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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땅은..>얼마큼 가져야 만족하게 될까

톨스토이의 <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를 읽고

by 김태경

지인 중 한 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마치고 나서 어머니의 재산으로 자식 간 다툼이 일어났다.

하나뿐인 아들은 어머니 살아생전 제대로 아들 노릇도 안 하고 재산만 가져다 썼고, 두 딸이 어머니 임종 직전까지 돌보고 챙겼던 상황이었다. 아들은 자기도 자식이고 아들이니 어머니 재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남동생이 괘씸했던 두 명의 누나는 반대했다.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형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돈을 나눠 갖는 일로 남보다 더 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얼마 전 신문에서 부자들은 넓고 좋은 집에 자가나 전세가 아니라 월세 거주를 선호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전세보증금으로 돈을 묶어 두지 않고 계속 투자하면 월세를 내더라도 투자로 인한 금전적 이득이 훨씬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계속 서울에서만 살았다.

앞으로도 서울에서만 살게 될 텐데 집은 없다. 청약점수가 아무리 높고 다자녀 가구에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민간 청약으로 서울에 가능한 아파트는 10억 이하가 거의 없다.

서울과 수도권 경계 지역의 아파트나 10평대 소형 아파트는 10억 미만인 경우가 간혹 나오지만

점차 덩치 커지는 남자아이 두 명을 데리고 더 좁은 집으로, 다니던 학교 전학까지 해 가며, 대출 풀로 당겨 매월 100만 원이 넘는 이자 감당하면서 이사한다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인 편이다.

그래서 내 청약 통장은 꼬박꼬박 매월 돈을 받아먹어 매우 높은 점수를 킵하고 있음에도 아직 쓸모가 없다.


나는 파인다이닝은 아니어도 주말에 가족과 외식할 수 있고,

아이들이 뭐가 먹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사줄 수 있으며,

아이돌 콘서트 티켓도 사주고 굿즈 사는데 돈도 보태준다.

매달 적금도 부을 수 있으며, 1년에 한 번 해외여행은 꼭 다녀왔고, 두세 달에 한 번씩은 가족들과 국내 여행을 다닌다.

그런데 지금 딱 내 집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뭔가 경제적 무지, 무능인으로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빨리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말들을 들으면 에엥?? 하기 일쑤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에는 농부 파홈이 등장한다.

파홈은 나름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던 농부였지만 딱 한 가지 늘 아쉽게 생각하던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땅이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파홈은 자신의 땅을 늘리기 위해 그동안 모아 둔 돈과 빌린 돈을 모아 땅을 마련했고 열심히 일한 덕에 빌린 돈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그는 완전한 자신 소유의 땅의 경작을 즐거워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땅이 비좁하고 생각되었다.


'그래, 잘 살 수만 있다면 이렇게 비좁은 땅에서 궁상을 떨 필요가 없지. 여기 땅과 집을 모두 팔아 버리고 그 돈으로 거기서 새로 시작하는 거야. 이 좁은 땅에서는 골치만 아플 뿐이야. 내가 직접 알아봐야겠어'


파홈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조합에 가입한 다음에 땅을 밀려 농사를 지으며 영원히 자기 소유가 될 수 있는 땅을 사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청 적은 돈으로 개울을 끼고 있는 비옥한 땅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아간다.

바슈키르인들이 사는 그 지역을 찾아간 파홈은 그들에게 땅을 사고 싶다고 했고, 파홈의 적극성을 본 그들은 그에게 땅을 팔기로 한다. 파홈은 이제 단 1000 루블로 원하는 땅 전부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이 제시하는 조건만 지키면 말이다.


"우리는 자네가 땅을 재는 그런 방법은 모르네. 그저 하루 동안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만큼의 크기가 자네 땅이고, 그것이 그 값이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네. 해가 지기 전까지는 출발했던 원래 자리로 돌아와야 하네. 그러면 돌아다닌 땅은 모두 자네 것이 되는 거지. 만약 자네가 걸어서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기 전에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네. "


파홈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땅을 얻을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아침이 되어 그는 외투를 벗고 조끼 하나만 입은 채로 빵주머니와 물통을 벨트에 매달고 출발했다. 머릿속으로 땅의 구역을 정하고 출발했지만 여기보다 좀 더 가도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더 걸어갔다.

비뚤어진 모양이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농사짓기 좋아 보이는 저 쪽의 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해가 지려고 했다. 종일 걷고 또 걸은 파홈은 출발지로 돌아가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지만 쉬지 않고 종일 넓은 초원을 달리기만 했던 파홈은 더 힘을 낼 수가 없었고 결국 해는 지고 말았다.


결국 파홈이 얻은 땅은 3 아르신, 약 70 센터미터에 불과했다.

출발점으로 겨우 돌아온 파홈은 피를 쏟으며 그대로 쓰러져 죽었고, 그는 일꾼들이 파 준 약 70센티미터의 무덤을 제 땅으로 삼게 되었다.


욕망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욕망하는 사람은 늘 가난하다는 말도 있다.

만족함을 누리고 절제함을 갖추고 살 수는 없을까.

다른 사람이 가진 것 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이 없어질 순 없는 걸까

파혼보다 좀 덜 걷거나, 더 빨리 달리든가 둘 중에 하나는 잘해야 할 텐데..


얼마 전부터 IRP계좌와 ETF 투자에 대해서 유튜브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해 보니까

공부하는 거 하고 직접 실행하는 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실행을 주저하고 미루고 있는 나를 보면서 도대체 나 왜 이러는 거야 하면서..

현재 먼산만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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