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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by 로라

새벽 2시, 잠에서 깬 아이는 “엄마~”하며 나를 깨운다. 그리고는 등 긁어달라, 물이 먹고 싶다, 더우니 부채질을 해달라, 안아 달라며 끊임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자다 깨서 비몽사몽인 채로 해달라던 것을 해주던 나는 짜증이나 아이에게 소리를 쳤다.


“햇살아~~ 지금이 몇 시야~ 제발 자자 좀!”

아이는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목놓아 울며 “엄마 미워~ 엄마는 맨날 화만 내잖아~”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으니 한밤중에 어이가 없어 더 화가 났다.

“등 긁어달라서 등 긁어주고, 물도 주고, 안아 달라해서 안아줬는데, 왜 그러는 거야~

울지 마! 뚝!! 눈감고 자!!”


내 입에서는 뾰족한 말이 튀어나와 아이의 작은 마음을 콕 찔러버렸고, 아이는 베개에 눈물을 적신 채 잠이 들었다. 눈물과 땀이 섞여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자는 아이를 보자니 그제야 아이에게 화를 낸 내 행동에 대해 후회가 밀려온다. 사실 아이는 그저 잠이 오지 않은 것이고 아직 혼자서 잠드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인데, 나의 피곤함으로 인해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낸 것은 아닌가 싶었다. 미안한 마음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햇살아 화내서 미안해, 많이 속상했지.. 그래도 엄마는 항상 햇살이 사랑해” 라며 아이의 볼과 머리를 쓰다듬어 보고, 부족한 엄마인 것 같은 씁쓸한 마음을 안은채 나도 잠자리에 든다.


나는 아이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트집을 잡으며 생떼를 쓸 때 화가 난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내가 눌렀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한밤중에 불을 켜고 자겠다고 우기는 경우이다. 그럴 때면 나도 화가 나서 아이를 혼내곤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걸 하지 못해서 화가 났고, 어두운 방이 무서워 불을 켜겠다고 말한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 기준에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아이의 표현을 괜한 트집이라고 받아들여 화가 난 건 아닐까 싶었. 이런 생각이 들고서야 아이에게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었다.


나는 주로 육퇴(육아퇴근)가 늦어질 때 화가 나는데, 육퇴 후 달콤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함도 있지만, 아이가 잠들고 나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잠들면 전쟁이 휘몰아친듯한 거실도 치워야 하고, 내일 유치원에서 필요한 준비물도 체크해야 한다. 쿠팡으로 아이의 물건도 사야 하고,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으니 할인 쿠폰을 뒤적이며 장도 봐야 한다. 이렇듯 나라는 존재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틈은 없이 가정을 위해 쉼 없이 시간이 흘러간단 생각에 힘이 들기도 한다. 나의 계획이 이만치인 와중에 아이가 잠들지 않으면 뒷일정들이 어그러지니 괜스레 아이에게 심통이 나 “빨리 자!”라고 아무 잘못이 없는 아이를 다그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아이와 갈등 상황이 생기면 공감과 이해로 대화하고, 존중의 태도로 상호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은영 선생님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따뜻하게 말하는 엄마가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작은 아이에게 소리나 치는 모습이라니. 이러한 인지부조화 상황이 나를 괴롭게 하기도 했다. 가끔 아이가 금쪽이 같은 모습을 보일 때면 나 자신이 부족한 엄마인 것 같아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나의 육아에서 장점이 있다면, 아이에게 화를 내고는 ‘이것이 정말 아이의 잘못인가? 아니면 나의 문제로 인해 화가 난 것인가?’ 돌아본다는 점이다. 물론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훈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의 피곤함, 내 하루의 스트레스, 해야 할 일에 대한 조급함으로 인해 화를 내는 경우가 있었기에 반성이 된다 . 아이는 내가 화를 낸 후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내 품에 다가와 안기곤 하는데, ‘아이는 부모를 수없이 용서한다’라는 말이 떠오르며 괜스레 미안해진다.


나는 원래도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지만, 아이를 낳고는 아이로 인해 감정이 더 풍부해진 것 같다. 아이가 작은 일에 까르르 웃으면 나도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행복하고, 무엇인가에 상처받아 속상해하면 나 또한 속상하다. 아이가 짜증을 내면 나도 같이 짜증이 치솟아 짜증을 내기도 한다. 아이 덕분에 여러 감정을 더 진하게 배우고,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과 표현하는 방법들을 배워가는 것 같다. 후회의 순간이 많지만,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음은 분명하다. 완벽하지 않지만, 매일 반성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이 시간이 나를 단단하고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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