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의 사무실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어제와 오늘, 실장은 홍주 때문에 머리 끝까지 난 화를 삭이느라 씩씩대고 있었다. 어제는 열애설로 난리가 나더니, 오늘은 한술 더 떠 어제 열애설 상대의 살인 용의자란다. 점입가경의 상황에 회사 내부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홍주는 지금 정민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새도 없었다. 사실, 정민의 죽음에 대해 추모하는 마음보다는 용의자 누명을 벗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용의자라니...홍주는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직원들은 눈알만 굴리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제 홍주가 정민을 만난 건 사실이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어제 R호텔 2601호에 들어가는 그의 모습이 CCTV에 명백하게 찍혀 있었다. 매니저 수현도 스케줄 중간에 그를 R호텔에 데려다 줬던 걸 시인했다. 호텔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는 밴 모습이 그대로 찍혀 있어서 변명할 수도 없었다. 그 탓에 수현마저 실장에게 호되게 한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이 형사는 홍주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어제 둘이 만나는 걸 누가 알고 있었는지, 약속은 언제 정해진 건지, 주변에 수상한 사람은 없었는지...홍주는 성실하게 답변했다. 최대한 상세하고 정직하게 답해 자신이 살인 용의자라는 누명만 벗어나고 싶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확인해보니 사망 추정 시각에서 약 4시간 전쯤 이정민 씨는 프런트로 전화해 룸서비스를 시켰더라고요."
"그럼 8시? 그 때까지는 살아있었어요. 그리고 저랑 그 때는 만나고 있었는데 룸서비스 같은 거 안 시켰었어요"
"아마 이정민 씨는 김홍주 씨가 나가고나서 바로 프런트로 전화했던 것 같습니다. 어제따라 투숙객이 많았는지 룸서비스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고 이정민 씨께 미리 고지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거의 한시간 반은 지나서야 직원이 이정민 씨 객실로 올라갔습니다. "
"...그런데요?"
"룸서비스를 가지고 26층에 올라갔던 직원은 이정민 씨의 요청으로 문 앞에 그냥 음식을 두고 갔다고 진술했습니다. 복도 CCTV 영상에도 정확히 9시 35분쯤 음식 트레이를 들고 있던 직원이 그걸 복도에 두고 가는 장면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 후 3분쯤 후에 문 바깥으로 손만 나와 트레이를 들고 들어가더군요."
"그럼, 그 때까지는 살아있었다는 거잖아요! 저는 그 때 연습실에서 멤버들이랑 안무 연습 중이었어요. 그거는 여기 와서 멤버들 통해 확인하셨잖아요. 알리바이가 확실하다고요"
"그렇지만, 그 손이 이정민 씨의 것인지는 특정이 불가능합니다"
"하..."
홍주는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형사가 보여준 CCTV 속에는 정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 손만 쑥 나와 바닥에서 음식을 가져가고 있었다. 정민의 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어쨌든 사망 추정 시각은 밤 12시경이라면서요?"
"그러니까 12시 전에 그 방에서 누가 이정민 씨를 해한 건지 알아내야 합니다. 정확히는 룸서비스 전화를 끊은 밤 8시 10분경부터 밤 12시 사이에 2601호에 있던 이정민 씨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요"
"전...정말 아니에요. 11시 30분까지 연습실에서 멤버들이랑 있었어요."
"사망 추정 시각 12시에는요?"
"저기..."
홍주는 주변을 슬쩍 보았다. 실장이 홍주의 옆에 팔짱을 끼고 서서 이 형사와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낌새를 알아차린 이 형사가 실장을 보더니 말했다.
"조사를 위해 잠깐 나가주시겠습니까?"
"우리 애가 살인자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닙니다. 아직 조사 중이고, 사망 추정 시각에 김홍주 씨는 알리바이가 있었다고 하니 확인만 되면 그냥 참고인일 뿐이지 용의자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알리바이 조사 빨리 하세요. 저희 이번주에 컴백도 있는데...이런 일로 조사만 받았다고 새어 나가도 타격이 커요"
"그러니까 잠시 나가 주세요. 빨리 하고 저도 돌아가겠습니다"
실장은 잠시 이 형사를 노려보듯이 보다가 곧 홍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눈빛에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홍주는 이내 그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빨리 해주세요. 이상하게 유도 신문하거나, 아직 용의자도 아닌데 얘 곤란하게 만들 생각 같은 건 하지 마세요. 법무팀에서 가만 안 있을 겁니다"
"네, 그러죠"
홍주를 못 미더운 듯 쳐다보던 실장은 결국 방 밖으로 나갔다. 경계심을 잔뜩 품은 채로. 이제 방 안에는 홍주와 이 형사 단 둘뿐이었다.
