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와 베트남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하기 위해 메뉴판을 들고
“this one, please”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와~ 엄마 영어 진짜 잘한다. 정말 멋져”라며 물개박수를 친다. 아이의 말을 듣고 있자니 영.알.못인 나는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엄마의 실체를 알게 되겠지 싶어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동안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수없이 했지만 행동에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 잘해” 이 한마디에 멋진 엄마의 모습으로 남기 위해 외국어를 공부해야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 아이를 통해 배우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간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전에 즐기던 취미활동도 할 수가 없고, 시간을 내어 무엇을 배우러 가기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내게 또 다른 배움을 준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 덕분에 아이의 책을 읽어주느라, 나의 독서량은 어마어마하다. 그림책에서 나오는 다양한 묘사들 덕분에 나의 언어들도 이전과는 다르게 생동감 있는 단어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화책에서도 삶의 교훈이 얼마나 많은지, 아이와 함께 책 속에서 많은 배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 아이를 낳고 할 수 있게 된 것 중 하나가 요리이다. 나는 콩나물국을 끓이면 톡 쏘는듯한 매운맛이 나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는 그런 요리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 건강한 재료를 선별하고, 서툰 칼질로 재료를 다듬고, 레시피를 읽고 또 읽으며 아이의 입에 들어갈 음식들을 만들어본다. 아직도 요리가 서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게 큰 변화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부모인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그동안 취업 이후에는 크게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그저 쉬고 싶은 마음에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 스크롤을 올리기에 바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달라졌다. 나의 많은 모습을 따라 하는 딸아이를 보며, 시간들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들었고, 조용히 나의 일상들을 글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전에 글을 써본 적도 없는 사람이고, 책을 즐기지도 않았던 사람인데 말이다.
아이 한 살은 엄마 한 살이라는 말도 있다. 딸이 하루하루 커갈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것처럼 엄마인 나도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다짐해 본다. 적어도 뒤로 가는 엄마는 되지 않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