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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마음에서 기다림을 배우다

by 로라

“햇살아 변기에 앉아 볼까? 쉬~~쉬~~”

오늘도 햇살이는 화장실 앞에 놓인 아기 변기에 앉아 용을 써본다.

“엄마~ 쉬 안 나와.”

36개월이 넘은 햇살이는 변기에 앉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여전히 기저귀를 통해서만 대소변을 보고자 한다.


“아이고, 말귀도 다 알아듣는데, 왜 안되겠노.”

친정엄마는 이모들의 손주, 손녀가 기저귀를 언제 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아이의 배변훈련에 대해 애가 타셨다. 엄마가 나와 동생을 키우던 시절엔 천기저귀를 빨아 쓰던 때라 기저귀를 일찍 졸업하는 게 당연했을 테니 이 상황이 걱정스러우신 모양이었다.


아이의 준비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24개월에서 36개월 사이 배변훈련을 많이 시작한다. 기저귀를 뗄 때가 되면 아이들이 기저귀를 답답해서 벗고 싶어 한다던지, 스스로 화장실은 가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표현한다던지, 변기에 호기심을 보인다던지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햇살이는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변기에 앉아 보라고 하면 앉아만 볼 뿐 다른 신호는 없었다. 배변훈련을 30개월쯤 시도하다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미뤄두었는데, 이제는 2~3달 후면 유치원에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인터넷과 유튜브로 배변훈련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를 한 후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다. 엄마, 아빠가 변기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변기에 기저귀를 채워 앉혀 보기도 하고, 변기에서 쉬를 성공하면 주스를 주겠노라 회유도 해보았지만, 햇살이는 여전히 준비되지 않았다.


이런 아이를 두고 배변 훈련을 시도하려고 하니, 부작용도 있었다. 하루는 방수팬티만 입힌 채 어린이집을 보냈는데,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햇살이가 등원해 있는 6~7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소변을 보지 않았다고 하셨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니,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배변 훈련을 해보겠다는 나의 욕심에 하루 종일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친정엄마에게도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요즘은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기저귀를 천천히 떼는 게 추세래. 그리고 햇살이도 변기에 쉬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안되니 얼마나 답답하겠어.”

사실 어린이집에서도 화장실을 가는 연습을 계속하기 때문에 가장 답답한 건 햇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기저귀를 떼지 못하는 아이는 없을 테니, 언젠간 할 것이라고 믿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변기에 앉혀 보았는데 졸졸졸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세상에! 다른 이가 소변을 보는 일이 이렇게 기쁜 일일 줄이야. 나와 신랑은 변기에 앉은 아이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며, 물개박수를 쳤다. 햇살이는 이렇게 한번 해보고 나니, 그 후에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유치원에 기저귀를 하고 가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은 과제는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대변을 가리는 것이었다. 기저귀를 한 채 서서 대변을 보는 습관이 있다 보니, 앉아서 대변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기저귀 없이 생활하다가도, 대변이 마려울 때는 자연스레 기저귀를 찾았기에, 유치원에 처음 간 3월에는 가방 속에 기저귀를 넣어 다니기도 하였다.


배변훈련을 하는 시기는 심리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의하면, ‘항문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를 경험하면서 자기 통제와 조절 능력이 발달하며 성격발달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아이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좌절감을 경험하도록 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나는 이론적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내 마음속 조급한 마음들이 불쑥불쑥 올라와 아이를 충분히 기다려주지는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다.


햇살이는 배변훈련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실수도 많지 않았고, 어느새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레 잘 해내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은 육아를 할 때 엄마가 원하는 시기 혹은 통상적인 시기보다는 아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책뿐 아니라 인터넷, 카더라 통신으로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몇 개월에는 몇 단어 이상을 말해야 하고, 몇 개월에는 걸을 수 있어야 하며, 몇 개월에는 두 발 뛰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해야 할 어떤 행동 또는 발달 과제가 몇 개월에 수행되어야 하는가 보다는 내 아이가 며칠 전 혹은 몇 달 전에 비해 얼마나 더 발전되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나의 조급함은 굳이 언어로 말하지 않더라도 아이에게도 전달이 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빨리빨리해!”라는 말을 직접 듣지 않아도, 분위기상으로 이러한 비언어적인 신호가 감지되면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지고, 잘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마음이 편하지 않는 것처럼 아이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니 수많은 정보 속에 조급해하기보다는 기다림의 육아, 아이의 눈을 맞추고 함께 천천히 나아가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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