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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보다 반가운 얼굴들

by Taei

이번 문중회의는 논산에서 열렸다.

이모와 엄마는 며칠 전부터 통화로 준비에 한창이었다.

“멀긴 해도 가야지, 다들 보고 싶잖아.”

그 대화를 듣자 이번에도 운전은 내 몫이겠구나 싶었다.


트렁크엔 친척들에게 드릴 선물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이건 논산 외숙모, 저건 대전 삼촌.”

엄마의 손끝은 분주했지만, 표정은 오랜만에 들떠 있었다.


단풍철이라 도로는 금세 막혔다.

“괜찮다~” 하시면서도 두 분의 초조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혹시라도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내비게이션과 한 몸이 되어 초집중했다.


휴게소에 들를 틈은 없었다.

막히는 구간이 끝나면 곧장 액셀을 밟았다.

두 분의 불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길 바라면서.


이번 여정의 다짐은 단 두 가지였다.

말대꾸하지 않기, 그리고 안전하게 모시기.

그 약속을 지키려 나름 진지하게 임했다.


논산에 도착하니 오랜만에 보는 사촌들이 반가웠다.

평소엔 연락도 거의 없는데, 막상 만나니 웃음이 먼저 났다.

살갑지 않아도 편안한, 그런 사이.


하지만 이모와 엄마는 이제 문중에서도 거의 최고령자다.

젊었을 땐 사는 일에 바빠 이런 자리에 참석할 여유조차 없었는데,

80 넘어 조금의 시간이 생기신 듯했다.

너무 늦게 찾아온 이 여유가 오히려 마음 한편을 짠하게 만들었다.


짧은 회의와 식사였지만 두 분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오랜만에 활짝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두 누나들을 세심히 챙기던 삼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단풍놀이 가자 하면 힘들다며 손사래 치시던 두 분인데,

이런 자리엔 기꺼이 나서시는 걸 보면

가족이란 게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막혔지만,

이모가 말했다.

“내년 봄 회의도 꼭 가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가야죠.”


멀고 긴 하루였지만,

트렁크에 실은 선물보다 훨씬 더 따뜻한 게 남았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안도감,

그리고 오랜 여정의 피로까지 녹여버리는 가족의 단단한 온기였다.


어쩌면 우리는

계절보다 사람을 더 오래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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