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딸의 결혼식

by 운틴


딸이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반가우면서도 불안했다. 불안한 이유는 결혼 비용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못 듣는데 신랑의 부모님을 만나 인사하고 대화하는 상견례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대화하는 걸 즐기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관계가 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잡힌 일정에 여유는 많지 않았다.


상견례날 식당에서 사돈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내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딸이 신랑한테 말했을 테고 그렇게 사돈도 미리 알고 계실 것 같았지만 내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게 중요했다. 왜냐하면 얼마나 듣는지, 어떻게 말하면 알아듣는지를 알아야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난청의 정도를 알리고 못 알아들은 내용은 다시 물어가며 무사히 상견례를 치렀다.


결혼식 준비가 시작되자 걱정은 더욱 커졌다. 여태까지 다녔던 결혼식처럼 무대에서 진행되는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올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딸을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말을 하기에는 내가 딸을 의지했던 부분이 커서 자격이 없다. 아이들 영어 공부를 위해 뉴질랜드에 갔을 때 딸이 영어를 빨리 배워 내 대신 살림을 처분하는 일을 도맡아 했던 걸 생각하면 일찌감치 엄마에게 기대지 않고 엄마 몫까지 감당하며 살아온 씩씩한 딸이었다. 그래서 예식에서 진행되는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딸에게 엄마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결혼식이 되도록 고민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수어통역사를 부르기엔 내가 수어에 익숙하지 않아 문자통역은 어떨까 고민하다가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통역서비스가 떠올랐다. 문자통역사를 불러 서비스를 받자고 딸과 사위에게 말하니 고민하지도 않고 흔쾌히 승낙했다. 친구와 지인 등 많은 손님을 불러 놓고 엄마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걸 드러내는 게 싫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바로 오케이 하는 딸을 보고 고마운 마음에 울컥했다.


서울시의 무료 서비스를 신청하니 통역을 제공하는 기관인 에이유디 사회적 협동조합의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결혼식장의 장비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예식 하루 전에 방문하여 리허설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결혼식 당일에 식장에 가보니 무대 위에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회자인 딸의 친구가 다른 결혼식과는 다르게 ‘자막이 있는 결혼식’으로 진행된다며 참석자들한테 알리는 것으로 식이 시작되었다.


손님 중에는 오빠 같은 농인도 있고 노인성 난청이 있는 분도 계셨다. 그래서 사회자가 하는 말이 화면에 또박또박 올라가는 예식에 잘 몰입되었을 것이다. 축가로 흐르는 노래의 가사가 스크린에 떴을 땐 한 편의 시를 읽는 마음이 되어 숙연해졌다. 사돈어른이 낭독한 축사나 둘째 딸이 쓴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을 땐 흘러 들어오는 음성이 활자와 함께 마음에 콕콕 와 박혔다.


예식이 끝나자 손님들은 이렇게 감동적인 결혼식은 처음이라며 한 목소리로 자막이 있는 결혼식을 칭찬해 주셨다. 나도 회의나 포럼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해 자막 서비스를 하는 건 봤어도 결혼식에 자막이 있는 건 처음이라 기분이 좋았다. 이 결혼식이 감동적이었던 건 예식 내용을 듣지 못하는 분들을 배려하며 준비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다른 예식 방식에 거부감 없이 승낙해 주신 사돈이나 딸 부부를 생각하면 늘 고맙다. 더 나아가 ‘자막이 있는 결혼식’을 경험하신 분이 다른 결혼식에서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소문내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 있는 결혼식 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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