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의 존중과 갈등의 최소화

오래가는 황혼 동거의 비결

by 라온재


계약 동거를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구속 없이, 혼자보다는 조금 덜 외롭고, 너무 얽히지는 않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다. 나이가 들수록 내 삶의 리듬이 중요해지고, 상대방의 생활 방식과 충돌하지 않는 것이 편안한 동거 생활의 핵심이 된다. 황혼의 계약 동거는 결국 사생활을 얼마나 존중할 수 있는가, 그리고 불필요한 갈등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젊었을 때의 부부 생활은 흔히 둘이 하나 되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황혼기의 계약 동거는 정반대다. 같이 살되, 각자 산다는 원칙이 분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의 분리가 기본이다. 각자의 방, 각자의 취미, 각자의 친구 관계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굳이 붙어 있지 않아도 되는 사이, 오히려 그런 거리감이 관계를 더 오래가게 만든다.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것, 그러나 필요한 순간에는 곁에 있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황혼 동거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동거를 하면 사소한 생활 습관의 차이가 부딪히기 마련이다. 청소하는 방식, 식사 시간, TV 소리 크기, 심지어 화장실 쓰는 습관까지. 젊었을 때는 고치라고 했던 것들을,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계약 동거에서는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불편함을 솔직하게 말하고,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은 조율하되, 고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그냥 두는 것. 타협과 수용의 경계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야말로 갈등을 최소화하는 지혜다.


갈등의 대부분은 말하지 않아 생긴다. 사소한 불만이 쌓여 폭발하기 전에, 가볍게 웃으며 꺼낼 수 있는 대화 습관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대화가 서로를 바꾸기 위한 설득이나 지적이 되면 오히려 갈등을 키운다. 황혼기의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가깝다. 대화는 하지만, 집착하지 않는다.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가 관계를 편안하게 만든다.


계약 동거의 가장 큰 장점은 계약이라는 확실한 안전장치가 있다는 점이다. 돈 문제, 건강 돌봄, 가족 문제 등에 대한 합의를 미리 해두면,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 특히 경제적 부분은 냉정하게 합의해야 한다. 생활비 분담, 자산의 독립적 관리, 상속 문제의 명확화는 자녀들과의 갈등도 예방할 수 있다. 감정은 유연하게, 하지만 계약은 철저하게. 이것이 황혼 동거의 필수 전략이다.


젊을 때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함께라는 말이 당연했다. 하지만 황혼기의 계약 동거는 다르다. 함께 살되, 힘들고 피곤한 일까지 얽매일 필요는 없다. 각자의 문제는 각자가 해결하되, 함께 하면 더 좋은 일들에 집중하는 것. 여행, 외식, 문화생활 같은 플러스의 순간들을 함께 누리는 것이 황혼 동거의 매력이다. 억지로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불편한 일에 서로를 끌어들이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서로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관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맞추려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덜 부딪히고 덜 상처받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황혼의 계약 동거는 그런 의미에서 억지로 하나 되려 하지 않는 미덕을 지닌다. 서로를 바꾸지 않고, 간섭하지 않으며, 함께 있을 때는 온전히 즐긴다. 각자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외로움은 나누는 것. 그것이 사생활을 존중하고 갈등을 최소화하는 황혼 동거의 진짜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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