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는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에 태어났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이 되면 연초생과 연말생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겠지만, 영유아기에는 몇 달의 차이가 제법 크게 다가온다. 연말생인 아이들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또래에 비해 키가 작다 보니 같은 6살 친구들도 햇살이를 동생인 줄 오해하는 일이 종종 있기도 했다. 신체적인 발달도 다르다 보니 친구들과 달리기를 할 때면 제일 뒤에서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친구들이 두 발 뛰기를 하여 장애물을 넘어갈 때 햇살이는 땅바닥에서 두 발이 떨어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올라가야만 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성큼성큼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햇살이는 사다리 밑에서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간절한 눈빛으로 “엄마 손 잡아줘~”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있었다. 같은 해에 태어났더라도 12월에 태어난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성장의 차이가 있고, 연필을 야무지게 잡는 것, 공을 힘껏 차는 것,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 등에서 서툰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12월생 아이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은 나처럼 12월생 아이를 키우는 친구와 우스갯소리를 나눈 적이 있다.
“이 아이들은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들에 비해 빨리 성인이 되잖아?
우리가 덜 키우고 빨리 성인이 되니 얼마나 좋아~”
친구와는 이렇게 웃으며 말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12월생의 장점은 역설적이게도 다른 친구와의 비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12월생이 또래와 비교했을 때 발달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음에 초점이 있었다면, 지금은 12월생이라는 사실이 내 마음에 여유를 준다. 하루는 아이의 친구 엄마로부터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던 OO이가 5실인데도 한글을 다 떼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OO이 벌써 한글 읽고, 쓰고 다 한데요. 대단하지 않아요?”
“우와 진짜요? 천재 아니에요? 천재??”
나는 다른 아이의 똘똘함을 인정하면서도, 내 마음속에 비교나 조급함은 없었다. '우리 햇살이는 못하는데?'가 아니라 '아~ 우리 아이도 몇 달 후면 저런 걸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몇 달 후엔 햇살이도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니 어떤 아이가 무엇을 했다고 하면, 우리 아이도 곧 하게 될 거라 생각이 되기에 비교보다는 아이가 해나가고 있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12월생인 아이가 또래와의 진도를 따라가려면 본인은 얼마나 애를 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 시절 참여 수업을 간 적이 있었는데, 체육시간에 다른 친구들은 즐겁게 해낸 활동을 햇살이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조심스럽게 하고 있어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선생님은 내게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햇살이가 처음에는 아예 할 줄 몰랐는데, 지금은 정말 잘해요. 여기서 가장 많이 발전한 아이예요.”
그렇다.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배워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가 나름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을 과정들을 떠올리니, 그저 고맙고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듯 아이의 속도를 인정한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다른 아이의 해냄보다 내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아이가 가진 많은 장점이 보이게 된다. 이는 12월생 뿐 아니라 모든 아이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햇살이는 또래에 비해 키는 작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단단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친구들이 서로 키재기를 하며 “내가 더 커~ 넌 작네!” 하며 웃을 때도, 속상해하지 않고 “하지만 난 OOO보다 머리가 더 커!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이다. 작은 아이가 긍정적이고, 단단하게 자라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흐뭇하고도 사랑스럽다.
이처럼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날마다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비교와 경쟁의 문화가 익숙해서인지,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누구는 한글을 읽는다더라’, ‘누구는 벌써 구구단을 외운다’ 등의 말들이 수없이 오간다.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기대와 비교가 따라붙고, 엄친아(우수한 엄마 친구 아들)라는 말이 어린아이일 때부터 존재하는 것 같은 현실에 부모로서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로 걸을 수는 없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보다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발맞추어 걸어가고, 언젠간 잘 해낼 것이라고 가능성을 믿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기대와 믿음이 실제 성과로 이루어진다는 ‘피그말리온효과’처럼 부모의 믿음은 아이를 자라게 할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