"이제 말씀해 보시죠. 알리바이 확인해 줄 사람에 대해"
"저기...사실은 하...그러니까 제가 원래 다른 여자친구가 있어요. 그 여자친구 집에 있었어요, 사망 추정 시각에"
"..."
생각지도 못 했던 대답에 이 형사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양다리 중이었다는 거다. 김홍주라는 사람은 양다리였다는 걸 폭로해서라도, 자신의 살인 누명을 벗겨내고 싶은 듯 했다. 연예인 이미지고 뭐고, 지금 상황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원래 여자친구라는 분이 누구죠?"
"김...혜정이라고 하고요. 전화하면 아마 같이 있었던 것 이야기해줄 거예요"
"김혜정 씨 집에 있었던 건가요?"
"뭐...네...그렇죠."
"연습이 끝나고 바로 간 거였습니까?"
"아...네"
"그럼 몇 시쯤 간 건가요?"
"밤 12시쯤이요"
"그 집에 있었던 걸 여자친구 분 말고 확인시켜줄 사람이 또 있나요?"
"아...아뇨...둘만 있었어서. 그런데 확실히 맞아요. 저는 아니라고요"
"알겠습니다. 그 김혜정 씨라는 분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네. 잠시만요......010, 2345...."
이 형사가 번호를 누르는데 휴대폰 상단에 저장된 연락처들 중 겹치는 번호가 있다고 떴다. 김혜정...이 형사가 아는 그녀의 번호였다.
"하하..."
"왜요?"
갑자기 헛웃음을 짓는 이 형사를 보며 홍주가 물었다. 뭐 때문에 저렇게 웃는지 불안했다.
"아니...그 김혜정 씨라는 분...제가 아는 분이네요"
"네? 어떻게요?"
"그게...예전 사건 때문에 알게 된 분이에요. 뭐 어쨌든 아는 분이니 제가 연락 한 번 해보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혜정과 이 형사가 아는 사이라고? 예전 사건은 또 무슨 소리지? 뭐가 뭔지 홍주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형사가 먼저 나간 후, 홍주는 잠시 앉아 머릿속을 정리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여니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실장이 아까보다 더 흥분한 표정으로 홍주에게 캐물었다.
"너...너 양다리까지 했어?"
"아...아니..."
"또 누구야, 그 이정민 피디 말고 또 누구냐고!"
"..."
"하...진짜 너 아주 글러먹었구나.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죄송합니다"
"죄송한게 문제야!"
아마 실장은 불안함에 멀리 못 가고 문 앞에서 이 형사와 홍주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진짜 가지가지한다. 너 지금 인터넷 켜봐"
"네? 왜요?"
"켜봐"
홍주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포털에 접속했다.
'아이돌 김홍주 연인' 이모 PD, 어젯밤 시신으로 발견
'김홍주' 이모 PD 시체로 발견...연인이 살해?
열애 기사 발표 후 시체로 발견...끔찍한 사랑의 말로
'컴백 비상' 김홍주 연인 PD, 간밤 무참히 살해당해
포털은 각종 자극적인 제목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송한의 열애 기사는 이미 묻힌 것 같았다. 홍주는 어제는 열애, 오늘은 살인으로 메인 화면을 장식하게 되었다. 벌써 일부 언론사에서는 어디서 들은 건지, 경찰에서 홍주를 용의자로 의심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기사를 배포하기도 했다. 홍주는 스크롤을 내리며 기사를 읽다가 억울함과 끓어오르는 분노에 차마 더 내리지 못 하고 기사를 꺼버렸다. 억울했다. 자꾸 홍주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게 분하고 원통했다.
"너, 일단 조용해질 때까지 이번 컴백 무대 빠져"
실장의 한마디가 홍주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