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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N Mar 17. 2021

2021.03.17. 오후 12시

약간 기운이 없다

뭐 때문에 그리 피곤했을까. 어제 저녁 집에 들어가니 아빠가 식사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할머니 어제 요양병원 들어가셨어. 그럼 전화는 이제 안되나? 응 거기 전화 안돼. 말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온전히 할머니 걱정으로 눈물이 난 건지 아니면 집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남자 친구와 설전을 벌인 탓인지 아니면 하루 종일 일이 자꾸만 꼬여 참아왔던 울분이 터진 탓인지 모르겠다. 


옷만 갈아입고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몸에 약간 냉기가 돌았고 이불속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결국 잠들고 말았다. 새벽 한두 시쯤 잠에서 깼던 것 같다. 텁텁한 입이 찝찝해 화장실에서 급히 양치질만 하고 다시 누웠다. 인스타그램도 훑어보고 유튜브도 좀 보고 네이버 뉴스도 기웃거리는데 다다 재미가 없었다.  하릴없이 이 어플 저 어플을 누르다보니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뭔가 놓친 게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에 스케줄러를 확인하니 저녁 9시에 미팅이 잡혀 있었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내일 상황 설명을 하면 되겠지하고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나은 컨디션으로 더 일찍 일어났다. 옷도 금방 골랐고 어제보다 10여 분 일찍 나와 여유 있게 버스를 탔다. 강남역에 너무 빨리 내린 탓에 요가학원에 너무 일찍 도착하면 어쩌지 하고 섣부른 조바심을 내며 다음 버스를 기다렸는데 4분이면 온다는 다음 버스는 7~8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3월 말인데 왜 아직도 날씨가 이리 추운지 어깨에 또 잔뜩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어젯밤 이불속에서 몸을 너무 말고 있었던 탓인지 어깨가 더 쑤셨다. 너무 일찍 도착해 민망하면 어쩌나 했던 예상과 달리 오늘도 버스에서 내려서부터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부지런히 학원까지 걸어 평상시와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그리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정리했다. 전 시간대 수업을 마치고 깨끗이 샤워하고 화장을 하며 출근 준비를 하는 사람을 보며 존경스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 저렇게 하고 싶은데... 이렇게 빠듯한 일정으로 모든 걸 하려다 결국 뭐 하나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오늘은 점심시간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었다. 요 며칠 간 감정 소모가 심했던 것 같다. 팀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웃고 떠들다 보면 그나마 남아있는 조금의 에너지마저 빼앗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5분 안에 내 기분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내 지금의 상태를 절대 외면하지 말고 나의 힘듦을 인정하고 존중하되, 지금 나의 기분이 나를 짚어 삼키지는 않도록 막아야만 한다. 그리고 내 기분으로 혹여나 상대방이 날 불편해하지 않도록 잘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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