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가을이 아까울 정도로 짧아졌다.
문득 계절의 속도만큼이나 내 삶의 속도도 빨라진 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도 바람막이를 걸치고 좋아하는 커피를 들고 산책을 나선다.
햇볕이 너무 뜨겁지도, 바람이 차갑지도 않은 이 순간이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소소한 행복에만 시간을 쓰는 내가
가끔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어떤 생산적인 시간보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이 시간이 더 절실하다.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지내는 요즘,
건너 건너 들려오는 지인들의 소식이 마음을 스친다.
좋은 소식보다 걱정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세상이 참 녹록지 않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들이다.
나 역시 평범했던 일상이 어느 날 몰아치듯 변한 적이 있다.
그 변화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라 말하기 어려웠고
그 여파는 여전히 내 일상 어딘가에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세상일의 아픔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는 점에서 다 다르다.
그래서 함부로 위로의 말을 건네기가 조심스럽다.
상대의 시간을 떠올릴수록 마음이 묵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흔히 말한다. 시간이 약이라고.
정말 그 말은 아픔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때문일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나도 아픈 부분만 더 또렷해진다.
상처는 아물더라도 흉터는 남듯,
삶의 경험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무게를 더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약이 되는 건
시간이 아니라, 고통스러웠던 감정을 잠시 덮어주는 ‘망각’ 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망각을 잠시 허락해 주는,
이 짧고 소중한 가을의 산책 같은 시간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