 내 편견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억울한 누군가가 오명을 벗을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 전에 큰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모르는 사람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고 마음먹고 현실세계에서 훈련해 나가 보는 거다.

할 수 있을까? 흘러가는 시간이 주는 수많은 경험 속에서 나는 성숙함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

오늘부터 좀 더 전투적으로 그것을 시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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