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업 분투기

by 운틴

둘째가 고3이 되니 시간 여유가 생겼는데 마침 이용하고 있던 조합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문자가 왔다. 설마 뽑힐까 하는 마음으로 원서를 냈는데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렇게 매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나의 청력상태를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원했는데 일하다 보니 간혹 놓치는 말들이 문제가 되어 불만이 접수되었다. 그래서 나는 직원 단톡방에서 잘 듣지 못하니 업무 하는데 부족한 게 있으면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이 되자 점장한테 출근하지 말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핸드폰의 녹음기를 켜놓고 점장을 만났다. 점장은 왜 잘 듣지 못한다는 말을 미리 하지 않았느냐며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조합원이기도 했던 나는 조금 듣지 못해도 당연히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대화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알아서 면접 때 불합격시키면 될 일이었다. 나를 앞에 앉혀놓고 해고의 타당성을 설명하는 점장 앞에서 평생 처음 당하는 수모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집에 돌아온 후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고민을 한 후 이에 대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우리 사회 발전의 초석이 되리라 믿었다. 법에 호소할까 고민하다가 인권위원회, 지방노동위원회와, 장애인 인권 단체에 도움을 청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감수할 수 있지만 2007년에 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약 석 달 후, 장애인 인권 단체에서 소개해 준 시각장애인 변호사님의 도움으로 지방노동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화해하는 것으로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큰 상처로 남을 수도 있었던 그 일은, 같이 모임을 하던 친구들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삶의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집이라는 내가 쌓은 성안에서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지금껏 스스로를 가둔 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청각장애로 일자리를 잃게 되자 과연 내가 일을 구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져서 3년 동안 집에 처박혀 지냈다. 그러다가 다른 농인의 업무를 도와주는 근로지원인 일에 지원했다. 잘 듣지는 못해도 전화통화와 대화가 가능하고 직장생활을 한 이력도 있어서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취업 전에 미리 국립장애인 도서관에 가서 자원봉사도 하고 농아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 실습을 하면서 이력서에 써넣을 경력을 만들었다. 수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능숙해졌다.


어느 날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공기업 채용공고가 났으니 한 번 찾아보라고 했다. 원래 남편 친구가 남편에게 도전해 보라고 알려준 건데 자기는 자신이 없으니 나더러 해보라고 했다. 채용 사이트를 찾아보니 장애인 전형이 있는데 시험 내용을 보니 해볼 만했다. 입사시험은 블라인드 채용으로 자기소개서에 사진, 주소, 생년월일, 성별을 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자기소개서가 통과되고 필기시험도 잘 치르고 나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다. 근로지원인으로 일할 때 행사가 있던 날, 직원들이 서울시에서 무료로 정장을 대여해 주는 곳에 가서 옷을 빌려 입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 때다 싶어 나도 그곳에 가서 정장을 빌려 입고 면접을 보았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말하는 면접관의 질문을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주위에 알아보니 장애인 편의지원 서비스가 있어서 면접관의 질문을 문자로 통역해 주는 편의지원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방식은 나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떨면서 면접장에 들어가니 내 자리 옆에 노트북을 두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내게 주어지는 질문을 옆에 앉은 사람이 노트북에 적어서 보여주면 문장을 읽고 대답했다. 시험 결과는 예비합격 1번이었다. 그렇게 오십이 넘어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하였다.


입사 후에는 나의 장애를 부서원들에게 드러내고 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를 구하면서 마스크를 벗고 말하거나 필담, 메신저로 대화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청각장애가 있음을 먼저 알리니 어려울 것이 없고 마음이 편했다. 내가 간 부서에서는 이미 입술이 보이는 립뷰 마스크를 사놓고 나를 맞았는데 뜻밖의 환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귀가 안 들려서 사람들에게 못 듣는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긴장하면서 알아들을 수 있게 얘기해 준다. 나이가 많으면 지금이 제일 젊을 때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세상은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