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베아트리체

단테 알리게이리 의 <신곡 >과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

by 여자말러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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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Divina Commedia)은 시대와 종교를 막론하고, 늘 '불후의 명작'을 불려 온 책이다.

단테 이후 이 작품은 수많은 소설가와 시인, 그리고 음악가와 예술가들에게까지 반복적으로 참조되어 온 원천이자, 끊임없는 영감의 대상이 되어왔다. 하지만 신곡을 실제로 읽어내는 일은 또 다른 문제이다.

방대한 분량뿐 아니라, 나처럼 무신론자들에게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부터,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일 트리티코>에 이르기까지.

신곡은 특정 시대의 문학 작품을 넘어, 수세기 동안 예술가들이 혼란과 구원, 인간의 운명을 사유하는 하나의 원형처럼 작동해 왔다. 즉 수많은 예술의 모태이다.

서양의 많은 예술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토대로 뻗어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성경과 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나이기에, 나는 항성이 부재한 행성계의 외곽을 의미 없이 공전하는 외로운 위성처럼, 중력 없이 유지되는 질서 흉내 속에서 중심에는 닿지못하는 소외감에 빠질 때가 많다.


그렇담 신곡은 기독교적 구원을 말하기 이전, 인간의 보편적 상태로 읽어보려고 한다.

무신론자인 나에게도 이 여정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 끝에 무엇을 믿느냐보다, 삶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여러 수난들의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_가톨릭 신문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삼분 구조로 시작이 되는데 이는 기독교적 내세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인간 스스로를 인식하고 살아가면서 겪는 내면의 과정에 대한 은유처럼 다가온다.

무신론자인 나에게도 이 여정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끝에서 무엇을 믿느냐보다 삶을 살아가며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혼란과 추락, 방황과 회복의 과정을 이 작품이 정직하게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정치적 갈등 속에서 추방을 겪은 뒤, 말년의 방랑 생활 속에서 <신곡> 집필에 몰두했고,
라벤나에 머물며 이 작품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56세로 생을 마쳤다. 그가 평생 사랑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동갑내기 연인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가 작품 속에서 개인적 사랑을 넘어 인간을 신적 질서로 인도하는 존재로 형상화된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혼란의 시기와 유배, 그리고 죽음을 앞둔 말년에 이르러 단테는 세속의 정치에서 물러나,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의 여정으로 다시 바라보고자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읽을 때 <신곡>은 더 이상 구원의 교리서가 아니라, 한 인간이 인생의 소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생을 회고하며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더듬는 기록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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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Liszt (1811.10.22~1886.7.31)

1811년 헝가리의 작은 마을 라이딩(Raiding)에서 태어난 리스트는,
궁정 악단에서 아마추어 첼리스트로 활동하던 아버지 아담 리스트(Adam Liszt)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일찍부터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피아노는 체르니(Carl Czerny)에게,
작곡은 살리에르(Antonio Salieri)에게 사사한다. 이후 리스트는 단순한 신동을 넘어,

동시대가 놀라게 할 압도적인 기교와 카리스마를 지닌 연주자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 눈부신 출발은,
훗날 그가 겪게 될 상실과 침잠을 예고하는 서곡에 불과했다. 초절기교의 상징이자 관객들을 열광시키던 그였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리스트는 자신의 아버지의 사망과 자신의 제자이자 사랑했던 여인 카롤린(Caroline de Saint-Cricq)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무대를 떠나 종교와 문학에 심취한다.

실제로 1863년, 쉰을 앞두고 모든 일을 내려두고 로마 몬테 마리오의 마돈나 델 로사리오 오라토리오 수도회에 입회하게 된다. 수도회 입회 이전, '순례자의 해'라는 작품을 살펴보면

리스트에게 종교가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필연이었음을 시사한다.

Années de Pèlerinage <순례자의 해>는 프란츠 리스트가 여러 시기에 걸쳐 완성한 피아노 연작으로,
여행의 인상과 자연, 문학과 예술을 경유하며 한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연작에서 ‘순례’는 특정 종교 행위를 뜻하기보다, 삶을 스스로를 인식하고 정렬해 가는 태도에 가깝다.


피아노 연작 Années de Pèlerinage <순례자의 해>

순례자의 해 제1년: 스위스는 당시 리스트의 연인이었던 마리 다구(Marie Cathérine Sophie, Comtesse d’Agoult) 백작부인과 함께 스위스에 머물며 마주했던 자연의 정경과 그에 대한 감응을 담고 있으며,
외적 여행에서 끝내지 않고 내적 성찰로 이어지는 다소 무거운 작품이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단테 소나타는

순례자의 해 제2년: 이탈리아에 수록된 작품이다.


순례의 연보 Année : Italy) 제2년 (Années de Pélerinage- Deuxiéme)

리스트는 1837~1839년 사이에 이태리를 여행하는 동안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에서 받은 감명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2년이다. 각 곡들은 라파엘로(Raffaelo Santi, 1483~1520)나 미켈란젤로(Buobaroti Michelangelo,1475~1564)의 그림, 페트라르카(Prancesco Pettrarca, 1304~1374)의 시집등 르네상스 거장들의 그림, 조각, 시 등의 예술품들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하였다. 총 7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은주, 〈F. Liszt의 Après une lecture de Dante–Fantasia quasi Sonata에 관한 분석 연구〉, 수원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석사학위논문



Années de Pèlerinage, Deuxième Année: Italie (S.161) <순례자의 해 제2년: 이탈리아>중 7곡
Après une lecture du Dante: Fantasia quasi Sonata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intrate."
나를 지나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신곡 ‘지옥편’中)


곡의 도입부는 마치 발밑이 무너져 내려, 지옥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증 4도 관계의 화음들이 하행하며 이어지는데, 이 음정이 본래 지니는 불안감과 불길함에 하행 진행이 더해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추락하는 듯한 인상을 만든다. 이 순간 음악은 듣는 이를 자연스럽게 지옥의 문 앞으로 데려간다.

이어지는 무거운 저음과 반음계적 진행은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영혼들의 절규와 탄식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리스트 특유의 화려한 기교가 더해진다. 광범위한 옥타브의 등장과 ppp에서 fff로 급격히 전환되는 극단적인 악상 변화는 지옥의 혼란과 폭력성을 시각적으로까지 드러낸다. 이 도입부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지옥이라는 상태를 음악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장면에 가깝다.

하지만 곡 중간에 등장하는 dolcissimo con amore에서는 분위기가 분명히 달라진다. 앞선 긴장과 대비되듯, 마치 달콤한 천사가 내려온 듯한 음색 속에서 베아트리체를 마침내 조우한 단테의 모습이 겹쳐지고, 음악은 잠시 달콤한 몽상의 상태로 우리를 이끈다.

리스트는 마침내 곡의 종지에 D Major로 마무리하게 되는데 신성함과 정화를 상징케 하는 이 조성은 지옥의 어둠을 부정하기보다, 그 모든 고통을 통과한 뒤에야 도달할 수 있는 빛처럼 들린다. 그렇게 이 소나타는 지옥에서 출발해 연옥을 지나, 인간의 여정이 마침내 천국의 방향에 닿을 수 있음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이 음악은 종교적 표제에 머물지 않는다. 단테 소나타는 고통을 마주하고 통과한 끝에서야 각자가 자신의 ‘베아트리체’를 찾아내는 여정을 그린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자신을 천국으로 이끄는 궁극적 사랑으로 그렸듯, 이 음악 역시 우리 각자가 끝내 찾아 나서야 할 자신만의 ‘베아트리체’를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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