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공룡 피규어에 머리끈을 열심히 휘감으며, 한참 동안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공룡들이 가방 메고(머리끈) 소풍 가는 중인데 엄청 신나”
“우와~ 어디로 가는데?”
“오늘은 수영하러 간데~ 재밌겠지?”
아이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흠뻑 빠져 한참 동안이나 재잘거렸다. 이렇게 오늘도 나는 아이와 함께 공룡의 세계, 상상의 세계로 향한다. 부끄럽게도 아이를 낳기 전에 공룡이라고는 티라노사우루스 밖에 몰랐다. 요즘은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 덕에 육식과 초식 공룡의 특징은 물론, 공룡들의 이름을 섭렵하고, 부경고사우루스가 우리나라 부경대학교팀에서 발견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공룡책, 공룡 피규어, 공룡 로봇, 공룡 옷까지 공룡으로 물들었다.
평소 나는 생물이나 과학 관련 분야가 관심사는 아니었다. 아이가 동물, 바다동물, 곤충, 공룡, 우주, 세계로 관심사가 옮겨갈 때마다 나도 이러한 분야들에 대해 자연스레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나도 좋았고, 관련된 배경지식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발동했었다. 아이가 바다생물을 좋아하던 시기에는 아쿠아리움 정기권을 끊어 다니며, 바닷속에는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는지 직접 살펴보곤 했다. 아쿠아리움에서 ‘곰치’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집 앞 장어 가게 수조에 헤엄치는 장어를 보고 “곰치야 곰치” 라며 착각하는 일도 있었지만, 아이는 동화와 조절을 통해 세상을 배워가고 있었다.
아이의 관심이 생물에서 우주로 넓혀지는 순간, 밤하늘에 별을 찾아다니고, 오늘 밤 맨 눈으로 토성을 볼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서는 토성을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행성을 사랑한 아이덕에 난생처음 천문대서 망원경으로 태양의 흑점과 홍염을 보기도 했다. 책에서만 보던 것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질 때 아이의 눈은 호기심 가득 반짝였고, 몸짓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이러한 모습에 오늘도 나는 ‘이번 주말은 어디 가지? 뭘 하면 좋아할까?’라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좋아할 것들을 고민하게 된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 덕분에 나의 세상도 점점 더 넓어지다니. 이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새로운 능력치를 획득한 기분이다. 지식이나 관심사의 측면에서의 변화도 있지만, 동심이라는 몽글몽글한 마음을 얻은 것도 좋다. 예전에는 눈이 오면 반가워하기보다 오가는 길이 미끄러울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통해 다시 동심을 찾은 지금은 눈이 오면 이렇게 말한다.
“햇살아~ 눈이다 눈! 나가자!”
아이와 나는 눈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며, 동심의 세상으로 돌아가 하얀 눈 위에 뽀드득 발자국을 남기고,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사람을 만들어 본다. 이번 주말에는 강가에서 아이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다슬기를 잡아 보았다. 돌이켜보니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내가 언제 또 이렇게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고, 물속을 헤집으며 다슬기를 잡아 보겠는가 싶다.
이렇듯 아이와 함께하는 세상은 나에게 몽글몽글한 삶을 선물해 주었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도 이렇게 몽글몽글했나? 싶다. 돌이켜보니 나도 어린 시절도 햇살이처럼 동물을 좋아했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엄마를 졸라댔던 시절도 있었고, 학교 앞 좌판에서 병아리를 분양하고 있으면 지나치지 못하고 데리고 왔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계란을 담요로 덮어 따뜻한 아랫목에 두고서는 몇 날 며칠 동안 병아리가 태어나길 기다린 적도 있다. 이런 설렘의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되고 난 후에는 안타깝게도 먹고사는 것에 집중하느라 동심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나였던 세상이 무채색인 세상이라면, 엄마가 된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풍성해지고 다채롭다. 엄마가 된 세상이 편한 세상은 아니지만, 새로운 세상을 아이와 함께 경험하고 배운다는 것은 값진 일이기에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세상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