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상 알츠하이머와 인지적 예비능

by 라온재

알츠하이머병은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축적, 타우 단백질의 엉킴 등 병리적 변화가 뇌에서 진행되면서 점차 기억력과 인지 기능을 저하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병리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상적으로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를 무증상 알츠하이머(Asymptomatic Alzheimer’s)라고 하며, 그 배경에는 인지적 예비능(Cognitive Reserve)이 있다.


인지적 예비능이란 뇌가 손상이나 퇴행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보완 능력을 말한다. 평생 동안 학습, 독서, 외국어 사용, 음악 활동, 직업적 복잡도, 그리고 사회적 교류를 활발히 지속한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예비능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뇌의 신경망을 보다 탄탄하게 만들고, 하나의 기능이 손상되더라도 다른 영역이 이를 보완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뇌의 구조적 특성 덕분에 병리적 변화가 진행되어도 기능적 손실이 적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해마의 부피가 크거나 신경망의 연결 밀도가 높은 경우, 손상된 부위 대신 다른 뇌 영역이 기능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유전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일부 유전자 변이는 신경 퇴행 속도를 늦추거나 손상 자체를 억제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활 습관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 균형 잡힌 식사, 충분하고 깊은 수면, 스트레스 관리, 사회적 교류 등은 모두 뇌 건강을 유지하고 신경세포 간의 연결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요소들은 뇌 내 염증 반응을 줄이고, 세포 손상을 지연시키며, 전체적인 인지적 회복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수녀 연구(Nun Study)’다. 여러 수녀들이 사후 부검에서 알츠하이머병의 병리적 소견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에는 인지 기능 저하나 치매 증상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는 교육 수준, 정서적 안정, 공동체 생활, 규칙적인 일과와 같은 요인들이 인지 예비능을 높이고 무증상 상태를 유지하게 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알츠하이머병의 병리가 존재하더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개인의 뇌 회복력, 유전적 보호 요인, 그리고 평생에 걸친 생활 습관의 복합적인 결과다. 따라서 인지적 예비능을 키우는 삶의 방식—끊임없는 학습, 규칙적인 운동, 깊이 있는 사회적 관계—는 노년기 치매 예방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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