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의 생성 배경과 모델의 형태, 그리고 그들의 한계

- 통합이 아닌 공존의 방식

by Yan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방콕 수완나품공항으로 가는 짧은 비행.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다르지 않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공기의 냄새와 사람들의 눈빛, 간판의 언어는 완전히 바뀐다. 이것이 동남아시아다. 하나의 지역이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들이 공존하는 공간.

그렇게 서로 다른 나라들이 한데 모여 만든 조직이 있다. 바로 아세안(ASEAN)이다.
10개의 나라. 10개의 체제. 10개의 길.
이질성 속에서 협력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한편으로는 고무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1. 어떻게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을까?

1967년, 태국 방콕.
전쟁과 쿠데타, 외세 개입에 지친 다섯 나라(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의 외무장관들이 마주 앉았다. 그들은 ‘함께 뭔가를 해보자’는 결의로 ‘방콕 선언’에 서명했고, 그것이 아세안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각자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공통의 위기감은 같았다.

베트남전의 확산

공산주의의 위협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

개발도상국으로서의 경제 불안

그래서 아세안은 어떤 이상보다 현실적인 필요에서 탄생했다.
전략적 자립. 경제 성장. 안보 공동 대응.
그 누구도 ‘EU처럼 되자’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싸우지는 말자’는 데에는 모두 동의했다.


2. 그들은 어떤 모델을 선택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아세안을 두고 ‘동남아의 EU’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와는 전혀 다른 구조다.

EU는 통화도 같고, 의회도 같고, 외교도 공동으로 나간다.
반면 아세안은?

미얀마는 쿠데타 정권, 캄보디아는 장기 집권, 브루나이는 절대왕정

필리핀은 가톨릭, 태국은 불교,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싱가포르는 1인당 GDP 8만 달러, 미얀마는 1,200달러

국경 분쟁, 언어 차이, 민족 불신도 여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자리에 모인다.
왜냐면 아세안은 ‘통합’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조율’을 추구할 뿐이다.

모든 결정은 ‘합의’로만 이뤄진다.
각국의 내정에는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실행 강제력도 없다.
한마디로 느슨한 협의체.
이것이 아세안의 진짜 모습이다.


3. 그럼에도 그들은 어떤 의미를 만들어냈을까?

이질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이 남긴 분명한 성과가 있다.

- 전쟁이 없었다.

창설 이후 회원국 간의 전면전은 단 한 차례도 없다.

국경을 넘나들던 무력 충돌이 협상의 테이블로 옮겨간 것이다.

- 경제적 연대가 강화되었다.

2015년, ‘아세안 경제공동체(AEC)’가 출범하며 역내 무역장벽이 낮아졌다.
물류, 농산품, 제조업 부문에서의 협력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다.

- 전략적 유연성이 생겼다.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작은 나라들에게,
아세안은 ‘중립적 공간’이자 공동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플랫폼이다.


4. 하지만 끝내 넘기 힘든 벽이 있다

아세안은 계속해서 EU와 비교되지만, 그만큼 멀다.

회원국간 체제와 가치가 너무 다르다.

진짜 협력보다 각국 체제 유지가 더 중요하다.

미얀마 사태에서처럼, 명백한 인권 침해에도 공동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국민들의 정체성이 '아세안 시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을 들을 수 있지만, ‘아세안인’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아세안은 통합을 꿈꾸는 조직이 아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한 채, 최소한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협의체다.

“함께 걷되, 같은 길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것이 아세안의 방식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과 지역별 전쟁반발(우크라이나 전쟁, 하마스 전쟁 등) 상황속에서

이런 느슨한 협의체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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